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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자 비판' 잊혀진 선거, '뉴타운' 슬그머니

모순의 표심... 사건과 쟁점으로 정리해본 선거운동

등록|2008.04.08 20:04 수정|2008.04.08 21:31
간혹 논란과 공방은 있었지만 이슈가 되지는 못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대신 관권·금권선거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땅부자 내각'을 비난하던 국민들은 선거철이 되자 '뉴타운 개발' 공약에 매혹됐다.

단편적인 해석일 수도 있지만, 2008년 4월의 18대 국회의원 총선은 이처럼 '모순의 선거'로 기록될지 모른다.

일반인들의 상식을 뒤집은 '모순의 선거'는 양당체제를 붕괴시키면서 또 한편으로는 정당 정치의 토대마저 흔들어 놓았다.

대통령 '후광' 사라지고, '박근혜 마케팅' 뜨고

▲ 한나라당 공천심사에서 탈락한 신동욱(서울 중랑을) 백석 문화대 교수와 공천후보자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7일 여의도 당사 앞에서 강재섭 대표와 공천심사위원회를 비난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유성호

정당 정치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당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한 여야의 공천 과정에서 드러났다.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은 자당 현역 의원의 39.0%와 22.8%를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사상 최대폭의 공천 물갈이로 국민들은 일시적인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지 모르지만, 상당수 후보들이 명확한 탈락 사유조차 알려주지 않는 공천심사위에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계 의원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많이 당했고, 이들은 집단 탈당해 '친박연대'라는 생소한 깃발을 들고 자신이 몸담았던 정당과 대결하기에 이르렀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뒤 출마한 사람이 70~80명에 이르렀고, 이들 중 10~20명은 한나라당 후보를 제치고 지역구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다.

대선에서 이긴 지 3개월이 조금 넘은 시점에 선거가 치러졌음에도 여당 후보들이 대통령의 후광을 입지 못한 것도 특이한 사례로 기억될 만 하다.

'이명박 마케팅'이 재미를 못본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연일 상종가를 쳤다.

한나라당 후보와 친박연대 후보가 자신들에 대한 소개는 젖혀놓고 "누가 더 박 전 대표와 가까운지"를 놓고 '원조 대 짝퉁' 친박 논쟁을 벌이는가 하면, 친박연대가 지난달 30일부터 내보낸 박 전 대표의 사진·동영상 광고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당 지도부는 "박 전 대표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비난했지만, 정작 '초상권을 침해당한' 박 전 대표는 해당 광고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표시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가 선거기간 동안 보여준 모습은 '경계인'에 가까웠다. 그는 당내의 친박 후보들을 격려하는 메시지를 담은 동영상을 배포하고 대전의 강창희 후보를 직접 찾아가는가 하면, 일부러 자신의 지역구까지 찾아온 경북의 친박연대·친박무소속 후보들을 어색한 미소로 맞이했다. 그는 더 나아가 "탈당 인사들이 당선되면 다시 들어와야 된다"는 발언으로 '복당 불가'를 천명한 지도부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웠다.

대구·경북의 민심이 그에게 적잖은 동정여론을 보내자 여당의 실세 이상득 국회부의장까지 "(복당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고 맞장구를 쳐 구설수에 올랐다.

정당 정치가 자리를 잡으며 퇴조 기미를 보이던 무소속 후보들이 다시 강세를 보인 것도 '박근혜 마케팅'에 힘입은 바가 크다.

▲ 대전 서구갑에 출마한 한나라당 한기온 후보와 친박연대 이영규 후보가 박근혜 전 대표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을 동시에 내걸어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 이영규


크고 작은 악재 겪은 여당, 그래도 쟁점화 못하는 야당

한편으로 이번처럼 쟁점 없이 치러진 총선도 드물었다.

이슈가 만들어지지 않자 바람도 불지 않았고, 바람이 불지 않자 야당의 생존 기반도 함께 위협을 당하는 형국이 됐다. 야당의 쇠퇴가 양당제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겠냐는 우려도 많다.

88년은 6공화국과 3김의 격돌, 92년은 거대여당 견제론, 96년은 김대중의 정계복귀와 '북풍', 2000년은 시민단체의 낙선·낙천 운동, 2004년은 탄핵 역풍 등이 선거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올해 선거의 기본 구도는 여당의 안정론과 야당의 견제론의 대결이었지만, 여야 어느 쪽도 국민들에게 미더운 존재로 인식되지 못한 탓에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오히려 부동층이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번 선거가 다소 '심심하게' 치러진 것은 무기력한 야당의 책임도 없지 않다.

여당에 크고 작은 악재가 터졌지만, 통합민주당 등 야당들이 이를 쟁점화시킬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이 비리 전력이 있는 11명의 유력정치인들을 모조리 공천에서 배제해 파란을 일으켰다. 박 위원장이 워낙 피도 눈물도 없는 잣대를 대다보니 "장발장을 쫓는 자베르 경감 같다(신계륜 전 민주당 사무총장)"는 비유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과 '박재승 효과'에 힘입어 민주당이 잠시 활기를 찾는 듯 했으나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을 만큼 국민들의 신망을 얻지 못했다.

한나라당 공천자였던 김택기 전 의원이 금품을 살포했다가 적발되고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지역감정 조장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등 선거 초반부터 민주당에 호재가 쏟아졌다.

특히 강 대표는 대구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YS) 때까지 치면 TK(대구·경북)는 15년간 핍박을 받았다"고 말하고, 부산에서는 "지난 10년간 부산이 피해를 받았다"는 등 가는 곳마다 모순된 논리로 지역민심을 자극해 눈총을 받았다.

▲ 한나라당 4.9총선 태백.영월.평창.정선 지역 공천자인 김택기 후보가 지난달 24일 간담회에서 유권자들에게 4천만원을 돌리려다 선관위에 적발됐다. 선관위는 김택기 후보측 관계자의 차량에서 돈 4천만원과 명함등을 압수했으며, 김택기 후보는 다음날 공천을 반납했다. ⓒ 선관위 제공


대운하·북풍·성희롱·관권선거 공방, 이슈는 있었지만...

한나라당이 핵심공약에서 제외시킨 한반도 대운하는 이번 선거의 유일한 정책이슈였다. 비슷한 시기 국토해양부가 대운하 프로젝트를 은밀히 준비하고 있었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유출돼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은평의 '뿌리 깊은 나무' 이재오 한나라당 후보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에 고전한 것도 대운하 추진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으로 해석됐다.

북한이 서해안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개성공단의 남측 요원들을 철수시키는 등 선거를 앞두고 '북풍' 변수가 떠오르기도 했다.

지난 3일에는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정몽준 한나라당 후보가 MBC 여기자의 볼을 건드린 것이 '성희롱' 논란으로 비화됐다. 정 후보는 애매한 문구의 해명자료로 사안을 덮으려고 했지만, MBC가 사건 당시 동영상을 공개할 움직임을 보이자 한 나절도 되지 않아 공개 사과를 했다.

선거 종반에는 장·차관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여당 후보를 측면 지원한다는 의혹들이 불거지며 관권선거 논란이 빚어졌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중앙선관위가 '공무원의 선거중립'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지 하루 만에 이재오 의원의 지역구에 있는 은평 뉴타운을 찾아갔다. 중앙선관위는 이 대통령의 행위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대통령이 법망을 피해 측근을 편법지원했다는 시비는 계속되고 있다.

유권자들의 관심은 뉴타운 개발, 특목고 유치로

그러나 이처럼 크고 작은 사건들은 유권자들의 표심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영호남 지역구도가 여전한 가운데 충청권에서는 자유선진당이 강세를 보였고, 수도권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들이 당의 높은 지지율에 힘입어 야당의 중량급 의원들과 대등한 승부를 펼쳤다.

유권자들이 중앙정치권의 정치적 논쟁보다는 지역사회 개발이나 교육환경 개선 등 생활밀착형 공약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 후보들까지 뉴타운 개발이나 특목고 유치 등 야당에 어울리지 않는 공약을 남발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공천이 늦어지는 바람에 후보들이 선거운동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음에도 선거운동이 시작되자마자 후보들간에 금품살포·흑색선전 시비가 붙고 고소고발과 상호비방전이 끊이지 않은 것도 이번 총선의 오점으로 남았다.

선거 종반에 접어들며 "여당 후보들이 수도권에서 선전하고 영남권에서는 친여 무소속들이 강세를 보인다"는 분석이 유력하지만, 선거기간의 크고 작은 쟁점들이 유권자들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주목된다.

▲ 지난해 1월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 부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문을 여시면 부자됩니다'라는 홍보문구가 붙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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