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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나눔으로 사랑 전하는 '천안푸드뱅크'

푸드뱅크, 20여개소에서 기부 받아 36곳에 음식물 배분

등록|2008.04.14 12:02 수정|2008.04.14 12:22
인도의 간디는 말했다. "세상에는 모든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킬 만큼 충분한 양이 있지만 소수의 탐욕을 채우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이 말은 식량분야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오늘날 식량 부족으로 전 세계 약 10억명의 인구가 일상적인 배고픔에 고통 받는다. 음식과 식품을 둘러싼 분배의 왜곡 탓에 몇 억 명의 사람들은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반면 몇 억 명은 너무 많이 먹어 과체중과 비만에 걸리고 있다.

분배의 왜곡은 또 다른 문제도 야기한다. 한 환경단체의 조사 결과 매년 미국에서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은 2억4500만톤 정도. 이중 12%가 음식물이며 이 가운데 상당한 부분은 여전히 먹을 수 있는 상태의 음식물이라고 한다.

천안은 전체 쓰레기 중 음식물쓰레기 비율이 미국보다 더 높다. 지난해 10월말 기준 천안의 1일 쓰레기 발생량은 586톤. 이 가운데 23.2%인 136톤이 음식물쓰레기이다. 한쪽은 배고픔에, 또 다른 한쪽은 비만… 게다가 버려지는 음식까지.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법은 없을까? 분배의 왜곡을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음식 나눔 운동의 전도사, '푸드 뱅크'

▲ 푸드 뱅크를 통해 음식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한지종·정금라 부부 ⓒ 윤평호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음식 나눔 운동으로 '라스트 미닛 푸드 운동'이 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이나 폐기직전의 음식물을 따로 모아 노숙자나 빈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시민운동이다.

'라스트 미닛 푸드 운동'과 견줄 수 있는 음식 나눔 운동으로, 한국에는 푸드 뱅크가 있다. 푸드 뱅크는 개인이나 기업들로부터 여유식품을 무상으로 기탁받아 음식이 부족해 굶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음식 나눔 운동이다. 1967년 미국에서 자선사업으로 처음 시작, 한국은 97년 외환위기 발생 이후 결식계층을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1998년 선보였다.

천안지역도 비슷한 시기 민간과 종교단체로 양분돼 운영되다가 지난 2000년부터 천안자활후견기관이 천안 푸드 뱅크로 통합·운영하고 있다.

신부동에서 정토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지종씨는 천안 푸드 뱅크에 10여년째 떡을 기부하고 있다. 천안 푸드 뱅크는 일주일에 한두번 떡집을 방문, 천안지역 복지시설에 정토떡집의 떡들을 전해준다.

"떡집을 운영하는 다른 지인을 통해 푸드 뱅크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기존에는 남으면 버렸는데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버리는 것이 죄를 짓는 것 같아 매번 마음이 좋지 않더라구요. 이제는 푸드 뱅크를 통해 좋은 활동에 쓰이니 제 마음도 좋습니다."

정토떡집의 운영자 한지종씨의 말이다. 지난 3월말 현재 정씨처럼 천안 푸드 뱅크에 정기적으로 식품을 기부하는 곳은 학교급식소, 빵집, 떡집 등을 비롯해 모두 24개소. 천안 푸드 뱅크는 이들 24곳 후원처를 정기적으로 찾아 식품을 기부받은 뒤 지역아동센터, 경로당 등 천안지역 사회복지시설 36곳에 음식물을 배분한다.

푸드 뱅크는 기부자와 수혜자 모두 만족도가 높다. 지난해 6월부터 천안 푸드 뱅크에 빵을 기부하고 있는 파리바게뜨 성성점 대표 이일성씨.

이 대표는 "예전에는 빵이 남을까봐 소극적으로 물량을 맞췄다면 요즘은 푸드 뱅크에 기부할 것을 감안해 넉넉히 만든다"며 "어려운 이웃을 따로 돕지는 못해도 푸드 뱅크를 통해 우리 빵이 이웃들에게 전달된다니 가게 운영의 보람도 된다"고 말했다. 천안 푸드 뱅크의 기부처는 기부 물량 전액을 연말 소득공제 받을 수 있다.

저소득 가정의 초등생 30명에게 방과 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햇살가득 지역아동센터. 원성동에 소재한 햇살가득 지역아동센터의 주요 간식 공급원은 천안 푸드 뱅크다. 햇살가득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빵 등 아이들 간식거리 대부분을 푸드 뱅크를 통해 제공받는다"며 "푸드 뱅크 덕분에 운영비 부담을 한결 덜고 있다"고 밝혔다.

푸드 뱅크를 통해 본 지역사회 기부수준은?

▲ 푸드 뱅크에 정기적으로 빵을 기부하는 이일성씨. ⓒ 윤평호


이점은 많지만 현재 천안의 푸드 뱅크가 활성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천안에 소재한 각종 음식점만 8천여개, 여기에 급식소가 있는 학교 1백여개와 대형할인점 등까지 합산하면 푸드 뱅크에 식품과 음식을 기부할 수 있는 지역내 후원처는 상당하다.

하지만 지난 3월말 기준 천안 푸드 뱅크에 음식물을 기부하고 있는 후원처는 고작 24개소. 증가는 둘째치고 경기불황의 여파 등으로 식품과 음식물을 기부하는 곳은 지난해 말 33개소에서 석달새 9곳이 줄었다. 기부처는 격감했지만 천안 푸드 뱅크에 음식물 제공을 요청하는 복지시설은 지난해 말 28개소에서 3월 36개소로 도리어 8곳이나 늘었다.

한국보다 앞서 푸드 뱅크를 시작한 외국은 푸드 뱅크 활성화를 위한 기부 및 모금 캠페인을 종종 진행한다. 프랑스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수재의연금 모금방송을 하는 것과 같은 형태로 푸드 뱅크 기탁모금을 위한 방송을 주기적으로 하고 있고,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사들이 참여한 방송 프로그램 및 이벤트를 자주 기획해 기탁모금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미국의 우체부 협회는 매년 음식배달의 날을 지정하고 이날 우체부들이 각 가정을 돌면서 우편함 옆에 내놓은 기부된 음식들을 모으는 행사를 한다.

지역에도 접목할 수 있는 아이디어이지만 천안 푸드 뱅크 단독적으로는 힘에 부친다. 천안자활후견기관의 푸드 뱅크 담당 인력은 여성 5명. 3명은 냉동 탑 차를 이용해 음식물의 수거와 배분을 담당한다. 2명은 기부처 발굴과 수혜처 관리를 맡고 있다.

이들 5명은 푸드 뱅크 외에 푸드 마켓 운영도 담당한다. 푸드 마켓은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상설 나눔 공간. 푸드 뱅크와는 보완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푸드 마켓도 푸드 뱅크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참여나 관심이 낮아 기부품으로 채워지는 마켓의 진열물품이 20여종에 그친다. 물품이 적어 이용자가 방문했다가 헛걸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 푸드 마켓에 진열된 상품. 종류가 많지는 않다. ⓒ 윤평호


안영신 천안 푸드 뱅크 팀장은 "푸드 뱅크나 푸드 마켓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가 미약해 홍보를 위해 방문했다가 말도 꺼내지 못할 때가 있다"며 "기부문화 활성화 차원에서 자치단체와 다른 민간단체의 조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안 팀장은 인력 및 장비보강도 언급했다. 푸드 뱅크와 푸드 마켓에 기부되는 음식 및 물품의 수거와 분배는 1톤 냉동탑차의 몫. 98년 9월식인 냉동탑차의 지금까지 주행거리는 21만9734㎞를 기록하고 있다.

20세기 말 환경단체인 월드와치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식품 과잉 섭취 인구가 결핍 인구보다 많아졌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어느 때보다 심각한 영양 장애가 양극화되어 발생하고 있는 시절. 우리가 선 지점은 어디에 속할까.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475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천안 푸드 뱅크 및 푸드 마켓 참여문의 ☎ 1688-1377, 564-0355.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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