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민 한국어 공부 모습국내체류 이주민들의 국내 조기 적응을 위한 한국어 공부 모습 ⓒ 고기복
세상 어디에도 정든 고향 땅을 등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말 발표된 유엔의 '이주의 새 시대를 위한 초기 로드맵'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서 일하거나 살고 있는 사람은 1억 9100만여명이나 된다.
이처럼 국제 이주가 세계적인 현상이 된 이 시대를, 혹자는 '신유목민 시대'라고 칭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꿈을 위해 보금자리를 떠나 해외로 눈을 돌리지만, 보내는 나라나 받아들이는 나라는 물론 이주민에게도 기회와 고통이 수반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한편 2억에 가까운 이주민들 중 이주노동자는 대략 5~6천만 명으로 전 세계 노동력의 4.3~5.2%를 차지할 만큼 규모면에서 상당하다. 분명한 것은 이들 이주노동자들이나 일반 이주자 모두 이주의 명암을 함께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면면을 살피다 보면 차라리 해외 이주를 떠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중 최근에 한국을 떠난 인도네시아인 오음리하리는 해외 이주가 꿈을 이뤄주기보단 청춘을 앗아간 최악의 선택이었던 경우다.
그는 외국인고용허가제로 입국했지만, 일하던 곳 공장장에게 구타를 당하여 앞니 세 개가 흔들리는 일을 당했다. 이후 근무처를 옮기는 기간에 쉼터에서 생활했고 그 인연으로 알게 되었던 사람이다.
그의 불운은 구타를 당하고 회사를 옮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었다. 본의 아니게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유치장 신세를 졌다가 강제출국 당한 것이다. 작년 11월 수원역 앞 베트남인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유치장에 갇혀 있던 오음리하리는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거의 매일이다시피 편지를 보내왔었다.
수인번호-고기복 |
3973! 차라리 지우려고 해봤어 이상한 건 지울수록 선명해지는 거야 지나가는 사람들이 너의 이름을 짓밟고 침이나 뱉을까 봐 너의 이름을 들어내려고도 해 봤어 이상한 건 들어낸 자리가 휑하니 흉했다는 거야 회색빛 시멘트벽을 비추던 잿빛 하늘이 검게 변하던 날 수인번호를 적어 보낸 너의 편지 이름으로 바뀔 거야 동판에 새겨진 이름처럼 누군가 정답게 부를 번호 아닌 이름으로 오음리하리 |
그런 그가 얼마 전에 한국을 떠났다. 살인사건 현장에 우발적으로 있었다는 사실이 정상 참작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강제추방된 것이다. 그의 마지막 편지에는 고향집 전화번호가 있었고, 인도네시아에 오면 언제든지 들리라고 적혀있었다.
베트남인 살인 사건으로 인한 수감 기간과 이번 추방은 어쩌면 장밋빛 꿈을 찾아 떠났던 그에게 악몽이 되어 남은 인생을 괴롭힐지 모른다.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 줄 이들에게 돌아간 그가 악몽을 털고 새로운 삶을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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