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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들어보는 "반갑습니다"

베트남의 평양대동강식당

등록|2008.04.15 17:30 수정|2008.04.15 17:30

▲ 호찌민시에 있는 북한 정부가 운영하는 평양대동강식당 ⓒ 이강진

학창 시절 무성 영화의 변사 흉내를 내며 흥얼거리던 것 중의 하나가 '이수일과 심순애'이다. “십오야 달 밝은 밤에 대동강변을 거닐고 있는 청춘 남녀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이수일과 심순애…” 하고 청승스럽게 읊어대며 주위를 웃기곤 했었다.

그러나 나는 대동강이라는 말만 들어 보았지 사진 한 장 본 적이 없다. 막연히 일제 강점기 시절 소설가의 작품을 통해 대동강을 그려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마 나에게 친숙한 절두산에서 바라보던 한강변을 머릿속에 그리며 대동강변을 이죽거렸을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역사적으로 베트남은 남한보다 북한과 더 가까운 나라다. 지금도 사이공 강에 정박해있는 화물선 중에 북한의 화물선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김일성이 죽은 것을 애도하는 기사가 있는 신문을 호찌민시의 한 박물관에서 본 기억도 있다. 그러나 베트남이 개방 정책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남한에서 많은 사람이 들어와 지금은 베트남에서 한국사람 하면 당연히 남한에서 온 사람으로 안다.

호찌민시에는 ‘평양대동강식당’이라는 상호를 가진 식당이 있다. 북한 정부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다. 사실 ‘때려잡자 김일성’이라는 살벌한 구호를 수시로 외치며 반공 교육을 철저히(?) 받은 덕택으로 외국에서 북한 사람이 운영한다는 대동강 식당의 간판을 처음 보는 순간 묘한 감정이 일어났다.

여권을 하나 받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상검증(?)을 받아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온종일 반공 교육을 받아야만 했던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이 기억난다. 또한, 중고등 학창시절 툭하면 강당에 앉아 자수했다는 간첩을 통해 북한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를 수없이 들던 생각도 떠오른다.    

호기심을 가지고 예약 없이 대동강 식당을 찾았다. 식당 분위기는 한국 식당과 사뭇 달랐다. 벽에는 북한 화가가 그린 그림들과 함께 대동강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손님은 거의 남한 사람이다. 한국에서 온 단체 관광 손님도 눈에 띄인다. 요즈음 혹독한 반공 교육이 없어서인지 식당은 손님으로 북적였다. 간신히 구석에 아내와 함께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었다.  

여느 식당과 마찬가지로 물수건과 함께 메뉴판을 가지고 온다. 메뉴판에 두음법칙을 무시한 ‘료리 안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법칙‘은 가능하면 없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가진 나에게는 북한에서 무시하는 두음법칙을 왜 우리는 만들어 국어 시간을 어렵게 만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복으로 차려입은 종업원 아가씨의 가슴에는 이름표와 함께 김일성 배지를 달고 북한 특유의 억양으로 주문을 받고 있다.

▲ 두음법칙을 무시한 ‘료리안내’ - 메뉴판을 우리말로 바꾸면 ‘요리안내’가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 이강진


▲ 냉면과 비지 찌게 - 음식이 정갈해서 좋았다. ⓒ 이강진


아내는 물냉면을 시키고 나는 비지찌개를 시켰다. 북한에서 내려온 장인 장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내는 물냉면을 좋아한다. 음식 맛에 예민하여 식당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도 맛이 있다며 냉면을 훌쩍 비운다. 내가 시킨 비지찌개도 예전 맷돌에 콩을 갈아 만들어 먹던 것 같이 맛이 진하다.

▲ 식당에서 하는 공연 - 한복입고 통기타 치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 이강진

▲ 장구를 치며 춤을 추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 이강진


조금 있으니 북한 식당에서 흔히 부른다는 ‘반갑습니다’라는 노래를 시작으로 공연이 시작된다. 조금 전에 음식 주문을 받던 아가씨가 옷을 갈아입고 무대에서 춤을 춘다. 조금 빠르다 싶게 장구를 두드리며 공연도 한다. 한복을 입고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공연은 난생처음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 종업원에게 사진 한 장 찍겠다고 하니 흔쾌히 포즈를 취해준다. - 왼쪽 가슴에 달린 김일성 배지가 눈을 끈다. ⓒ 이강진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무대에 올라가 사진을 찍기도 하며 흥겨워한다. 식탁에서도 김일성 배지를 단 종업원과 스스럼없이 흥겨운 농담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북한 사람, 남한 사람이 함께 잘 어울리고 있다.

기분이 좋아 받지 않겠다는 팁을 굳이 종업원에게 주려고 하는 관광객, 잘 가시라고 북한 사투리로 인사하는 한복을 종업원들 모두 보기에 좋다. 그러나 불가사의한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 아직도 같이 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순수한 평민들의 눈에는 분단의 선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를 하는 높은 양반들의 눈에는 분단의 선이 보이는 모양이다. 그것도 아주 뚜렷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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