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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36) 꽃그릇

[우리 말에 마음쓰기 277] ‘종이돈’과 ‘지폐’, ‘사람숲’과 ‘인파’

등록|2008.04.13 12:33 수정|2008.04.13 12:33

ㄱ. 종이돈

.. “얘, 넌 동전이라 떼그루루 잘 구르겠다” “재주 좀 부려 봐라” 내 얼굴이 빨간 노을처럼 붉어졌읍니다. “하하하, 쟤 얼굴 좀 봐” “아주 귀여운데” 종이돈 하나가 발로 내 머리를 툭 쳤읍니다. 나는 굴렁쇠처럼 떼그루루 굴러갑니다. 지갑 끝 쪽에 머리를 부딪쳐 아야, 소리를 냈읍니다. “으하하하” 종이돈들은 배를 움켜잡고 웃읍니다. “넌 운이 좋다. 우리와 같은 지체 높은 돈과 함께 있게 되었으니” 나는 입술을 꼬옥 깨물었읍니다 ..  《조성자-겨자씨의 꿈》(샘터,1987) 36∼37쪽

 돈은 종이로 만들지 않고 천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쇠로 만든 돈’과 ‘종이로 만든 돈’, 두 가지로 느낍니다. 생각해 보면, 천으로 만든 돈이되, 종이처럼 쓰이는 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지폐(紙幣) : 종이에 인쇄를 하여 만든 화폐
 │   - 동전을 모두 지폐로 바꾸었다 / 빳빳한 지폐 한 묶음
 │
 └ 동전(銅錢)
     (1) 구리로 만든 돈. 실제로는 구리와 주석의 합금으로 되어 있다
      - 동전을 주조하다
     (2) 구리ㆍ은ㆍ니켈 또는 이들의 합금 따위로 만든, 동그랗게 생긴 모든 돈을
         통틀어 이르는 말
      - 동전 한 닢 / 백 원짜리 동전

 낱말뜻을 살펴보니, 우리들은 ‘쇠돈’이라고 말하지만, 이 쇠돈도 “구리로 된 돈”인 셈입니다.

 ┌ 쇠돈 / 동전(銅錢)
 └ 종이돈 / 지폐(紙幣)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동전’과 ‘지폐’라는 말만 듣습니다. 척 보았을 때 “종이로 된 돈”이고, “쇠로 된 돈”이지만, ‘종이 + 돈’이나 ‘쇠 + 돈’이 아닌, ‘종이 紙 + 돈 弊’나 ‘쇠(구리) 銅 + 돈 錢’이라는 한자로 지은 말만 듣습니다. 한자로 된 말을 듣거나 배우면서 한자를 하나하나 뜯어서 따로 배웁니다. 토박이말로 된 말은 처음부터 듣거나 배우지도 못하지만, 토박이말로 된 말을 들으면서도, 토박이말 짜임새를 뜯어가면서 배우거나 살피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ㄴ. 사람숲

 책을 읽다가, 또 신문을 보다가, 또 인터넷이나 방송에서, “인파가 북적인다”는 말을 듣습니다. 책이나 방송이 아니더라도, 버스나 전철을 탈 때면 북적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부대낍니다.

 ┌ 인파(人波) :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움직이는 모습. 꼭 물결이 치는 듯하다고
 │     해서 붙인 말
 │   - 인파가 넘치는 거리 / 도시는 순식간에 인파로 뒤덮였다
 │
 └ 사람숲

 밀리고 밀고, 치고 치이는 전철에서 누군가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무슨 놈의 인파가 …….” 그러나 이렇게 읊조리는 분도 ‘북적이는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옆사람도 그렇고. 서로서로 같은 때에 몰리니 복닥복닥 찡기고 끼이고.

 ┌ 사람이 숲을 이루다 : 사람숲
 ├ 사람이 물결을 치다 : 사람물결
 ├ 사람으로 바다가 되다 : 사람바다
 └ …

 넘치고 넘치는 사람들은 ‘사람으로 숲’이 됩니다. ‘사람으로 바다’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숲처럼 맑은 숨을 내뿜어 주지 않고, 사람은 숲처럼 죽어서 쓰러져도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들 가슴 한켠에는 숲과 같은 싱그러움이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예 묻혀 있기만 하나, 풋풋함이 깃들어 있고 아직 꽃피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서로가 짜증스러운 짐덩어리가 아니라 살가운 숲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활짝 피어날 싱그러움과 풋풋함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봅니다.


ㄷ. 꽃그릇, 꽃분, 화분

.. 아이들은 발을 멈추고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이었읍니다. 떠듬떠듬하는 말을 추려 보면 이런 것이었읍니다. 다른 집에는 모두 꽃이 많고 꽃분도 많은데 우리 집에는 없으니 우리 집에도 꽃밭이랑 꽃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읍니다. 아버지는 큰 소리로 웃으셨읍니다 ..  《마해송-바위 나리와 아기별》(교학사,1975) 33쪽

 아침에 골목길 나들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골목마다 봄꽃이 활짝활짝 피어 있습니다. 어느 집 울타리에는 노란 꽃이 골목께까지 고개를 내밉니다. 잇빛 꽃이 있고 빨간 꽃이 있습니다. 한 층짜리 골목집 어디를 보아도 꽃빛이 함초롬합니다. 바로 이웃한 서른 층 높이 아파트까지 보일락 말락일 꽃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아파트를 봅니다. 틀림없이 저 시멘트덩어리 안쪽에도 꽃을 가꾸는 집이 있을 터이나, 무슨 꽃을 기르고 있을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 화분(花盆) : 꽃을 심어 가꾸는 그릇
 ├ 꽃분(-盆) = 화분
 │
 ├ 꽃그릇
 │  (1) 꽃이 그려져 있는 예쁜 그릇
 │  (북녘) 꽃 모습을 한 그릇
 └ 물그릇 : 물을 담는 그릇

 집으로 돌아와 국어사전을 넘깁니다. 국어사전에도 ‘꽃그릇’이라는 낱말이 실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꽃을 담은 그릇”이나 “꽃을 심어 기르는 그릇”이라는 뜻은 달려 있지 않습니다.

 골목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이른아침부터 당신 꽃그릇 손질을 합니다. 옆으로 슬며시 지나가다가 살짝 돌아봅니다. 이분은 당신 보려고 심어 가꾸는 꽃일 테지만, 당신 혼자 보기에는 참 곱다고 느끼니 이렇게 길가에 꽃그릇을 내놓고 계시지 않겠느냐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끈을 한 계집아이 둘이 골목을 부지런히 달립니다. 어디를 가나? 집에 들어갔다가 구멍가게 앞에 섭니다. 구멍가게 할매가 “오냐 오냐” 하면서 무엇인가를 받습니다. 걸음을 늦추고 귀를 쫑긋 세웁니다. 계집아이 둘은 부모님 심부름으로 가게에 들렀는데 돈이 모자랐습니다. 집으로 다시 가서 쇠돈 몇 닢 받아서 다시 가게로 왔고, 할매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어 아이들을 보냅니다. 아이 둘은 또다시 부지런히 뜀박질을 하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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