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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같은 숲, 사람 같은 나무...

정인숙 '풍경' 사진전

등록|2008.04.04 10:54 수정|2008.04.04 10:54
서울 안국역에서 내려 인사동 길로 들어서면 왼쪽에 가나 아트 스페이스가 있다. 지난 2일부터 9일까지 정인숙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작년에 같은 제목으로 한차례 보였으니 이번은 두 번째 '풍경'인 셈이다. 지난 전시의 주제는 '땅'이었고, 이번엔 '숲과 나무, 다음엔 '물'이란다. 크게 '우리 땅의 숨결'을 풍경 3부작으로 보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사진집 <정인숙 사진 풍경2>(도서출판 일)를 이번 전시에 마추어 함께 펴냈다.  

강원도 양양2002 ⓒ 정인숙

전시장에 들어서니 두루 산이고, 숲이고, 나무다. 쌓인 눈 무게에 휜 가지. 눈보라, 비바람 요동치는 겨울산. 너끈하고 장엄하다. 생명과 삶의 본질을 단박에 느끼게 하는 풍경이다. 인적없는 풍경들이지만 삶과 사람의 모습이 겹친다. 이 땅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자분자분 되묻는 느낌이 든다. 풍경들이 맞는 눈보라와 비바람, 은빛 햇살과 안개 속 풍경이 그대로 사람 사는 모습이요 삶을 아우르는 고난과 희망이기 때문이다.

전북 무주2000 ⓒ 정인숙

전북 무주에서 찍은 조선 소나무는 그곳을 지나칠 때면 꼭 들러 몇번이고 찍었단다. 조선소나무는 일제식민시절 벌목당하고 수난 당한 나무다. 배배꼬고 비틀며 자라는 모습이 일본을 비판하는 조선인의 심성을 닮아 보였대서다. 무참히 잘렸어도 조선 소나무는 사람 발길 드문 곳에서 모질고 굳건하게 버텨왔다. 요즘은 개발이다 하여 주변이 파헤쳐지면서 다시 불안하다.

주변의 벌목 현장을 감싸는 안개 탓에 조선소나무의 자태와 기골이 더욱 돋보이고 생동감이 살아난다. 안개로 덮어두는 공포와 불안이 아니라 안개처럼 감싸며 포근한 세상이 그리운거다. 그러고 보면 정인숙이 찍은 풍경엔 삶의 질곡이 드러나지 않은 채 숨어 있다.

정인숙은 이 사진들을 홀로 다니며 찍었다. 깊은 산속은 무섭고 쓸쓸했단다. 고행 없는 행복이 있겠는가. 자유 또한 외로움이요 평화도 투쟁 아니던가. 그렇지만 누가 뭐래도 쓸쓸함과 무서움을 달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을 누구보다 잘 통하는 생명으로 여긴 까닭이다.

누구던 쉽게 숲과 나무를 본다. 그러나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는가. 마치 개똥을 보고 시골 길바닥에 흔한 개똥이야 하듯. 그러나 같은 개똥도 권정생은 동화 <강아지 똥>에서 자기 몸을 찢어내는 고통을 견디며 별같이 아름다운 민들레를 피우는 생명체로 살려낸다.

정인숙은 숲과 나무를 어떻게 보았는가. 계절과 세월, 기후와 빛에 따라 저항하고 포용하는 모습을 생명감 넘치게 담아낸다. 늙은이의 뼈마디 같은 나무가지, 바람에 흔들리며 무수한 나무잎들이 지르는 함성소리, 자연에서 삶의 고단함, 생명력, 기쁨, 희망을 노래한다.

전북무주2001 ⓒ 정인숙

나무들을 보라. 안개 속에 나무, 온 몸을 흔드는 나무, 한 목소리로 시위하는 나무, 무성한 잎, 섹시한 나무, 카리스마 소나무, 은빛 역광을 뒤집어 쓴 그늘 안 버드나무, 안개와 숲들이 사람을 닮았고 삶을 닮았다.

<전시경력>
개인전
2008년 정인숙 사진  풍경2 (가나아트스페이스, 서울)
2007년 정인숙 사진  풍경1 (인사아트센터, 서울)
2003년 불구의 땅 (대안공간 풀, 서울)
2002년 작은풍경 (갤러리 룩스, 서울)
1991년 동해안풍경 (공간미술관, 서울) 등 다수

단체전
2008년 민중의 고동-한국미술의 리얼리즘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등 순회)
2007년 복숭아꽃 살구꽃 (성산아트홀, 창원) 2006년 코리아통일미술전 (광주시립미술관)
2005년 광복 60년, 시대와 사람들 (마로니에 미술관, 서울)
2004년 평화선언 2004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03년 한국사진의 탐색전 (경인미술관, 서울)
2002년 조국의 산하전: 공유 (관훈갤러리, 서울) 등 다수

사진집
2008년 사진집: 정인숙 사진  풍경2 (도서출판 일)
2007년 사진집: 정인숙 사진 풍경 (도서출판 일)
2003년 사진집: 불구의 땅 (눈빛출판사)
2002년 사진기술 저서: 존시스템 (눈빛출판사) 외

얼마 전 돌아가신 어린이문학가 권정생님이 생전에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마을에 아주 고약한 시어머니가 살았는데 며느리를 못살게 구박을 했단다. 하잖은 일에도 두들겨 패고 남편과 이간질하는 행패를 일삼았단다. 마음에 상처와 고통을 참다 견디지 못한 며느리는 동구밖 숲에 가서 나무들에게 하소연을 했단다. 나무들은 마음이 아파 며느리를 위로하며 눈물을 흘렸단다.

어느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한바탕 심술을 부리고 동구밖 나무 그늘에 쉬러 왔단다. 나무들은 며느리의 고통을 시어머니에게 전하면서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단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나무들이 한말을 듣고 바로 달려가 설겆이 하는 며느리의 머리채를 낚아채며 이년이 내흉을 나무들에게 했다면서 몽둥이로 때려 죽였단다. 이 소식을 숲으로 부는 바람에게 전해들은 나무들은 놀라서 그 다음부터 지금까지 인간들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정인숙은 혼자서 잘 중얼거린다. 누가 듣던 말던…. 나무, 숲. 사물, 자연에게 말을 건다. 옛날 그 며느리 처럼…. 그러나 걱정할 일은 없다. 정인숙은 결국, 사진으로 말할테니까….

'빛과 물과 바람의 시간, 숨쉬는 모습이 드러난 자리들
사는 땅에 오랫동안 뿌리내려 다져진 풍광과 감성…
찬찬히 다가가면 질서가 보입니다. 소리가 들립니다.
소리가 바람이 되어 흩어지고 바람이 물을 만나 날마다 새날, 새빛
그안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정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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