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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취방엔 창문이 없다

외로운 한국 유학생활, 내 마음의 창을 열다

등록|2008.04.10 15:08 수정|2008.04.10 15:28
이 허름한 자취방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혼자 지낸지도 어느덧 1년을 넘어선다. 내가 사는 자취방은 크지 않다. 그렇다고 작은 것도 아니다. 단지 창문이 없어 답답하고 어두울 뿐이다. 그만큼 방세도 엄청 싸고 소음이 전혀 없어 공부하기에 안성맞춤이긴 하다.

작년, 중국에서 처음 왔을 때 한국은 내게 너무나도 생소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확 트인 도시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북적북적 다니는 차량들, 현란한 간판과 골목 문화, 이는 여태껏 조용한 생활에 습관화돼왔던 나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중국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던 나였지만 한국의 드센 물가 앞에서 축 처질 수밖에 없었다. 단돈 1000원도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던 당시 나는 무엇보다도 내가 살 방을 마련했어야 했다. 생활정보지를 외우다 싶게 뒤지고 또 뒤져서 방이 좋고 나쁨을 떠나 일단 가격이 싼 것만 봤다.

하지만 싼 가격에 싼 방이라고 마음에 드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내 질서 없었던 경제관념을 자극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 탈진상태에 처해 있다가 찾은 방이 바로 지금의 방이다. 창문이 없다는 게 크나큰 흠이었지만 마음씨 착한 주인아저씨가 극구 싼 가격에 추천하는지라 솔깃해서 계약해버렸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수업 끝나고 자취방에 가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 지기 시작했다. 친구 하나 없이 외롭고 힘든 나날에 내 유일한 안락 처이고 쉼터여야 했을 자취방이었지만 창문도 없고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는 말 그대로 내 숨통을 더 꽉 조여 왔다.

"내일엔 뭘 먹어야 하나", 내가 꼭 잠들기 전에 하는 생각이었다. 따끈따끈한 햇밥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장국이 기다리고 있는 집은 역시 꿈속에서만 가능했다. 부모님의 소중함과 돈의 소중함이 뼈저리게 느껴지던 나날들이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간신히 한 달을 버텼지만 얼굴은 갈수록 초췌해지고 기는 팍 꺾어져 있었다. 나는 서러웠고 그런 내 자신이 불쌍했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같은 집 다른 방을 쓰는 여대생을 알게 되었다. 그 학생은 악착같이 공부하고 악착같이 '알바'하며 자립자강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 애는 자신이 고아라는 놀라운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날 그 애와 나는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울고 나니 너무 개운하고 시원했다.

그리고 나는 느꼈다. 나보다 불행하고 불쌍하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음을…. 분명 나는 내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내 마음의 커다란 창문을 훤히 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긴 심호흡을 하고 내 마음을 과감히 열어 제 꼈다. 그러니 웬걸, 마음도 훨씬 가벼워지고 새로운 친구들도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더욱이는 집에 오는 길이 즐거웠고 자취방이 포근하고 따스했다.

그렇게 벌써 1년이 지나갔다. 나는 지금 그토록 생소하게 느껴졌던 한국에 완전히 적응된 상태다. 어딜 가도 한국인 같은 외국인이다. 난 내가 바라고자 하는 것들을 하나 둘 이루어 가고 있다. 이는 다 고아인 그 여대생이 내 마음의 창문을 노크해준 덕분이다. 창문 없는 암흑한 자취방에서도 찬란한 햇빛을 볼 수 있는 방법을 내게 가르쳐준 친구,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창문 있는 자취방, 이제 더는 부럽지 않다.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내 마음의 창문이 있으니까. 내 창문은 항상 언제나 열어 놓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최령련 기자는 현재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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