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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걷는 숲속 황톳길에선 행복 팍! 팍!

계족산에 가면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횡재

등록|2008.04.14 17:22 수정|2008.04.14 18:03

▲ 기억이 까마득할 정도로 오랜만에 맨발로 황토가 깔린 흙길을 걸어보았습니다. ⓒ 임윤수


흙길을 얼마 만에 맨발로 걸어보는가를 생각해 보지만 떠오르는 기억은 까마득합니다. 농사를 짓던 부모 아래서 자라며 모내기철이 되면 심부름을 다니느라 바짓가랑이 둥둥 걷어 올리고 논배미엘 드나드느라 밟아 보았던 게 떠오르고,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씨름판에서 양발을 벗은 채 나뒹굴었던 게 고작입니다.

도회지 생활에서야 흙길이 사라진 지 오래니 밟을 수 없고, 농사를 짓는다 해도 웬만한 길들은 다 포장되어 있고, 농기계가 들어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손으로 모내기를 해야 하는 다랑이 논일지라도 장화를 신고 들어가 일을 하게 되니 맨발로 흙을 밟으며 일을 하던 농촌의 풍경도 옛일이 된 지 오래입니다.   

오랜 만에 맨발로 흙길을 걸어 보았습니다. 그냥 흙길이기만 해도 좋을 텐데 노랗게 황토가 깔려있는 황톳길을 타박타박 걸어 보았습니다. 봄바람에 실린 꽃가루 같은 마음으로 하늘하늘한 발걸음으로 봄날 하루를 즐겼습니다.

날씨조차 숲길 걷기에 맞춤인 듯 좋아

야외에서 치러야 할 큰일을 준비하려면 챙겨야 할 것도 이것저것 많지만 '큰일에 있어 제일 큰 부조는 날씨'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역시 날씨입니다. 다른 것들이야 공을 들이고 노력을 하면 어느 정도 마련하고 준비 할 수 있지만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날씨는 온전히 하늘에 맡겨야 하니 운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 숲속에 펼쳐진 노란 황톳길을 걸으며 어머니의 젖 냄새와 원기소의 구수함을 느꼈습니다. ⓒ 임윤수



대전의 동쪽에 있는 계족산, 숲길에 마련된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 '숲속에서 맨발로 걷기'대회가 치러지던 13일의 날씨는 행사를 위한 맞춤날씨처럼 좋았습니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올 거라고 했는데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덜 우거진 숲길 아래를 걸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쨍쨍 내리쬐는 햇살을 가려주려는 듯 하늘에는 엷은 구름이 드리웠고, 불어오는 봄바람은 촉촉하게 습기를 머금고 있으니 부드러운 황톳길은 한층 더 부드럽고, 들숨으로 들여 마시는 산바람은 싱그러움이 뚝뚝 떨어질 만큼 신선합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오감(五感)을 활짝 여니 몸은 대지가 되고 마음은 돋아 오르는 새싹이 될 만큼 좋은 날씨입니다. 맨발로 걸으려는 사람들과 좋은 마음으로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의 지성에 하늘조차도 좋은 날씨를 커다란 부주를 내렸나 보다 하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날씨입니다.

▲ 황토가 깔린 맨발걷기 코스는 보들보들하였고 느릿한 걸음으로 두 시간쯤 소요됩니다. ⓒ 임윤수



일요일인 13일, 맨발 마라톤으로 널리 알려진 계족산 숲길에서 황톳길 맨발걷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습니다. 대회는 오후 2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로 혼잡해지기 전에 주변산세를 즐기고 싶다는 욕심에 12시가 안되어 행사장엘 도착했습니다. 

4월 둘째 주 일요일, 숲속에서 맨발로 걷기

한겨울을 제외하곤 작년 6월부터 매달 있었던 행사지만 처음으로 가보는 행사기에 맨발마라톤이 준비되고 각종행사가 치러지던 그 지점이 행사장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차를 하고 한참을 걸어올라가 그 지점엘 도착했으나 휑한 분위기입니다.

들어오는 길목 여기저기에 행사를 안내하는 걸개그림이 걸려 있었으니 분명 행사가 있기는 한데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순간적으로 '내가 날짜를 잘못 알고 있나'하는 생각과 '어떻게 된 거야'하는 반문이 생깁니다.

▲ 맨발로 걷는 황톳길은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싱그러워지는 숲길입니다. ⓒ 임윤수



숲속 황톳길을 맨발로 걸어 볼 거라던 기대가 흔들리는 순간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긴 그렇고 해서 가방을 둘러메고 비탈길을 천천히 올라서니 그 위쪽, 맨발 마라톤 행사가 치러질 때 접수를 하거나 기념품을 배부해 주던 그 지점에서 행사가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행사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에게야 아직은 이른 시간이지만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겐 한참이나 지난 시간인가 봅니다. 이미 마련된 무대에서 앰프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황톳길 옆으로 지난 행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진들이 걸려있는 노천 갤러리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행사를 모르고 왔던 사람들도 숲속에 마련된 노천 갤러리, 사람들이 맨발로 걷는 사진들을 보더니 훌훌 양말을 벗고 맨발로 걷기를 시작합니다. 행사가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걸어갈 황톳길을 먼저 걸어봤습니다.

▲ 훌훌 양발을 벗어버린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 듯 황톳길로 걸어갑니다. ⓒ 임윤수



황톳길이 노란색 띠를 이루고 있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인 한적한 시간이니 둘레둘레 주변을 살피며 황톳길을 걸어봅니다. 길옆으로 펼쳐진 숲은 돋아 오른 싹들로 파릇파릇한 색깔입니다.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는 벚나무 아래는 활짝 핀 개나리가 노란 띠를 두르고 있고, 파릇파릇한 숲속에는 연분홍빛 진달래가 일부러 매단 리본처럼 군데군데 피었습니다. 아름드리를 자랑하는 거무튀튀한 나무에서도 뾰족뾰족한 싹이 돋아 오르고 있으니 봄날의 싱그러움에 저절로 다가옵니다. 

예정된 코스를 한 바퀴 돌아 다시 행사장으로 돌아오니 꽤나 많은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어도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분주하기만 합니다. 행사 시작을 20여 분 앞둔 시간, 굽 높은 힐을 신었거나 짧은 치마를 입고 있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복장을 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옵니다.     

무더기로 올라 온 사람들이 왁자지껄 나누고 있는 말은 한국어가 아닌 중국어였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해 행사를 주최하고 있는 주식회사 선양의 조웅래 회장에게 중국 청소년들이 참가하게 된 동기를 물었습니다.

계족산 맨발걷기는 이미 '국제화'

3년 밖에 안 된 짧은 기간이지만 계족산 맨발 마라톤과 걷기대회는 이미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으니, 대전지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중국 청소년들이 단체로 맨발걷기 체험을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맨벌로 황톳길

ⓒ 임윤수



타국으로 유학을 와 이색적인 맨발걷기를 체험하게 되니 마냥 신기하고 즐거운 듯 깔깔거리고 호호거리는 입모양들이 새싹들처럼 뾰족뾰족 싱싱합니다. 행사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고 산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굽 높은 힐과 스타킹을 벗어던지는 그들의 모습에서 체험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이 배어납니다.

출발시간이 되니 신발이나 양발을 신은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맨발입니다. 이런 발 저런 발이 다 모였지만 황톳길을 디디고 있는 건강한 발들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사회자의 선창으로 출발을 알리니 맨발의 사람들이 황톳길을 걸어갑니다.

어떤 이는 잰걸음으로 종종거리며 걷지만 어떤 이는 타박타박 걷습니다. 어떤 어르신은 팔자걸음으로 어슬렁어슬렁 걷지만 엄마나 아빠와 함께 걷고 있는 예닐곱 살 꼬마의 걸음걸이는 아장아장 거리는 아가의 모습입니다.  

▲ 반환점에 도착한 중국 유학생들이 활짝 핀 벚나무 아래 마련된 노천갤러리 앞에서 환한 포즈를 취해주니 또 하나의 그림이 됩니다. ⓒ 임윤수



나그네도 양발을 벗고 황톳길을 걸었습니다. 맨발에 다가온 황톳길의 첫 느낌은 때가 4월인지라 청량 할 만큼의 차가움이었습니다. 촉촉한 대지에서 부드럽게 다가오는 차가움은 등목을 하느라 끼얹는 샘물에서 맛보았던 느낌처럼 뒷끝없이 알싸한 그런 차가움이었습니다.  

황톳길이 나 있고, 새싹들이 움트고 있는 숲길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람들이 걸어갑니다. 그냥 걷기만 하지만 그들이 지나간 황톳길엔 봄날 오후에 만끽 할 수 있는 온갖 행복과 아름다움이 발자국으로 꾹꾹 남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것 없이 걷기만 하는 것으로 봄날의 숲에서 무한대로 쏟아내고 있는 천연항생성분인 피톤치드(Phytoncide)에 젖어듭니다.

지그시 두 눈을 감고 걷는 황톳길에서 어머니의 가슴에서 맡던 젖 냄새와 원기소의 향이 구수하게 느껴집니다. 건강하게 자라라고 하루 서너 알씩 꼬박꼬박 먹여주던 원기소의 구수함이 황톳길에서 느낄 수 있는 추억이며, 몸으로 받아들이는 건강한 체험이었습니다.

▲ 행복한 모습은 행복한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삶의 샘물입니다. ⓒ 임윤수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한 시간 쯤을 걸어가니 반환점입니다. 걸었다 기 보다는 맨발로 드러낸 살갗으로 대지와의 스킨십을 즐기고, 숲으로 와 있는 봄꽃이나 새싹들과 밀애 같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노천갤러리가 펼쳐진 반환점에서 주최 측에서 배부하고 있는 생수를 한 병 얻어들고 걸어갔던 길을 되돌아옵니다. 가는 길에서 보지 못했던 새싹들에게 눈을 맞추고, 가늘 길에서 듣지 못했던 움틈의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찰 만큼 행복할 텐데, 앞서가는 사람들이 흘리고 가는 행복한 모습을 이삭줍기를 하듯 듣거나 보게 되니 황톳길 자체가 행복으로 가는 시간입니다.

되돌아온 행사장에서는 황톳길을 걸으며 사람들이 느낀 행복감에 봄날의 아름다움을 버무리게 하는 음악이 선율로 울렸습니다. '봄의 왈츠'에 이어 '나물 캐는 처녀'가 성악가들의 라이브로 울려 퍼지고, 가슴을 움츠리게 할 만큼 감미로운 목소리로 시낭송이 이어집니다.

숲속 음악회

ⓒ 임윤수



무대에선 사람들이 노래를 하면 숲속에 앉은 사람들은 환호 합니다. 무대에 선 초등학생이나 시낭송가가 시를 낭송하면 숲속에서 경청하던 사람들은 시구에 젖어든 동심초가 됩니다.

울타리도 없고, 출입문도 없고, 지정된 좌석도 없고, 오가는 것을 통제하는 이도 없으니 걸릴 것도 없고 막힐 것도 없는 숲속 음악회는 자연의 도도함처럼 색다른 느낌입니다. 사람들 하나하나의 표정이 새순 같은 맑음이 돌고, 박장대소 같은 행복감이 가득합니다.  

2시간 동안 황톳길을 맨발로 걸으며 오감(五感)으로 받아들인 느낌, 숲속 음악회에서 느끼던 90여분 동안의 감미로움이 화사한 봄꽃으로 마음에 피어납니다. 

▲ 대회를 준비한 조웅래 회장이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보며 행복해 하고 있으니 행복이 행복을 낳고 있는 시간입니다. ⓒ 임윤수



행사를 마친 사람은 아쉽다는 표정이 역력하지만 산길을 걸어 돌아갑니다. 너털웃음 같은 행복한 모습으로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이웃끼리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하루의 행복을 갈무리 하며 보금자리를 찾아 귀가합니다.

매월 둘째 주 일요일에 '맨발 숲길 걷기'

사람들을 그렇게 행복하게 해 주는 계족산 '숲속에서 맨발걷기'는 매월 둘째 주마다 계속 될 것이라고 합니다. 흙길을 맨발로 걸어 본 게 까마득한 어르신들에겐 감미로운 추억의 길이 될 것이며, 사춘기를 맞아 대화가 뜸해진 자녀들과는 마음과 대화를 열어줄 화목의 열쇠길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냥 찾아가기만 하면 건강과 화목이라는 호박, 웃음과 행복이라는 넝쿨을 통째로 챙길 수 있는, 호박과 넝쿨이 통째로 굴러들어오는 횡재의 날이 될 거니 매월 둘째 주 일요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순도순 손잡고 '숲속에서 맨발걷기'를 꼭 한번 챙겨보라고 권해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5월 둘째 주(5월 11일)에는 맨발 마라톤대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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