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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코드' 떠받들던 경찰, 대통령 호통에 얼떨떨

야권 "정부가 시위대 쫓는 시국경찰만 늘려놓고..."

등록|2008.04.01 17:47 수정|2008.04.01 17:47
"평화시위 하는 곳에는 1만2천명이나 보내고, 칼들고 아동 유괴하는 곳에는 도망다니기 바쁜가?"

한 시민이 경찰청 홈페이지에 "시위 체포조는 있고 유괴범 체포조는 없나"(유성구씨)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이다.

경찰이 어린이 유괴와 부녀자 납치 등 민생치안은 뒷전으로 미루고 정치사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경찰 조직 전체가 법과 질서를 앞세워 '시국 치안'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권과의 '코드 맞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의 '치안 철학'도 도마에 올랐다. 4·9 총선과 맞물려 야권에서는 "이 정권이 공안정권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일선 경찰들이 민생치안을 소홀이 하는 것"이라며 정치 쟁점화에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야단맞은 경찰청장, 알고보니 '모범 공직자'

▲ 이명박 대통령과 유우익 대통령실장이 31일 오후 지난 26일 발생한 초등학생 폭력(납치미수)사건의 수사본부가 설치된 경기도 고양시 일산경찰서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지난달 31일 이명박 대통령은 일산 초등학생 납치미수 사건 수사본부가 차려진 일산경찰서를 방문했다. 현직 대통령이 직접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서를 방문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당초 예정에 없이 급하게 결정된 일정이었다.

이기태 서장의 수사 상황 보고를 듣는 내내 굳은 표정이던 이 대통령은 "일선 경찰은 아직도 생명의 귀중함을 소홀히 하고 있다"며 "경찰이 유괴사건에 철저히 하자고 하는 그 날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매섭게 경찰의 안이한 태도를 꾸짖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현장 방문 수행단에 당연히 동행했어야 할 어청수 경찰청장을 제외시켰다. 사실상 어 청장에 대한 공개 질책인 셈이다. 부임한 지 5일밖에 되지 않아 날벼락을 맞은 이기태 서장만 이 대통령의 지적이 있을 때마다 "잘못했습니다"를 연발하며 곤욕을 치렀다. 어 청장은 이 대통령이 현장을 떠난 후에야 뒤늦게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대통령이 공개 질책한 어 청장은 사실 이명박 정부의 '치안 철학'을 가장 앞장서서 실천해온 '모범 공직자'였다. 일산 초등학생 납치미수 사건이 있던 지난달 26일 경찰은 '유괴 사건'이 아니라 '경제 살리기와 법 질서 확립'이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열고 있었다.

어청수 청장은 이 날 세미나에서 "법과 질서를 잘 지키면 국민총생산이 1% 올라간다"며 폭력집회 엄단을 강조했다고 한다. 범인이 달아나고 있을 시각에 경찰 총수는 '경제 살리기'에 몰두하고 있었던 셈이다.

어 청장의 '국민총생산 1% 상승론'은 이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법과 질서를 제대로 지켜주면 GDP가 1% 올라갈 수 있다"며 "1% 올리려면 투자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와 비교해 보면 법과 질서 지키는 게 어쩌면 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불법 시위를 없애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논리다.

민생치안을 뒷전으로 미뤄둔 경찰이 '떼법 처벌'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치안 철학'에 바짝 줄을 선 것이다. 각종 강력사건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민생치안 불안이 심화되고 있었지만, 경찰은 시위 억제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던 셈이다.

시위자 체포해 경제도 살리고, '운하반대' 교수들 성향도 파악하고...

▲ 정부가 시위현장에서 체포전담반(일명 백골단)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20일 오전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군사독재정권의 상징인 '백골단'을 부활하는 것은 피땀흘려 쌓아온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주장했다. ⓒ 권우성


뿐만 아니라 경찰은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전국 교수모임에 참여한 교수들에 대해 성향 파악을 하는 등 '학원사찰'을 연상케 하는 행위로 물의를 빚었다. 또한 경호 담당이 아니라 정보과 형사들을 야당 정치인들의 유세장에 잇따라 내보내 '유세사찰'이라는 항의를 받았다.

경찰은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에 참석자의 갑절이나 되는 대규모 경찰력을 투입했다가 오히려 '비폭력 합법 집회에 대한 과잉 대응'이라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강력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일선 경찰서 형사·수사과장과 생활안전과장들을 불러 모아 '실종사건 수사 전담팀'을 급조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전시 행정'의 사례로 꼽혔다.

이는 결국 총선을 앞둔 야권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통합민주당은 유세 첫날 '초등생 납치 미수사건'의 수사본부를 방문, "경찰이 할 일은 안 하고 정치사찰에만 골몰하다 보니 민생과 치안이 뒷전으로 밀려났다(강금실 선대위원장)"며 이명박 정부를 겨냥했다.

손학규 대표는 1일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일산 초등학생 납치 미수 사건과 관련 해당 경찰관을 질책한 것에 대해 "대통령이 그렇게 호통쳐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물론 경찰이 책임져야하지만 문제는 경찰이 정부의 분위기를 따라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손 대표는 이어 "정부와 대통령 그리고 행안부장관과 경찰청장이 지금까지 어떻게 해왔느냐"며 "그동안 대운하 반대 교수 사찰하고 등록금 인상 반대하는 학생들 잡으려고 백골단 만들고 하니까 경찰 스스로도 정부의 기본 방침이 민생치안보다는 정치사찰쪽에 있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도 "이명박 정부는 등장 이후 줄곧 시위 과잉진압, 정보 사찰에 관심을 쏟아 왔다"며 "이 정부는 민생현장을 지켜야 할 민생경찰은 없고, 시위대 쫓는 시국경찰만 늘려왔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논평을 내고 "경찰이 민생치안에는 늑장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합법 시위에 과도한 경찰력을 투입하고,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을 사찰하는 것은 끔찍한 독재 시대의 구태이자 정치·폭력 경찰의 망령"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의 모든 관심사가 '시국 치안'에 쏠려있는 마당에 경찰을 그런 방향으로 이끈 이 대통령이 경찰을 꾸짖고 있는 모습은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국민들은 경찰을 호통치는 대통령보다 정부의 수장으로서 책임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솔한 사과와 '치안 철학'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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