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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농장의 마늘이 몽땅 없어졌어요

지난 겨울 심어놓고 잘 자라던 마늘이었는데...

등록|2008.04.08 13:52 수정|2008.04.08 13:52
지난 일요일(6일) 밖에 나갔다 온 남편의 손에 무언가 한주먹이 들려있었다. "흙이 떨어지네. 그게 뭐야?" "내가 기가막힌다. 기가 막혀. 마늘밭에 가봤더니 다 뽑아가고 요거 남아서 가지고 온 거야" "어머 어머, 무슨 그런 일이 다 있냐. 마늘이 없어지다니. 그 많던 마늘이 다 어디로 가?""내가 아나. 마늘밭 한쪽에서 다듬어 갔는지 그 자국까지도 있더라니깐. 아주 여유있게 가지고 갔더라고"한다. 허탈한 남편의 목소리이다.

스티로폼에 심어 놓은 마늘.. ⓒ 정현순

그리곤 베란다에 있던 작은 스티로폼에 심어놓는다. 남편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난 "고거 남은 것을 무어라 가지고 와. 거기다 그냥 놔두고 오지" "그래도 이게 아직은 살아있는데" 한다. 정성스럽게 심고 스프레이로 물을  주었다. 물을 주고 남은 남은 물을 보더니   "아니 이 물이 왜 파래?"하며 놀랜다. "그거 유리닦는 세제잖아" 또 한번  남편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었다. 할 수없이 그위에 맑은 물을 다시 주는 듯했다. "이러다 죽으면 어쩌지"하면서.

남편은 지난 겨울에 시험 삼아 마늘을 심었다. 마늘을 심어놓고 하루가 멀다하고 그곳에 가보곤 했었다. 추운 겨울을 잘 지내야 싹이 잘 난다면서 비닐도 덮어주었다. 그런 남편에게 "오늘은 싹이 났어?" 하고 물어보면 "이렇게 추운데 무슨 싹이 나 조금 더 있어야지"하면서도 즐거운 표정을 지었었다. "돌아오는 봄에는 내가 지은 마늘을 먹을 수 있을 거야"하면서. 나도 내심 기대를 걸고있었다.

한달 전쯤 마늘밭.. ⓒ 정현순


하여 올케한테도 자랑을 하고 딸아이한테도 자랑을 했다.  올케도 "잘 하면 우리 차례도 올 수 있겠네요" "그럼 잘 되면 그거 우리 혼자 다 못 먹어 나누어 먹어야지"하면서 우리들도 좋아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마늘에 싹이 하나둘씩 나기 시작했다. 마늘이 새싹을 처음 보던 날 남편은 아주 신이 나있었다.

날이 갈 수록 마늘은 잘 자랐다. 하루가 다르게 진초록의 이파리로 물이 들면서. 나보고도 같이 가보자고 해서 한달 전쯤 마늘을 보러갔었다. 정말 잘 자라있었다. 그런후에도 남편은 수시로 그곳에 가서 마늘을 보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회사일이 조금씩  바빠지면서 발걸음이 뜸해진 것이다. 그러곤 지난 주말에 가보니깐 완전히 초토화가 되고 만 것이다. 남편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면서 올해는 맥이 빠져서 농사짓기가 싫다고 한다.

진짜 누가 가지고 갔는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한뺨 정도로 잘 자란 풋마늘이 아주 맛있는 시기이다. 그래도 그렇지 남이 정성들여 키우고 있는 것을 빤히 알 텐데. 그것을 그렇게 몽땅 뽑아 가다니. 몇개 정도 뽑아가는 것은 애교로 얼마든지 봐줄 수있다. 하지만 그렇게 몽땅 뽑아간 것은 사람으로서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베란다에 심어 놓은 마늘이라도 잘 자라주면 남편의 허전한 마음이 조금은 위로가 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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