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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우주정복에 관한 원본 자서전

[서평] <지구는 푸른빛이었다>(갈라파고스)

등록|2008.04.17 13:51 수정|2008.04.17 13:51
'우주여행 퍼포먼스'를 좀 비딱하게 보기

네이버 뉴스검색에서 '이소연'을 쳐봤다. 9,598건의 뉴스가 검색된다. 고산은 10,920건이나 됐다. 아마 초기에 우주인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리 가가린'은? 782건으로 협소하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나온 데는 아마도 이소연 씨가 유리 가가린의 묘소에 참배한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미디어들은 온갖 천박성을 드러내며 이소연과 김연아의 통화 같은 '우주놀이'를 긴급 특종으로 보도하였고, "함께 떡볶이를 먹자"고 한 말을 수십 개의 언론사가 그대로 받아적었다. 하기야 지금 구속돼 있는 신정아 씨가 "새우깡 먹고 싶다"고 한 말을 또 한참 받아 적지 않았던가. 쇼맨십이 일품인 방송사 SBS는 발사 열흘 전부터 화면 구석에 카운트다운을 시작했고, 발사 이후에도 그 카운트는 없어지지 않았다.

숫자로 우주인 사업을 풀어 보자. 우주인사업의 총 예산은 260억 원이라 전해진다. 이 씨는 우주정거장(ISS, International Space Station)에 설치한 소형 생물 배양기에 독도에서 발견된 미생물인 ‘동해아나 독도넨시스’와 김치유산균 ‘류코노스톡 시트리움’의 성장실험을 포함해 총 18개의 과학실험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연구와 기획 등 과학실험에 소요되는 비용은 총 예산의 2%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는 이소연 씨를 띄우기 위한 각종 행사나 러시아에 제공하는 경비나 로비비로 썼다고 한다.

한국우주과학회장 양종만 교수(이화여대)가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글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망원경은 보현산에 있는 1.8m 망원경으로 외국에서는 아마추어들도 사용하는 크기에 불과하다고 한다.

현재 멕시코에 건설되는 대형망원경 사업과 7천억원 예산으로 미국·오스트레일리아가 중심이 돼 만들 마젤란 망원경(GMT) 사업 참여도 예산 부족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특히 마젤란 망원경 사업은 단지 20억 원의 국가예산이 없어 좌절됐다고 한다.

<시사IN> 28호에 보도된 고산씨 교체의 배경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다. 러시아에서는 첨단 우주과학 등 러시아의 기술력이나 지적 자원 등을 국가가 주도해서 통제하고 있는데, 이를 ‘수출통제’라고 한다.

특히 러시아 연방수출통제위원회 위원장 이바노프 제1부총리는 "주요 정보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외국과의 항공우주 협력사업을 철저히 모니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러시아의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고산씨는 이러한 정책노선의 '희생양'인 셈이다. '수출통제'는 서방국가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정책이다. 미국 역시 중국을 자국 기업의 공장으로 활용하면서도 양국 간 기술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수출통제제도를 변용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서방 국가들이 가장 역점에 두고 있는 사업이 '우주사업'이라고 할 때 그 틈바구니에서 기웃거리는 대한민국은 우주여행에 가는 버스에 승객 1명을 탑승시키기 위해, 또는 탑승객의 여행가방에 품목 1개를 더 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셈인데, 그 모양새가 여간 서글픈 것이 아니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의 담박한 자서전

<지구는 푸른빛이었다>(갈라파고스)는 유리 가가린의 자서전을 옮긴 책이다. 동양철학과 인류학을 전공한 김장호씨와 중앙아시아 키르기스 출신으로 러시아문화원에 근무하는 릴리아 바키로바가 공동으로 번역했다는 점이 특색이다.

부록에는 한국 우주개발의 역사와 연표, 러시아 우주개발사가 자세히 소개돼 있다. 이번 우주인 사업에 지원한 인원은 3만6206명이라고 알려졌는데, 가가린이 우주인으로 선발되었을 때도 이에 못지 않았다.

일상적인 정밀검사와 체력테스트, 각종 임무수행 평가 등을 통해 '최후의 1인'이 선발되는 과정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들이 어떤 테스트를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어떤 과정에서 탈락되었는지, 평가에는 누가 참여하는지 등은 우주인 이소연이 탄생하는 과정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다.

특히 아무도 가보지 않은 성층권 밖에서 생존하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의학자들이 쏟은 열정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는 소련 의학자들에게 존경을 보냈다. 우주선 선실 내부에서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보장하는 조건을 명확히 한 것, 우주선, 안전한 우주복, 의학적 계측기록 장치를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의학자들이었다."(39~40) 

성층권 밖으로 올라간 최초의 포유류는 '개'였다. 생물학적 조건에 관한 연구를 위해 1957년 '라이카'라는 개는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위성궤도 진입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라이카는 온도 조정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추정되는 스트레스와 과열로 사망했다. 가가린 대신 목숨을 잃은 이 개는 러시아의 수많은 우표로 환생하였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또 연구에 매진하였다. 결국 '스트렐카'와 '벨카'라는 두 번째 '개 원정대'는 생물의 생존과 적응에 관한 확신을 주었다. 인간이 개에게 감사해야 하는 대목이다. 이 책의 대부분은 우주에 첫발을 내딛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소개한 것이다. 마치 우주를 정복이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떠는 언론에 무의식적으로 동요하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그 실상을 이해하는 것도 정신건강에 유익할 것 같다.

국가ㆍ집단적 욕망의 결정체 = '우주정복'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는 바로 국가ㆍ집단의 욕망이다. 가가린은 공산주의 국가 소련의 공산당원이다. 이 때문에 그는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공산주의 체제에 속해 있다. 이는 자서전의 전면에 걸쳐 녹아 있다. 이 때문에 '위대한 지도자 레닌'이라거나 '흐루시초프'에 대한 찬사가 거북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체제보다는 국가와 관련성이 깊다. 뒤집어서 보면 아폴로 우주선의 미국인은 어떻게 그려졌는가? 이소연씨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키워드에 종속돼 있는 표현수단일 따름이다.

헤르만 헤세가 그의 책 '데미안'에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라고 기록했다.

알을 깨는 것도 신에게로 날아가는 것도 '욕망'이라는 거대한 동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우주정복을 조금 거칠게 비유하면 '성층권'이라는 '질'을 통과하기 위해 '국가'라는 '남근'이 쏟아내는 온갖 욕망의 결정체이다.

이 때문에 가가린의 자서전에서 체제에 관한 찬양이나 언급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결국 공산주의는 가가린에게 마땅히 존재의 근거가 되며, 이 때문에 이 책의 근거가 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책의 한 면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겠다.

나는 우연히 미국의 비행가 프랭크 에버리스트의 <누구보다 빨리 난 남자>라는 책을 입수했다. '우주정복'이란 제목이 붙은 13장을 읽고 나자 불쾌함과 혐오스러운 감정이 치솟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는이렇게 썼다.

"나는 우주를 정복하는 자야말로 지구를 지배하는 자란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은 반드시 강대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약소국이나 비교적 약한 나라라고 할지라도, 예를 들어 원자폭탄 몇 개를 발사할 수 있는 우주선을 가지고 있다면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다. 이렇게 우주선과 핵무기 두 개를 동시에 수중에 넣은 나라는 아무런 반격도 받지 않고 우주로부터 적을 공격할 수 있다. 승리는 확실하게 보장받는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소비에트 사람이 우주를 목표로 하는 것은 다른 나라와 국민들을 노예로 삼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 정부와 흐루시쵸프 수상의 각별한 노력은 전쟁준비가 아닌 평화옹호를 위함이다. (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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