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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품으로 독자 모집, 항의하면 지국 접수?

거리로 내몰린 <조선일보> 전 종로지국장 "조선일보는 법 위의 집단"

등록|2008.04.16 14:24 수정|2008.04.16 14:24

▲ 전 조선일보 종로지국 사무실 앞. 사무집기는 차에 실어가고 생활용품은 거리로 내몰려 있다. ⓒ 송주민


"패닉상태다. 죽고 싶은 심정이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가회동 사무실 앞 길거리에 서있던 조선일보 전 종로지국장 조의식씨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그의 곁에는 각종 사무집기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사무실에 있어야 할 각종 생활용품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조씨는 조선일보의 지국 계약해지에 정면으로 맞서며 종로지국에서 농성을 벌여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계약해지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해지일인 2007년 2월 15일부터 현재까지 1년 넘게 종로지국에서 배달원 3명과 함께 항의 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법원의 강제집행이 이루어진 16일, 조씨 일행은 농성장마저 잃었다.

이 사건은 본사와 지국간의 불공정 거래, 그리고 일선 지국들이 본사의 '불법 반칙'에 맞서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최근 신문지국의 공정 경쟁을 위해 마련된 신문고시마저 재검토 내지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된다면 보다 많은 지국들이 본사의 '불법' 요구에 순응하던지, 아니면 길거리로 내몰려야 할 판이다.
  
확장부수 강제할당 거부...조선일보, 명예훼손으로 계약해지

▲ 거리로 내몰린채 사무실 앞에서 허탈해하는 조의식 전 조선일보 종로지국장 ⓒ 송주민

그렇다면 조씨 일행이 사무실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린 이유는 무엇일까.

조씨는 계약해지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자신의 '대타'로 나선 지국의 신문 배달 금지를 요청하는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조씨가 법원에 제출한 '조선일보 이전 발송 금지 가처분 신청'은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이 때문에 법원의 강제집행이 이루어졌고, 조씨와 배달원은 순식간에 사무실 밖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이날 조선일보측 직원 3명은 법원 집행관과 함께 용역을 동원하여 사무실을 완전히 비워냈고, 조씨의 접근을 제한하기 위해 사무실 문을 자물쇠로 채웠다.
  
조씨와 조선일보의 싸움은 '확장부수 강제할당'에 대한 조씨의 항의 때문에 시작됐다.

조씨는 조선일보 측의 확장부수 정책이 "부당한 반칙경쟁을 강요하는 불법적인 정책"이라며 전화와 메일 등을 통해 꾸준히 항의를 해왔다. <미디어오늘> 등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서도 확장부수 정책의 부당성을 계속해서 제기해왔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본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조씨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하지만 조씨는 "정당한 항의에 대해 부당하게 계약해지를 요구한 것"이라며 본사 측에 계속해서 맞서왔다.

살인까지 부르는 신문시장의 혼탁경쟁

▲ 전 조선일보 종로지국 사무실 앞에 수북히 쌓여있는 생활용품 ⓒ 송주민

조씨는 "조선일보의 확장부수정책은 독자 확보를 지국에다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방식"이라며 "독자를 확보하라고 일방적으로 할당량을 산정한 뒤, 그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때에는 다음 달 지대에 페널티가 청구된다. 일종의 벌금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할당량을 채우려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독자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반칙경쟁이 만연하고, 신문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경품과 돈으로 구걸하는 모습은 이런 구조 때문이라는 것.

지난 1996년에 일어난 신문지국 직원 살인사건은 이런 혼탁한 경쟁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당시 경기 고양시에서는 중앙일보 지국 직원들과 조선일보 직원 사이에서 보급권 문제로 시비가 일어나 이 과정에서 칼을 휘둘러 조선일보 직원 한 명이 숨지고 한 명이 중태에 빠졌다.

조씨는 "이 상황에서 지국장들은 돈과 상품을 뿌려서 독자를 모집하는 상식 밖의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다"며 "이런 비상식적인 모습에 항의한 결과가 계약해지로 나타난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신문고시는 무용지물... 공정위는 수수방관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은 신문사들의 불법적인 경쟁을 제한할 법적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불법 반칙경쟁이 난무하는 상황인데도 이를 제지하기 위해 만든 신문고시는 아예 무용지물이 된 상태다. 부실한 신문고시가 신문사들의 부당한 경쟁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는 셈이다.

신문고시가 있어도 반칙경쟁으로 인해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인데, 공정위는 신문고시를 완화 내지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내렸다. 하지만 일선 현장의 모습이 조씨의 경우와 다르지 않은데 규제는커녕 완화한다는 방침에 대해 큰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4일 논평을 통해 "지금 공정위가 해야 할 일은 신문고시 위반에 대한 단속과 규제를 어떻게 철저히 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며 "만약 공정위가 신문고시를 무력화하는 내용의 개정 또는 폐지를 추진한다면 신문시장은 또 다시 탈법적인 판촉 경쟁이 살인까지 불러일으키는 파탄으로 치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영수 민언련 대외협력부장도 "신문고시는 규제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공정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며 "본사와 지국간의 불공정 거래에 대해서도 느슨한 규제로 일관하고 있고, 지국과 독자 사이의 반칙 거래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서 현 공정위의 방침은 현실을 역행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계속해서 소송 제기할 것, 그러나...

한편 조씨는 향후에도 계속 법적 대응을 통해 조선일보의 부당성을 알려나갈 계획이다.

조씨는 "가처분신청은 기각되었으나 아직 계약해지무효소송과 손해배상소송 등 본안소송이 2개 남아있다"며 "쫓겨나더라도 계속해서 계약해지무효 소송을 해 법적으로 계약해지를 시정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조씨의 싸움은 쉽지 않아 보인다. 많은 지국장들이 조선일보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싸웠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지쳐 떨어져 나갔다.

조씨는 "신도림 지국장도 항의하다가 계약해지 돼 소송을 벌였지만 1심에서 바로 졌다. 동의정부 지국장도 마찬가지"라며 "조선일보는 법 위에 군림하는 기관인 것 같다"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조선일보측은 조씨의 주장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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