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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교육이 싫어 외국 나가겠다는 고3 아들

한달에 이틀 쉬고· 문제집만 푸는 입시생 생활, 그러나...

등록|2008.04.08 09:25 수정|2008.04.08 09:25

한달에 이틀만 쉬라니... 고3 수험생은 입시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수능 시험을 보는 학생들의 모습. ⓒ 오마이뉴스 강성관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다른 집처럼 우리 집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무엇보다도 작년까지 오전 8시 20분까지 학교 가던 것이 오전7시 30분으로 당겨졌습니다. 아침 자율학습 때문에 일찍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밤 늦게 자고 아침잠이 많은 아들에게 그것은 정말 큰 고통이었습니다. 오전6시에 일어나 7시까지 씻고 밥 먹고 해야 하기 때문에 저도 덩달아 바빠졌습니다. 등교 시간만이 아닙니다. 하교 시간도 야간 자율학습이 밤9시에서 10시까지로 한 시간 늘어나는 바람에 거의 밤11시가 됐습니다.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아들을 저는 안쓰럽게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바뀐 고3 아들의 일상

아들의 꿈은 영화감독입니다. 그래서 영화 주간지를 열심히 보고 시간나는대로 관심 있는 영화를 자주 보는 편입니다. 하지만 올해 3학년이 되면서부터 그 즐거운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세계의 유명한 영화를 보면서 앞날의 꿈을 하나하나 키워나간 아들에게 그것은 참으로 커다란 고통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에게 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3학년이 되었으니까 앞으로 토요일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도 나와서 저녁 5시까지 자율학습을 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게다가 더 믿기 어려운 것은 일명 '놀토(매달 두 번째와 네 번째 쉬는 토요일)'에도 나와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분노는 터졌습니다. 아무리 대학입시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이럴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같이 학교에 나가 공부할 수가 있느냐며 이 땅의 숨막히는 교육 풍토를 거칠게 비난했습니다. 저도 그것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에게 힘들지만 어떻게 하냐며 참고 견디자고 할 뿐이었습니다.

며칠 후 그 일은 천만다행으로 철회되었습니다. 학교도 그런 반응을 참작했는지 놀토가 있는 주는 그날은 나오고 그 다음날인 일요일에 쉬는 것으로 했습니다. 아들아이가 다니는 인천지역의 한 고등학교는 놀토가 없는 주는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갑니다. 그래서 아들은 한 달에 이틀은 학교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쉬게 됐습니다. 그마나 쉬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되는 이 나라의 현실이 정말 가슴 아팠습니다.

아들의 고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3학년이 되니 교과서 진도를 안 나가고 거의 대부분 문제집을 구입해서 진도를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현실에 대해 아들은 수긍은 하면서도 크게 잘못된 것이라며 이 나라 교육이 정말 싫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아들의 교과서를 봤습니다. 다는 아니지만 일부 교과서는 새 책 그대로 단 한 장도 펴보지 않은 상태에서 분리수거장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교과과정상 학교에서 배우도록 되어 있는 것이지만 입시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고 수능 문제집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왜 사게 했을까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을 교과서를 왜 돈을 주고 사게 했을까요? 아들도 저도 화가 났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을 반영해서 입시와 관련이 없는 교과서는 구입하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에 나가 살겠다는 아들

이 나라에서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공부해야 하지만 아들은 점점 이 땅의 교육 풍토에 대해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을 들어가야겠지만 이 나라에서는 살기 싫다고, 그래서 나중에 다른 나라 가서 산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땅에서 결혼해서 자식 낳아서 자신이 겪고 있는 이와 같은 교육을 받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숨이 꽉 막힌다고 했습니다. 하루 종일 문제집만을 푸는 이런 교육 풍토가 싫다고 했습니다. 공부도 좋지만 사람이 여유 시간도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책도 읽고 생각도 하며 삶의 참된 가치에 대해 꿈을 꿔야 하는데 전혀 그럴 수가 없는 이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저는 가만히 아들의 말을 듣기만 했습니다. 구구절절 그 말이 다 맞기 때문입니다. 나라도 여건만 된다면 이 땅에서 이와 같은 교육을 받기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잠시 후 걱정이 됐습니다. 아들과 떨어져 사는 것이 상상도 하기 싫었지만 그것보다도 그것이 가져올 결과가 너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분노로 가득 찬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습니다. 굳게 결심을 하고 비장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아들 보고 그렇게 이 땅의 교육 풍토에 환멸을 느껴 다른 나라로 가서 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데 그들이 다들 나가서 살면 이 나라의 교육은 앞으로도 아무런 희망이 없이 지금과 같은 절망만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아빠도 이 땅의 교육 풍토에 대해 절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했습니다. 비록 내가 힘은 없지만 잘못된 이 나라 교육 현실을 조금이라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힘주어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희망이 없는 이 땅의 교육 현실에 자그마한 힘이 되어주자고 했습니다.

아들은 저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듣기만 했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했습니다. 아들이 이 땅에서 멋있는 영화감독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삼대가 모여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자라면서 교육 현장에서 수없이 겪은 고통을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는데 힘을 모으자고 했습니다. 그것이 이 땅의 교육 풍토가 싫어서 외국에 나가 사는 것보다 훨씬 나은 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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