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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선생님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딸아이 둔 엄마 마음이..."

초등생 납치 사건 여파로 남자 방문교사는 괴롭다

등록|2008.04.04 09:22 수정|2008.04.04 09:22
저는 초등학생을 상대로 토론과 독서 논술을 지도하는 방문 교사입니다. 학원이 아니라 아이들 가정을 방문해 모둠으로 수업을 하는 거지요. 남자 방문 교사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 사무실 30여 명의 방문교사 중 남자교사는 저를 포함해 달랑 2명이니까요.

기본으로 2~6명 모둠수업을 하지만 부득이 시간이 안 맞거나 학습 상태에 따라 1:1로 수업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수업은 오후 1시경부터 늦게는 밤 10시 넘어서까지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남자 교사가 가정을 방문해 하는 수업이다 보니 딸이 있는 어머니들은 걱정합니다. 실제로 독서 논술 수업을 받고 싶어 사무실에 문의했는데 그 아파트 담당 교사가 남자라서 수업을 포기한 어머니도 꽤 있습니다.

"딸아이 혼자 있는 집에 남 선생님 들어간다는 게 좀..."

또 어떤 어머니는 저와 대면하면서 "선생님을 믿지 못해 그런 건 아니지만, 딸 가진 엄마 마음이 그렇습니다. 이해해주세요"라며 제게 애로사항을 털어놓기도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직장에 다니시기에 아이들이 모이기 전에 딸아이 혼자 있는 집에 남자 선생님이 들어간다는 게 좀 그랬을 것입니다.

"네, 네,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아이 키우는 걸요"라고 대답하며 웃을 뿐이지요. 기분 나쁘거나 불쾌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이 워낙 흉흉하니까요. 아무도 없는 집에 특히 여자아이들로만 꾸린 모둠의 어머니들은 불안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점심 때부터 밤까지 한 아파트 단지에서 하루 종일 옮겨다니며 수업을 하다보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가 많습니다.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학교가 있어 모르는 초등학생과 같이 탈 때가 상당히 많은데 제가 종종 말을 걸곤합니다.

"너, 00 아니?"
"네, 알아요. 같은 반인데요."
"그럼, 00도 아니?"
"네, 4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요."
"아, 그렇구나, 내가 그 친구들 토론독서논술 선생님이야."
"네, 그 논술 누구누구한테 들어서 알고 있어요."

이제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아예 말도 못 붙여

전에는 이랬거든요. 한다리 건너 아는 사람 만나면 반갑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일산 성범죄 납치 미수 사건과 잇따르는 어린이 성범죄(미수) 사건이 터진 후 엘리베이터 안에서 쉽게 말을 못 붙입니다. 말을 붙여봤더니 대답은 안 하고 슬슬 피하더니 내리자마자 후다닥 뛰어내려 손으로 비밀번호를 가리고 문을 열더군요. 집에서 교육을 시켰겠지요.

엘리베이터 안 머리 위에서는 감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데 말이지요. 허걱, 자칫하다가는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기 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쳐다보면 힐끔힐끔 보면서 슬슬 피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전국에 계신 그리 많지 않은 남성 방문교사들의 애로사항이 좀더 늘어나겠네요. 하루빨리 사회적 안전망이 마련돼서 어린 학생들은 물론이고 저같은 남성 방문교사들도 맘편히 다닐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어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초등생들은 나를 경계하며 힐끔힐끔 본다.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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