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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시민불편' 공식, 다 이유가 있었네

[서평] 하종강의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를 읽고

등록|2008.04.16 17:13 수정|2008.04.16 22:52
자주 눈물 짓게 한 이름 '하종강'

30년 동안 한길로만 쭉 걸은 사람이 있다. 음악도 아니고, 그림도 아니고, 연극은 더더욱 아니다. 노동 상담을 하면서 30년을 한결 같이 달려온 사람이 있다. 그 이름은 다름 아닌 하종강. 나는 이 분의 이름을 떠올리면 먼저 이유 없이 믿음이 간다. 그리고 이 분의 글을 읽으면 매번 '짠'했고 때론 단 한 문장으로도 눈물이 났다.
  지난 두 해, 신문을 읽다가 가끔 눈물이 쑥 빠질 때가 있었는데 그 원인제공자의 8할은 하종강이었다. 그의 글을 읽으면 노동자를 향한 그의 마음 씀과, 그가 소개하는 노동자들의 사연이 애달파 마음만 찡한 게 아니라 눈물까지 흘리고는 했다.  그는 왜 문화 예술처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것에 30년 동안이나 열정을 바쳤을까. (이 때문에 과로가 쌓이고 쌓이다 결국 두 달 동안 꼼짝없이 드러눕는 바람에 이 책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한겨레 출판)가 나오게 되었다지만.)

고백하건데, 나를 지켜준 사람들은 상담소에 찾아오는 노동자들이었다. '내가 오늘 이 서류 뭉치를 붙들고 하룻밤을 새면, 해고당하거나 몸 다친 노동자와 가족들이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이 그 혹독한 시기에 나를 구원했다. -본문 352쪽
 

▲ 한겨레 출판 ⓒ 하종강

그랬다. 한번은 참치잡이 외항선원의 억울한 사연을 접하고 몇 시간에 걸쳐 정성껏 서류를 다 작성한 후 마지막으로 출력하려던 순간, 그 외항선원이 뒤늦게 아주 결정적인 증언을 하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서류를 작성하였는데, 그런 수고쯤은 그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노동조합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면 전국 어디든 달려갔다. 새벽 첫 차를 타고 갔다가 심야버스를 타고 오기도 하고, 주중이고 주말이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토막잠을 자가며 그렇게 30년을 살았다.

이 책에 나오는, 저자가 만난 많은 노동운동가들과 노동자들 또한 자신들의 안일한 삶보다 잘못된 노사관계를 바로잡고 노동자가 웃으며 사는 세상을 위하여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모진 탄압과 해고 속에서 때론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최악의 선택을 아직도 이 땅의 노동자들은 하고 있었다. 

노사관계, 학교에서 가르치자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제도권 교육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으로 노동문제를 가르친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정규 수업에서부터 노사관계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모의 노사교섭이 일상화한 특별활동으로 잡혀 있어 일 년에 여섯 차례 정도 모의 노사교섭의 경험을 쌓는다. 교과서에는 노사관계를 '인간이 사회에서 자기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관계'라고 정의한다.

프랑스에서는 중학교 과정 이전에 노동문제를 거의 완벽하게 학습하고, 고등학교 1학년 과정에서는 '단체교섭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 몇 달 동안이나 학습하고 토론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조합 간부로 평생 활동 해도 배우지 못할 만큼을 이미 제도권 교육 속에서 깨친다.  -본문 317쪽

위의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고등학생도 아닌, 초중등학생들에게도 미리부터 노사관계에 대해서 가르친다니. 우리나라에서 이런 교육을 안 시키니 대학생이 되어도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일단 '시민들 불편하게 하고 나라경제 말아먹는다'는 것 뿐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었네.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그것을 보도하는 신문, 방송 기자들도 교육을 못 받아서 그런 거였네. 이 뿐인가. 자칭 모 일류기업은 아직 노조, 하다못해 어용노조조차도 없는데, 이게 다 무식해서 용감하다 못해 우리 사회의 '거악'이 되어버렸구나.

정말 갈 길이 멀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30년 동안 노동법 우려먹고 산 저자와 같은 전문가의 말을 듣고 좀 쉽게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해주고 노동자 복지를 향상시켜주면 안 되는지. 노동자의 피나는 투쟁과 희생이 있고 난 다음에야 겨우 한 발자국 움직이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아무튼 이 책에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또 노동운동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짠하게 녹아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부끄럽다'는 생각이 좀처럼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노동자가 살 만한 세상을 위하여 위에 언급된 나라들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초중등에서부터 노동자의 권리를 가르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제대로 된 정당, 제대로 된 국회의원부터 뽑았어야 했는데 작금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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