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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선거를 쟁점없이 치르란 말인가?

선관위, '대운하 반대' 서명 운동 '불법' 규정...그럼 뭘 보고 투표하나?

등록|2008.04.03 10:58 수정|2008.04.03 11:34
유권자의 정치 무관심 부채질하는 선관위

'선거관리위원회법'에 의하면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선거 및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와 정당에 대한 사무를 관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조직된 기관이다.

하지만 공정한 선거 및 투표관리만이 선관위 임무의 전부는 아니다. 제1조에 선관위의 주요 업무로 '공정한 선거 및 투표 관리'를 규정하고 있는 이 법은 제14조에 '불법·탈법 선거를 감시하고 중지시킬 권한'을 명시했을 뿐 아니라, '유권자에게 투표 방법, 기권 방지 기타 선거 또는 투표에 관하여 필요한 계도를 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두어 유권자의 선거 참여를 홍보하고 독려하는 것이 선관위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임을 분명하게 하였다.

독재 정권 치하에서 치러진 선거에 비한다면 최근 우리의 선거 문화는 놀라울 정도로 투명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공공연히 자행되던 관권 선거가 사라졌고, 금품을 살포하는 매표행위가 현저하게 감소하였다. 이처럼 선거 문화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은 정치에 대한 국민 의식이 향상된 것과 더불어, 지난 2002년 개정된 공직 선거법이 금품 살포 등의 선거 부정에 대해 엄한 처벌 규정을 둔 것이 일부 효과를 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개정 이후 치러진 각급 선거에서 선관위는 선거법을 무리하게 확대 해석하여 선거에 직접 관련 없는 수많은 유권자를 범법자로 만들어왔다. 자신의 정치 견해를 적극 피력한 많은 유권자들을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 또는 선거법 위반 등의 이유로 고발해 처벌 받게 한 것이다.

정치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를 개진하는 유권자의 행동반경을 과도하게 제약하는 선관위의 처사는 2002년 개정된 공직선거법의 특징으로 꼽히는 '돈은 묶고 말은 푼다'는 개정취지에 전적으로 반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선관위의 과잉 대응으로 선거에서 쟁점이 쟁점으로 떠오르지 못해 출마 후보자에 대한 올바른 자질 검증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선관위는 '갈수록 정치에 대한 유권자가 무관심해지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지만, 정작 선관위 스스로 국민의 정치 참여 의욕을 감소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듯 하다. 국민의 투표 참여를 홍보하고 독려해야 할 선관위가 오히려 국민의 정치참여 의지를 감퇴시킴으로서 선관위 법 14조에 명시된 자신들의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것이다.

쟁점이 된 사안은 찬반 표명할 수 없다?

가뜩이나 '쟁점이 없는 선거'로 인식되어 국민의 투표 참여가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는 18대 총선의 최대 쟁점인 경부대운하건설 찬반 논쟁과 관련하여 '대운하건설 반대 운동이 불법'이라는 선관위의 태도는 누가 봐도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가히 사상 초유의 '선관위가 주도하는 관건선거'라고 규정할 만하다.

선관위는 당초에 합법으로 해석했던 대운하 반대 운동에 대한 방침을 불과 3일 만에 바꿨다. 선관위는 방침을 번복한 배경을 "당초 합법이라는 공문을 보냈을 때는 대운하가 쟁점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최근 대운하 건설이 각 정당 간 쟁점이 돼 이를 찬성·반대하는 활동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는데 이 발언 자체가 모순이다.

선관위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쟁점이 안된 안건의 찬반은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쟁점이 된 사안에 대해 찬반 운동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해석이다. 쟁점이 된 사안에 대해 찬반을 표명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대한민국에서 치르는 모든 선거를 쟁점없이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선관위는 대통령과 여당이 강행 의지를 밝히고 있는 경부대운하건설에 대해 야당들이 연대하여 대운하건설반대를 선거 쟁점으로 삼고,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유권자의 정치행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대운하반대 불법'이란 해석이 위헌인 이유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주권자가 투표를 통해 대표자에게 권력을 신탁(信託)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유권자가 투표과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대안을 정책으로 삼기 위해 세력을 구성하고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경제 단체가 보수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나 노조가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표방하는 정당을 공개지지하는 것처럼, 당연한 주권행위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선관위의 유권해석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한 것이며, 또한 헌법제21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이번 선관위의 월권은 헌법 제37조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

제37조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하위법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없도록 규정하였으며, 제 2항의 단서 조항에서도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공정한 선거관리라는 본연의 임무를 내팽개치고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선관위에 묻고 싶다.

선거법이 헌법보다 상위에 자리하는가?
선관위가 헌법 위에 군림하는 기관인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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