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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아들딸', 쇠고기 협상에서 누구 편입니까?

한미 쇠고기 협상을 보는 농민의 눈

등록|2008.04.16 16:58 수정|2008.04.16 17:05
"나는 농민의 아들입니다."

어린 시절 선거철이 되면 농촌 지역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모두 자신이 농민의 자식임을 강조했다. 농민의 아들이기에 농촌을 위한 일을 하겠다는 의미였겠지만, 당선만 되면 다음 선거 때까지 농촌을 찾지 않았다.

지난 18대 총선에서는 농민의 아들이라고 외치는 후보가 없었다. 이젠 농민에게서 나올 표가 없어서일까. 농민출신이 국회의원이 되었다 하여도 농촌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농촌은 도시의 일용직 노동자보다 더 살기 힘든 곳이다.

나는 소를 키우며 학교에 다녔고, 소 덕분에 학교를 다녔다. 토요일에 한 짐, 일요일에는 두 짐씩 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야 남는 시간에 놀 수 있었다. 더운 여름날에 한 짐 풀을 베어서 집으로 오면 소는 커다란 눈을 껌벅거리며 주인보다는 지게에 가득 쌓인 풀을 먼저 바라본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시간이 되면 소에게 물을 먹여야 했고, 아침에는 마당 곁에 매어 두었다가 저녁이 되면 외양간으로 들이 매었다. 소는 집안의 기둥이자 살림의 밑천이었다.

그렇게 키우던 소를 여름이 되면 팔아야 했다. 자식의 등록금 때문이다. 봄학기 등록금은 일 년 농사를 마무리한 돈으로 해결을 해 보지만 가을학기 등록금은 돈이 나올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마음이 몹시 여리셨다. 소가 팔리는 날은 소도 울고 어머니도 울고 나도 울었다. 키우던 소가 새끼를 낳으면 소에게 미역국을 끓여 생일상까지 차려 주셨다. 그런 새끼 소가 팔려가면 어미 소는 꼬박 이틀 밤을 울었다. 사흘째는 목이 쉬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소가 안쓰러운 어머니는 풀을 더 많이 주는 것밖에 해 줄 것이 없었다.

어머니는 꿈에 소가 나타나면 부엌 한쪽에 정안수를 떠 놓고 기도를 올렸다. 두 손을 모으고 중얼거리듯이 기도하는 소리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그리고 소에게도 기도를 했다. 그 순간은 소가 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언제나 묶여 있었고, 엉덩이엔 쇠똥이 묻어 있었지만 소는 신이었고, 조상이었고, 농사를 위해서는 꼭 필요했으며, 목돈이 나오는 유일한 재산이었다.

'이제는 소를 사 온다고? 더구나 병든 소를?'
'사람까지 사오는데, 소를 가지고 왜 그래?

한때 이렇게 말했던 농민들도 이제는 조용하다. 아주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경 쓰기 싫다는 것이다. 아무리 호소를 해 봐야 알아듣는 이가 없으니 말 그대로 '쇠귀에 경 읽기'가 되는 것이다.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쇠고기 협상에서 쇠고기 수입 연령제한의 완전 철폐를 요구하고 있지만 관심이 없다. 새우깡에 쥐머리가 나오고 통조림에 칼날이 나와도 그때 잠시뿐이다. 지금 내가 먹는 것만 괜찮으면 된다는 식이다.

농민들도 포기했다. 아무리 아니라고 외친들 어느 누구 하나 들어주는 이가 없다. 그래서 자조 섞인 말을 한다. 그런 자리에는 술이 빠지지 않는다.

'쇠고기를 삼겹살 먹듯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데, 서민들에게 쇠고기 먹이려고 하는 데 왜 반대를 해?'

정치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이용한다.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한다면 국민이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이려고 저렇게 야단을 피울까? 자유무역협정은 시대의 대세이고, 또 그로 인해 득을 보는 사람이 많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그러면 미친 병이 걸린 쇠고기도 그러한가? 누가 누구 때문에 미국산 미친 쇠고기를 먹어야 하는가?

대통령이 미국에 갔다. 농민 출신 국회의원은 '조공 바치기'라는 말도 했다. 저용량(2MB)시대에 산다고 국민에게 눈치가 없을 것 같은가? 미국과의 관계를 십년 전으로 되돌린다며 자랑하고 간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방미와 더불어 한미 쇠고기 협상이 급진전될 가능성이 커졌다. 대부분 미국 측의 요구가 수용되고 우리가 대폭 양보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대체 누가 우리를 변호할 수 있는지, 우리의 먹을거리를 어떻게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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