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서산 일대로 답사
오랜만에 먼 길을 나선다. 이른 새벽부터 잠을 설치고 기대감과 설렘을 가득 안고 떠난 길. 날씨는 그다지 좋지 않은 조금 흐린 날씨지만 그래도 길 떠나는 자체가 즐겁다. 역마살의 향기랄까? 먼 길은 먼 길이다. 경주에서 서산까지 공주를 거쳐 가는 도중 잠시 도로변에 동원리 삼층석탑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어 보지 못한 곳이라 들렀다.
작고 아담한 크기의 고려시대 삼층석탑인 이 탑은 주변 풍수지리상 동네의 액운과 질병을 없애기 위해서 세운 것이라 전해지는 탑이다. 탑 앞에는 작은 배례석이 하나 있고 안에는 안상 문양이 조각되어 있었다. 주변은 다 밭이다. 이정표가 잘 되어있어 모처럼 가볍게 잘 찾아보고 왔다.
공주 시내로 들어가니 금강이 흐르고 멀리 공산성이 보인다. 공주를 거쳐서 도착한 서산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나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이번 답사는 문화유산답사회 우리얼과 함께한 전체 답사이다.
서산시청 주변 일대에는 유적이 많다
전국에서 회원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서산 시청 앞에 서령관문 정문 앞 좌우에 읍내동 귀부석 2기를 둘러보았다. 조각 형태가 다소 떨어져 조선후기 이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위치는 아니라 옮겨진 것이리라. 서산 시청 주변에 관아문과 동헌이 있었던 것이다. 회원들이 다 모여 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동문리 오층석탑과 당간지주를 둘러본다. 고려시대 말에 이 주변에 큰 절이 있었다 하여 대사동(大寺洞)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진 곳인데 지금은 민가로 주변 절터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나마 현재 주변이 한창 정비되는 중인 듯 해 보였다. 석탑은 5층 석탑이라 하나 현재는 이중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만 올려져 있다. 지붕돌의 밑면 층급받침은 4단으로 처마의 밑선이 수평을 이루는 반면 윗선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비례로 보아 과연 5층 석탑이었는지 의아한 감도 있다.
주변으로 약간 떨어진 위치에 있는 당간지주는 한쪽 기둥 윗부분이 약간 파손되어 있고 서로 기울어져 있으며 주변은 한창 정비 중이었다. 현재는 예전 담장으로 이용되었던 그 상태로 있으나 주변이 정비되면 좀 나아질 듯하다.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석남동에 있다는 석불입상을 찾아 나선다.
석남동에 충청남도 일대에서 유행한 돌기둥 모양의 미륵불이 있다고 하여 찾아간 미륵불주변 길 이름도 미륵길이다. 머리에는 마멸이 심하지만 보관을 쓴 것으로 보이며 다소 네모진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전체적으로 마멸이 너무 심해 잘 알 수 없으나 주변 유행한 스타일과 형식으로 보아 조선시대 이후 불상으로 추정된다.
전국적으로 모인 회원들이라 해넘이를 보려고 사상 최악의 유조선 원유 누출사고로 아픔을 겪은 태안반도를 찾아간다. 안면도 최남단의 꽃지 해수욕장이 목표이나 가는 길에 잠시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에 간월암에 들렀다.
간월암은 고려 말에 무학대사가 창건한 암자로라 전하며 대사가 수도하던 중 달을 보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암자는 그 후 오랫동안 관리하는 이가 없어 자연 폐사되었으며 1914년 만공선사가 그 절터에 다시 암자를 세우고 간월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 곳은 썰물 때는 길이 드러나 사람들이 드나들지만 밀물 때는 섬 아랫부분이 물에 잠겨 작은 섬이 된다. 밀물이 들어왔을 때 섬 자체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연꽃 형상과 비슷하다 하여 연화대(蓮花臺)라고 불린다. 절은 작은 절이나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주변은 안면도 어리굴젓 등이 판매되고 있다.
제 서서히 흐린 날씨지만 해가 넘어갈 시간이 되어 속력을 내어 꽃지해수욕장을 찾았다. 안면도에서 제일 큰 해수욕장인 이 곳은 넓은 백사장과 완만한 수심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인 듯 관광객들이 많다. 전국에서 낙조로 가장 유명한 장소인 할미바위와 할아비 바위가 있어서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흐린 날씨 탓에 제대로 된 낙조는 보지 못하고 아쉬움을 남기고 숙소로 간다.
먼 길 장거리라 피곤에 지치나 주변 바다 풍광에 마음만은 열리고 여유롭다. 이제 다음날 서산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 개심사 등 서산 일대 유적답사를 위해 휴식을 취한다.
오랜만에 먼 길을 나선다. 이른 새벽부터 잠을 설치고 기대감과 설렘을 가득 안고 떠난 길. 날씨는 그다지 좋지 않은 조금 흐린 날씨지만 그래도 길 떠나는 자체가 즐겁다. 역마살의 향기랄까? 먼 길은 먼 길이다. 경주에서 서산까지 공주를 거쳐 가는 도중 잠시 도로변에 동원리 삼층석탑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어 보지 못한 곳이라 들렀다.
▲ 동원리 삼층석탑작지만 아담한 고려시대 석탑이다. ⓒ 김환대
공주 시내로 들어가니 금강이 흐르고 멀리 공산성이 보인다. 공주를 거쳐서 도착한 서산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나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이번 답사는 문화유산답사회 우리얼과 함께한 전체 답사이다.
서산시청 주변 일대에는 유적이 많다
전국에서 회원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서산 시청 앞에 서령관문 정문 앞 좌우에 읍내동 귀부석 2기를 둘러보았다. 조각 형태가 다소 떨어져 조선후기 이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위치는 아니라 옮겨진 것이리라. 서산 시청 주변에 관아문과 동헌이 있었던 것이다. 회원들이 다 모여 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읍내동 귀부석 1읍내동 귀부라 전하며 형태가 다소 독특하다. 2기가 있다. ⓒ 김환대
▲ 읍내동 귀부2읍내동 귀부석으로 양쪽 거북 받침이 다소 다른 형태이다. ⓒ 김환대
▲ 동문리 오층석탑현재는 삼층석탑이다. 주변에서 절터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 김환대
주변으로 약간 떨어진 위치에 있는 당간지주는 한쪽 기둥 윗부분이 약간 파손되어 있고 서로 기울어져 있으며 주변은 한창 정비 중이었다. 현재는 예전 담장으로 이용되었던 그 상태로 있으나 주변이 정비되면 좀 나아질 듯하다.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석남동에 있다는 석불입상을 찾아 나선다.
▲ 당간지주아직도 주변은 다소 정비 중이다. ⓒ 김환대
▲ 읍내동 당간지주 부분담장이 그대로 아직 남아 있다. ⓒ 김환대
석남동에 충청남도 일대에서 유행한 돌기둥 모양의 미륵불이 있다고 하여 찾아간 미륵불주변 길 이름도 미륵길이다. 머리에는 마멸이 심하지만 보관을 쓴 것으로 보이며 다소 네모진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전체적으로 마멸이 너무 심해 잘 알 수 없으나 주변 유행한 스타일과 형식으로 보아 조선시대 이후 불상으로 추정된다.
▲ 석남동 미륵불마멸이 너무 심해 다소 세부 확인이 어렵다. ⓒ 김환대
전국적으로 모인 회원들이라 해넘이를 보려고 사상 최악의 유조선 원유 누출사고로 아픔을 겪은 태안반도를 찾아간다. 안면도 최남단의 꽃지 해수욕장이 목표이나 가는 길에 잠시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에 간월암에 들렀다.
간월암은 고려 말에 무학대사가 창건한 암자로라 전하며 대사가 수도하던 중 달을 보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암자는 그 후 오랫동안 관리하는 이가 없어 자연 폐사되었으며 1914년 만공선사가 그 절터에 다시 암자를 세우고 간월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 곳은 썰물 때는 길이 드러나 사람들이 드나들지만 밀물 때는 섬 아랫부분이 물에 잠겨 작은 섬이 된다. 밀물이 들어왔을 때 섬 자체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연꽃 형상과 비슷하다 하여 연화대(蓮花臺)라고 불린다. 절은 작은 절이나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주변은 안면도 어리굴젓 등이 판매되고 있다.
▲ 간월암작은 암자이나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 김환대
제 서서히 흐린 날씨지만 해가 넘어갈 시간이 되어 속력을 내어 꽃지해수욕장을 찾았다. 안면도에서 제일 큰 해수욕장인 이 곳은 넓은 백사장과 완만한 수심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인 듯 관광객들이 많다. 전국에서 낙조로 가장 유명한 장소인 할미바위와 할아비 바위가 있어서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흐린 날씨 탓에 제대로 된 낙조는 보지 못하고 아쉬움을 남기고 숙소로 간다.
▲ 꽃지 해수욕장사진에 많이 나오는 장소이다. ⓒ 김환대
먼 길 장거리라 피곤에 지치나 주변 바다 풍광에 마음만은 열리고 여유롭다. 이제 다음날 서산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 개심사 등 서산 일대 유적답사를 위해 휴식을 취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게 답사 여정을 나누고 왔으며 이틀간의 여정길이라 2편으로 연재합니다. 2편은 서산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 개심사, 일락사가 주 된 답사 동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