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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개나리 사이로 보이는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

등록|2008.04.15 15:29 수정|2008.04.1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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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 ⓒ 오명관



조선 말기에 일본으로부터 강제적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우리의 한글마저 말살하려던 그 시절에 우리의 한글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가람 이병기 선생(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1891년 3월 출생-1968년 11월 별세).

1921년에 최두선, 임경재, 권덕규, 장지영 등이 조직한 학술단체로써 우리말의 연구 발전을 목적으로 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10년 후에는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병기 선생도 참여하면서 한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이병기 선생은 시조 부흥 운동과 함께 시조를 체계화시킨 인물로 알려졌으며, 시조의 현대화에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일제가 식민지 한국인의 말과 글을 없애기 위해 1942년 한글연구회인 조선어학회의 회원 및 관련인물들을 강제 연행, 재판에 회부한 사건)으로 검거된 후, 함흥형무소에서 1년 가까이 복역했다.

안채이병기 선생이 기거했던 방 ⓒ 오명관



이렇게 한글을 위해 노력했던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에도 봄이 왔고, 꽃이 피었다.

선생의 생가는 조선 말기 선비 집안의 배치를 따라 아담하다. 현재 안채, 사랑채, 고방채, 모정이 있으며, 행랑채는 철거됐고, 모정 앞에는 조그만한 연못이 있다.

건물 자체에는 큰 특징은 없으나 안채와 사랑채에는 고풍이 서려있는 등 조촐한 선비 가옥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한글을 사랑하고 일제 식민지 시절에 한글을 지키려다가 투옥까지 당했던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에서 한글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며 따스한 봄날을 맞이하는 것은 어떨까. 또 이곳을 찾아 봄을 만끽하고 이병기 선생의 기를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

장독대안채와 사랑채 뒤에 대나무 숲과 아울러 장독대가 있다. ⓒ 오명관



모정과 연못모정 앞에 조그만한 연못이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 오명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익산시민뉴스, 서울방송 유포터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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