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도의 명물이 된 '추억의 사진 가판대'
오동도와 함께 운명 같이할 터... 사진사 엄인섭 할아버지
▲ 오동도 사진사아름다운 섬 오동도. 그 섬에 가면 그가 있다. ⓒ 조찬현
눌러쓴 모자, 짙은 선글라스, 다부진 얼굴에서 묻어나는 그의 이미지에서 60대 초반이나 되겠거니 했는데, 본 나이(호적 나이 78세)가 82세라니 놀랄 밖에.
▲ 엄인섭 할아버지오동도의 산 증인 엄인섭 할아버지. 그의 본업은 사진사이다. ⓒ 조찬현
이제는 나이가 들어 동료들은 대부분 운명을 달리했거나 나와서 일을 해도 수지타산이 안 맞아 나오지 않는다. 혼자 일한 지가 8년이나 됐다며 할아버지는 아쉬워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세상이 됐으니 어디 돈벌이가 되겠느냐며 반문한다. 요즘은 겨우 용돈벌이나 한다고 말한다.
일회용 카메라를 사가는 손님에게 자신이 직접 단체사진을 찍어주겠다며 꼭 찾아오라고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일회용 카메라는 5m 이내에서 사진을 찍어야 잘 나온다는 사용 설명과 함께.
"뭍에서는 바람 한 점 없었는데 오동도에 오니 바람이 드세네요."
"오동도 날씨는 하루에 세 번 변해. 아침 점심 저녁 무렵이 다 달라, 그래서 요즘도 겨울옷을 챙겨 가지고 다녀."
"이게 뭐예요?"
"야외에서 이거 없으면 안 돼. 10년 된 라디오인데 내 친구야."
"여수가 고향인가 보죠?"
"광주가 고향이야. 40년 전에 여수로 내려와서 우리 아이들 다 키우고 평생을 오동도에서 보낸 거지."
"돈 많이 버세요?"
"포로시(겨우) 내 용돈이나 벌어."
여수의 종고산에서 오동도의 풍경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다는 엄인섭 할아버지. 그는 그 후로 아예 여수에 눌러앉았다. 종고산에서 오동도를 바라보는데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오동도 동백 숲이 그리도 좋더란다.
▲ 라디오“야외에서 이거 없으면 안 돼. 10년 된 라디오인데 내 친구야.” ⓒ 조찬현
농촌마을 돌며 결혼사진 찰칵! "그때만 해도 인기가 좋았지"
오동도 방파제 다리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물결이 이어진다.
"저 다리(768m의 서방파제)가 1933년에 만들어졌어. 그때는 오동도에 아무 시설도 없었어. 방파제에 파도가 치면 사람 키보다 파도가 3배나 올라갔었지. 폭죽 터지듯 방파제를 따라가며 '타다닥~' 치솟는 파도 보려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곤 했어."
"그때는 돈벌이도 좋았겠네요."
"수입이 괜찮았어. 아이들 학교 보내고 먹고 살고, 여유가 있었어."
"카메라는 어떤 걸 사용했나요?"
"독일산 로라이 후렉스를 사용했어. 그때는 직접 현상까지 다 했어, 기술이 없으면 안 됐어. 전기가 귀해서 작업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지."
엄인섭 할아버지는 폴라로이드사진기를 애지중지한다. 관광객의 사진을 찍어주고 나자 할아버지는 자신이 손수 만든 가판대에 조심스레 넣어 둔다. 일회용 카메라와 필름, 각종 건전지 등을 진열해 놓고 파는 가판대는 파도에 떠밀려온 폐자재를 이용해 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것이다.
엄인섭 할아버지의 젖줄 '오동도'
▲ 일터일회용 카메라와 필름, 각종 건전지 등을 진열해 놓고 파는 가판대 ⓒ 조찬현
"사진관이 없는 농촌마을을 돌며 결혼사진도 찍어 주고, 그때만 해도 인기가 좋았지. 그런 호시절도 있었어."
할아버지는 항상 즐거운 기분으로 사람을 만나고 즐겁게 살려고 애쓴다. 또한 사진을 찍기 위해 이리저리 쏘다녀 운동량이 많은 것이 젊게 사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할아버지가 옥수수 끓인 물에 손수 커피를 타서 건네준다. 오동도 섬에서 찬바람 맞으며 마시는 커피 맛이 참 좋다. 할아버지의 마음처럼 따끈한 온기가 가슴으로 전해져온다.
오동도는 엄인섭 할아버지의 젖줄이다. 할아버지는 오동도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상념에 잠겨 차를 마시는 습관이 있다. 자신의 꿈을 키워내면서 평생을 살아온 일터 오동도는 앞으로도 계속 할아버지와 운명을 같이할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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