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뒤, 노회찬은 무엇을 보여줄까
고3 아들과 함께 본 '노회찬과 상계동 사람들'
▲ 노회찬과 상계동 사람들 KBS스페셜 화면 캡쳐. ⓒ KBS
뜻밖이었다. 고3 아들이 이 프로를 나와 함께 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며칠 전 신문에서 방송 광고를 보고 수첩에 적어놓았다. KBS에서 13일 저녁 8시 'KBS 스페셜' 시간에 '노회찬과 상계동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총선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나는 깜빡 잊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우연히 텔레비전을 켰을 때야 그것이 생각났다. 한참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데 아들이 성당 미사 갔다가 들어왔다. 정치는 거의 관심이 없는지라 금방 나가리라 생각했는데 웬일인지 내 옆에 앉아서 그 프로를 보기 시작했다. 평소에 그런 프로를 아들과 같이 보기를 원했기에 나는 그 순간 기분이 정말 좋았다.
자칭 '진보신당 지지자'인 내가 아들에게 척척 대답을 해주면 좋으련만. 수박 겉핥기식의 답변만을 해주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의 단순한 설명이 조금 이해가 되었던 모양인지 고개를 가끔 끄덕이면서 눈을 화면에서 떼지 않고 열심히 보는 것이었다.
홍정욱에 관심 가졌던 아들... "너 진보신당 후보로 나오지 그래?"
나는 그런 아들이 그렇게 대견스럽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 프로를 보면서 아들이 정치인 노회찬이 초지일관 서민 곁에서 그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마음 속 한가운데에 담아두기를 바라며 아들과 함께 그의 선거운동 과정을 하나하나 따라 나갔다.
화면에 펼쳐진 장면 하나 하나가 모두 뜻 깊고 감동을 주었지만 무엇보다도 노회찬 어머니의 신문 스크랩이 가장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똑똑한 아들이, 명문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와 평범하게 걸어갔더라면 가족 모두 편안하게 잘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노동운동에 몸을 던져 가시밭길을 가게 되었을 때 그 어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팠으랴.
그 어머니가 신문 스크랩을 시작했다. 신문 기사 가운데 노동에 관한 것이 나오면 오려서 스크랩을 한 것이다. 어렵고 고통스럽게 사는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는 아들을 이해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그 일을 꾸준히 해나간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아들도 그 장면에서 큰 감동을 받았으리라.
그 장면을 보며 박노해 어머니가 생각났다. 노동 운동하는 아들을 생각하며 힘든 육체적 노동을 했던 그녀가 떠올랐다. 전태일 어머니가 생각났다. 노동 운동한 아들의 유언을 가슴 깊이 새기고 노동자의 어머니로 다시 태어난 그녀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노회찬 어머니도 그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들의 의로운 길에 묵묵히 힘을 보태준 것이다.
아들은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에게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나는 아들에게 그가 유명한 영화배우 남궁원의 아들이며, <7막7장>의 저자이고, 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했다고 말해주었다. 아들도 그가 무척 잘 생겼다며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기 때문인지 마치 미국의 고전적인 영화배우 같다고 말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들에게 아빠가 나왔다고 큰소리 쳤다. 진보신당이 창당대회를 하던 3월 16일 나도 축하하러 역사적인 현장을 찾았는데 운 좋게도 텔레비전에 얼굴이 나온 것이다. 화면이 금방 바뀌었지만 나는 나의 모습을 분명히 찾았다. 나중에 가족 모두 함께 보면서 자랑스럽게 알려주겠다고 마음먹었다.
4년 뒤, 노회찬은 무엇을 보여줄까
텔레비전의 내용은 점점 후반으로 가면서 상계동 주민들이 한나라당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투표하기 전 마지막 여론조사까지 열 몇 번 노회찬 후보가 모두 오차 범위 안팎에서 이겼지만 갈수록 격차가 줄어드는 이유를 잘 알 수 있었다. 인터뷰한 주민들이 다는 아니겠지만 그들은 인물은 낫지만 힘이 약하니 지역을 위해서 일을 제대로 해낼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힘 있는 후보가 되어야 지역이 발전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는 결국 선거에서 졌다. 개표 결과가 나왔을 때 홍정욱 후보가 아버지와 감격의 포옹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노회찬 후보는 그동안 선거 운동했던 지지자들과 일일이 포옹하며 수고했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 몇 명이 선거 사무실을 찾아와서 지역민으로서 죄송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노회찬 후보에게 신신당부했다. 노원(병)을 떠나지 말라고, 지역 주민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다음을 기약하자고······.
아들은 그 프로를 보면서 농담으로 자기도 나중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했다. 내가 진보신당 후보로 나오라고 했더니 웃으며 무소속으로 나온다고 했다가, 영화를 좋아하니 영화당으로 나온다고 웃으며 말했다.
노회찬은 선거 다음날 꽃다발을 하나 들고 전태일 묘소를 찾아갔다. 그것을 보니 4년 전이 생각났다. 민주노동당 열풍이 불어 자그마치 10명이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비례대표 8번으로 기적적으로 막차를 타고 국회에 들어갔다. 그 10명이 당선 후 전태일 묘소를 참배해서 이소선 여사와 함께 기쁨의 눈물을 쏟으며 열사에게 보고했던 감동의 그 날이.
프로그램이 다 끝난 다음에 거실에 나와서 아들에게 물었다. 노회찬을 알고 있냐고. 그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진보 정치인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간단하게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됐다. 게다가 오늘 나와 함께 이렇게 뜻 깊은 프로까지 봤으니 그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으리라.
그 프로에서 마지막 한 말이 생각난다. 4년 뒤 노회찬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인가? 그는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인가? 그는 방송에서 주민들에게 말했다. 노원(병)을 떠나지 않겠다고, 현재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겠다고, 마음 편안하게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노회찬, 그의 고된 행군은 시작됐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고통이 그를 더욱 성장시킨다는 사실이다. 초지일관 오직 서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온 힘을 다 쏟는 그의 앞에 지역 주민들은, 더 나아가 온 국민들은 사랑이 변치 말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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