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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실패할까 봐, 불구될까 봐 무서웠죠"

산악인 엄홍길, 88만원 세대를 만나다

등록|2008.04.04 17:08 수정|2008.04.04 19:47

▲ 강연중인 산악인 엄홍길. ⓒ 구자민


"실패할까 봐 두려웠고, 사고 당해 불구 될까 무서웠고, 죽게 될까 떨렸습니다. 허나,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니까 결국 되더군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여러 번의 실패, 성공은 그 다음에 오더군요."

산악인 엄홍길은 '성공'이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사용했다. 비슷한 분량으로 '실패'라는 단어도 자주 등장했다. 엄 대장은 그 두 단어를 말할 때면 항상 강한 액센트를 냈다. "실패는 성공과 동일한 말"이라고 했다.

엄 대장은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었고 강단에 섰지만,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다시 하얗게 되기란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새까만 얼굴에 두 눈은 히말라야의 만년설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산악원정대 대장의 모습, 그대로인 듯했다.

동상 걸려 발가락 두 개 절단, '14좌 정복' 꿈도 잃어…

▲ 인제대학교 장영실관 소극장의 모습. 수업이 한창인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 구자민



3일 오후 3시, 엄홍길 대장은 김해 인제대학교에서 열린 '신과 함께 살아가는 하늘밑 나라 네팔 문화전'에 참석해 대학생들을 위한 특별 강의를 했다. 

'88만원' 세대의 척박한 운명이 히말라야의 8000미터급 14좌와 비슷해서 일까. 이를 정복한 엄홍길 대장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수많은 대학생들이 강연장을 찾았다. 375석 좌석은 이미 만원을 이루었고, 100여명의 학생들은 서서 강연을 듣기도 했다.

"K-2에 오를 때는 좌절을 많이 했습니다. 자신감만 갖고 용기만 갖고 되는 게 아니었죠. 무려 6번이나 실패했고, 전 발가락 두 개를 잃었습니다. 오른쪽 엄지발가락 한마디, 그리고 검지까지… 그 이후로 동료들이 산에 가자고 하면 '그래, 이번에 성공할 거야'라는 생각보다 '실패하면 어쩌지? 또 사고 나면 어쩌지?'라는 생각부터 들더라고요."

엄 대장의 사고 경험담에 장내는 잠시 숙연해졌다. 동상에 발가락을 잃었다는 대목에서 나는 그가 왜 굳이 그렇게 위험한 산을 등반하려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히 알아주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실용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잘린 발가락을 보며 병실에 누워 있으니, '제 신체를 잘라가며 까지 등반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로 히말라야 14좌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서양 사람들도 그런 저를 비웃더군요. 남한에서 제일 큰 산이 한라산 1950미터라고 당당하게 말하면 우습다는 반응을 보냅니다. 자기들한테는 뒷동산이나 다름없다는 거죠."

장내는 다시 웃음이 넘쳤다. 가식 없는 솔직한 어투에 학생들은 금새 동화되는 듯했다. 엄 대장은 당시에 히말라야 14좌 등반의 꿈은 포기했지만 산은 꾸준히 찾았다고 한다. 그저 산이 좋았으니까…. 엄대장이 K2를 다시 도전하게 된 계기는 스페인 친구의 도움 덕택이었다.

히말라야 16좌까지 38번의 실패, 10명의 동료 잃어...

▲ 엄홍길 대장 ⓒ 구자민


"재정적인 문제로 다시 K2를 오른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는데, 2개월 만에 모든 장비와 비용이 해결됐습니다. 스페인 친구 덕분에요.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로 얼마나 좋았던지, 전 다시 8000미터 급 히말라야 14좌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죠. 아니, 제 마음속에는 항상 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헌데 좋았던 만큼 걱정도 앞섰습니다. 그들과는 피부색도 틀리고 언어, 문화가 틀리기 때문이었죠. 가장 중요한 건 대원들간 믿음과 팀워크인데. 그게 준비되지 않으면 절대 산을 오를 수 없죠.

서양인들이 워낙 개인주의적이라 믿음이 생기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동양인 팀과 서양인 팀간 실력대결에서도 자신도 없었죠. 기술적 체력적으로요. 걔네들만 성공하고 우리는 실패하면 무슨 망신인가요."

엄 대장은 K2에 오르기 전, 자신과 두 가지 약속을 했다고 한다. 첫째는 동료를 위한 '희생', 둘째는 무조건 한발 더 가자는 '솔선수범' 정신이었다. 실제로 현장에선 서양인 팀 대원들과 거리감이 느껴졌고, 팀워크를 끌어올리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초심을 잃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짐했던 대로 위험한 일에 내가 가장 먼저 나서고, 힘들어도 남보다 한발 더 움직이니 끝내 대원들이 저를 인정했고, 서로 마음을 터 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완벽히 하나가 됐다는 느낌마저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엄대장은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한다. 300미터를 남겨두고 8300미터 히말라야 산 중턱에서 50여일을 보낸다. 체력도 바닥나고 사기도 급격히 저하됐다. 이젠 모두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엄대장도 마찬가지였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집에나 좀 갔으면 좋겠습니다. 대장님."
"미스터 엄, 이제 그만 포기하고 내려가는 게 어떻겠소."

엄 대장도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방바닥에 누워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허나 차마 내려가자는 말은 못했다. 다시는 이렇게 끈끈하게 뭉치지 못하리라, 다시는 이 대원들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 된다. 나는 절대 못 내려간다."
"그럼 기회는 오직 한번이요. 실패하든 성공하든… 내려가는 겁니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히말라야 16좌 정복,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세 번째 시도에 마침내 성공했다. 2000년 7월 31일의 일이다. 엄 대장은 대원들을 끌어안으면서 울었다. 그 순간이 너무 값졌다. 세계에서 8번째로, 대한민국에선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올랐다.

"만약 실패했다면 다시는 이 대원들끼리 뭉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음으로부터 대원들을 보내지 않아서 너무 기뻤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엄 대장은 2007년 히말라야의 위성봉이라 불리는 얄룽카, 로체사르까지 총 16좌를 모두 올랐다. 16좌까지 오르면서 총 38번의 도전을 했고 10명의 동료를 잃었다.

"제가 오늘날 이런 특강을 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동료들의 값지고 고귀한 희생 때문입니다. 정상이 가까워오거나 위기의 상황을 맞을 때, 수없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동료들을 떠올립니다. '성공에 대한 욕심은 버리자. 동료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단지, 대신 이루는 것뿐이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엄 대장은 희생정신을 바탕에 둔 팀워크와 동료애를, 성공보다는 오히려 실패를 강조했다.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것보다는 끈기와 인내, 우직함이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성공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도 버리세요.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면 성공은 더 값지게 다가올 것입니다."

▲ 로체에 등반하고 있는 엄홍길의 모습. ⓒ www.umhonggil.com


덧붙이는 글 경남 김해에 위치한 인제대학교에서 열린 '신과 함께 살아가는 하늘 밑 나라 네팔 문화전'은 4월 3일부터 11일까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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