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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역사팩션 43] 미국,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하다

김갑수 대하소설 <제국과 인간> 상해의 영혼들 편

등록|2008.04.09 17:40 수정|2008.04.09 17:40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 침공에 맞서 군사 동원령을 내린다. ‘얼지 않는 항구’를 염원하던 러시아는 처음 한반도에 눈독을 들였었으나 러일전쟁의 패배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발칸 즉 세르비아에 기어이 부동항을 확보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던 터였다.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한 것은 전쟁의 확산을 예측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 당시 독일은 군비 강화가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놀랍게도 독일은 영국 · 프랑스와의 전쟁을 획책하고 있었다. 독일은 외교적인 고립으로 벽에 부닥친 식민지 진출을 타개하기 위해서 이웃국과도 전쟁을 불사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은 벨기에의 중립을 인정하지 않는 프랑스를 비난하다가 내친 김에 아예 벨기에의 국경을 넘어 북서 프랑스를 향해 진공했다. 이에 대응하여 영국은 대독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전선은 일약 협상국들 대 동맹국들의 전면전으로 확산되었다. 그 결과 이태리를 제외한 유럽 전역이 전화에 휩싸이게 된다.

이 사이를 이용하여 일본은 중국에서의 독일 이권을 빼앗고 나아가 대륙 침략의 발판을 굳히기 위해 협상국 측에 가담한 것이었다. 초기 전쟁은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원하는 대로 독일의 우세로 나타났지만 중반에 들어 차츰 백중세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독일은 식량과 원료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특단의 전략을 구사하게 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무제한잠수함작전’이었다. 이것은 영국 해상을 봉쇄하고 출입하는 선박들은 중립국의 것일지라도 무조건 격퇴한다는 일종의 극약 처방이었다. 영국은 미국의 참전을 고대하고 있었다. 마침 러시아는 국내 혁명으로 협상국 대열에서 빠지게 되었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뒤늦게 대전에 참여한다. 모든 나라가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등장한 미국은 이내 전쟁의 주도권을 잡았고 전승국으로서 가장 많은 이득을 챙긴다. 미국이  실질적인 세계 최강 대국으로 올라선 것은 바로 이때였다.

전차와 독가스가 처음 사용된 이 전쟁에서 유럽 제국주의 교전국들은 자국 인구의 10분의 1을 잃으면서도 더 많은 식민지 확보를 위해서 끊임없이 야합하면서 비밀 협상들을 벌였다. 협상국 측은 이태리에 터키 령과 아프리카의 독일 령을 넘기겠다고 밀약했고, 루마니아에는 헝가리 령 트란실바니아를 주겠다고 회유했다.

동맹국 측은 불가리아에 세르비아 령 마케도니아를 넘기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협상국 측의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를 붙잡아 두기 위해 오스만투르크의 다르다넬스와 보스포르스 양 해협을 주겠다고 했으며, 이후 세 나라는 다시 모여 영국은 남메소포타미아를, 프랑스는 시리아를, 러시아는 흑해 동남 연안을 각각 나눠 먹기로 밀약했다.

역시 영국은 제국주의의 원조답게 위약과 기만에서도 가장 앞서는 나라였다. 그들은 인도에 전쟁에 협조하면 전후 자치를 허용하겠다고 약속하고는 지키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같은 땅을 이중으로 분양하기도 했다. 그들은 1916년 초 팔레스티나 지역에 아랍국가 건설을 약속하는 한편 이듬해 11월에는 유대인의 지원을 얻으려고 유대인 국가의 건설을 약속하기도 했다.

민제호는 신규식에게 미국 관련 특강을 서둘러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일주일 후 민제호는 ‘미국의 제국주의’라는 제목으로 박달학원에서 특강을 했다. 신규식과 박은식 신채호 박찬익 등을 비롯한 간부진, 백주원과 민필호 그리고 신규식의 경호를 전담하는 중국 청년 대조신과 한국 청년 김충일 등의 실무진, 그리고 학생 80여 명이 강당에 꽉 들어찼다.

김태수의 얼굴도 보였다. 이것은 미국에 대한 상해인들의 관심이 최근 들어 부쩍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특히 박은식은 이제 환갑의 나이였다.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그는 청중석 맨 앞에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미국은 노예 문제로 인한 남북전쟁과 서부 개척, 그리고 사회의 의식 개혁 문제에 몰두하느라고 1890년까지는 해외로 관심을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1890년대에 들어 미국은 산업자본이 고도 성장했고 이것이 독점자본의 형태로 모습을 나타내면서 뒤늦게 제국주의의 조류에 합류했습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해외 진출을 주장하는 의견은 적지 않았습니다. 어떤 팽창주의 학자는 세계 우월국으로서 미국이 넓은 영토를 갖는 것은 ‘명백한 운명’, 즉 ‘메니페스트 디스티니’라고 규정했습니다.”

민제호는 목소리가 작은 편이었다. 민필호는 형의 작은 목소리가 안타까웠다. 마침 신채호가 민제호에게 좀 큰 소리로 말하라고 주문했다. 사실 민제호의 건강은 많이 악화되어 있었다. 그는 계속 물을 마시거나 이마의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미국은 이미 1867년에 태평양 미드웨이 군도를 획득했고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했습니다. 에이커 당 2센트의 염가였습니다. 미국은 1875년 하와이에서 타국의 권리 행사를 배타하는 조악을 맺음으로써 그곳을 미국의 도서로 편입시켰습니다. 이어 1878년에는 태평양 무역 중계 요지라 할 수 있는 사모아 군도에 해군기지를 둘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습니다. 미국이 우리 조선과 만난 것은 1882년 중국의 알선으로 맺어진 ‘조미우호통상조약’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다른 열강의 식민지 진출과는 비교될 수도 없는 정도였습니다. 이에 불만을 가진 기독교 지식인들은 앞장서 미국의 팽창주의를 부추겼습니다. 조시아 스트롱 목사는 ‘앵글로섹슨의 우월한 문명이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로 전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회학자인 존 피스크도 ‘앵글로섹슨의 언어, 정치, 종교가 세계에 퍼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치가들은 보다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해군력의 강화였습니다. 알프레드 머헨이 해군대학에서 행한 강연, ‘제해권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1898년, 스페인의 식민지 쿠바 문제로 일어난 미·스페인 전쟁은 미국이 제국주의로 치닫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쟁을 선동한 집단은 뉴욕 허스트 계 신문 ‘저널’지와 ‘월드’지였습니다. 그들은 스페인의 압제에 시달리는 쿠바인의 실상을 과장해서 보도했습니다.

처음 미국의 대통령은 쿠바 문제에 신중히 대처하려고 했지만, 허스트 계 신문들은 ‘주미 스페인 대사가 미국 대통령을 모욕했다’는 등의 자극성 있는 기사로 여론을 몰아갔습니다. 그러던 차에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아바나 항에 파견된 메인호가 원인 불명의 폭발 사고로 장병 266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신문들은 “리멤버 더 메인”이라는 활자를 연일 크게 박아 보도하면서 스페인에 대한 선전포고를 주장했습니다. 여론에 밀린 매킨리 정부는 스페인에게 쿠바의 독립을 요구했는데 뜻밖에도 스페인은 이에 응했습니다. 전쟁을 해 봤자 미국은 얻을 것이 많은데 반해 스페인은 잃을 것만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전쟁 개시와 더불어 미국 동양 함대 사령관 존 듀이는 필리핀의 스페인 함대를 기습했습니다. 사전 극비 명령이 내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은 전선을 확대하여 쿠바 인근의 푸에르토리코와 태평양의 괌을 침공했고 여력을 몰아 필리핀까지 장악했습니다.

스페인의 제의로 파리에서 강화조약이 체결되어 쿠바의 독립이 승인되었고 미국은 배상으로 푸에르토리코와 괌을 양도받았으며 필리핀을 2천만 달러의 뇌물을 주고 차지했습니다. 물론 7,000개의 섬을 모두 포함한 가격이었습니다.”

민제호는 다시 물을 마셨다. 백주원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민제호의 안색을 살폈다. 그때 김태수가 불쑥 손을 들더니 민제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알래스카하고 비교하면 어디가 더 싼 겁니까?”

그러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김태수는 얼굴이 붉어졌다. 민제호는 환히 웃으며 좌중을 돌아보았다. 그는 김태수의 조크 성 질문으로 긴장이 다소 풀린 것 같았다. 백주원과 민필호의 표정이 밝아졌다.

“필리핀은 우리나라 면적의 1.4배 정도고 알래스카는 필리핀보다 다섯 배 정도 넓으니 알래스카 땅값이 싸게 먹힌 겁니다. 알래스카가 720만 달러였으니 필리핀이 훨씬 고가가 되겠습니다.”

다시 청중들이 웃었다. 민제호는 원기를 회복했다는 듯이 큰 소리로, “계속 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예!”
좌중의 거의 모든 사람이 일제히 대답했다.
덧붙이는 글 제국주의에 도전한 인간들의 매혹적인 삶과 사랑을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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