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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페서와 대학 강사의 자살

등록|2008.04.17 14:28 수정|2008.04.17 14:28
폴리페서들의 문제점 중에 하나는 학생들에 대한 교육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갑자기 선거운동에 뛰어들면 그 교수의 공백은 강의의 공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학교를 비우고 국회의원이나 정당요직 활동을 한다면, 장기간 학생들은 수업을 받을 수가 없다. 그만큼 학생들의 교육권이 위협 받는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지적은 맞는 이야기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폴리페서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사이 대개 강의는 잘 이루어진다. 누군가 그 강의들을 맡기 때문이다. 누가 맡을까.

폴리페서들이 비운 강의 공백은 비정규직 강의 노동자들, 즉 시간강사들이 채우게 된다. 정규직 교수들이 정치권에서 탱자탱자 하는 사이 비정규직 강사들이 대신 노동을 하는 것이다. 비싼 등록금 내고, 강사의 강의를 듣는다는 신문 사설의 내용은 현실을 질타하는 것 같지만 강사에게 치욕을 주고 있다. 그들이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수업내용이 부실한 것은 아니다. 부실은 열악한 처우와 불안한 신분 상태가 만들어낸다. 먹고 살기 급급해 한 주 20시간 뛰어야 하는 생존 투쟁의 전선에 있기 때문이다.

폴리페서들이 영원히 정치권에 나가 있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그들은 학문과 연구, 대학 교육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니 말이다. 그들이 없는 공백에 더 양질의 교육이 존재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양질의 강의를 제공하는 강사들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그들이 받는 수당은 형편없고 신분은 여전히 불안하다.

지난 3월 27일 미국 텍사스 주 한 모텔에서  국내 대학 강사였던 한경선씨가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 열악한 국내 대학 강사들의 현실을 드러내주는 사례였다. 2003년과 2006년에도 불안한 신분과 생활고에 대학 강사가 자살했다. 대학강사는 1949년 교육법에 의해 교원이 됐지만, 1977년 유신독재정권이 교원지위를 박탈했다. 의식 있는 석박사 강사들을 학생들과 분리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그 강사는 교원지위를 가질 수 없었고, 이후 4대 보험이나 연구실도 제공받지 못했으며 교육과정결정에 발언권도 없었다. 물론 고용안정성은 전무하다. 시간당 평균 강사료는 3만원이다. 대학 교육의 절반 가까이를 담당하는 이들의 인건비는  교직원 전체 인건비의 3~10%다. 처음부터 대학의 수익 구조는 불안한 대학 강사들의 비용 착취에 기반하고 있다. 2006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사립대 시간강사와 전임교수의 평균 월급은 75만원과 335만원이었다. 대학 강사의 문제는 학교만이 아니라 교육권에 관한 문제임에도 각 대학의 총학생회는 관심이  없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폴리페서의 문제 발생 방지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대학 교수들이 정치권에 참가하고 있으면, 학교에 이익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심지어 10년 동안 정치 활동을 하는 교수의 강의를 강사들이 찢어 담당한다. 물론 그들이 오랜 동안 그 강의를 담당했다고 교수로 임용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들은 버려진다. 더구나  공백을 메우는  강사들은 폴리페서들의 제자들인 경우가 많다. 시간이 갈수록 단순한  밥벌이에  그치게 되며 강의자의 열정과 소명의식은 점점 사라진다.

그들 중 그냥 학교로 돌아오면 문제가 되지만, 진출한 교수는 모두 용서된다. 몇 년 전 서울 시내 한 대학에서 한 교수가 학교에서 쫓겨나다시피 사표를 낸 이유는 10년째 국회의원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교수의 강의를 담당했던 강사들의 처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정치권에서는 폴리페서를 방지하기 위한 법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아예 정당 정치권으로 가지 못하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임명직을 통해 정책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학문 연구와 양질의 강의를 위해 필요한 면이 있다. 실천 지식인의 가능성을 아예 봉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안을 통해 임명직 공무원 근무기간을 2년 이상을 넘기지 말도록 하고, 넘기면 사표를 내는 것으로 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2년동안 대학을 비운 사이 그 담당 교수 과목을 담당하는 강사에게는 그 교수의 지위를 부여해 주어야 한다. 예컨대 정치권이나 임명직 참여 교수가 받는 월급은 해당 강사에게 지급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대학에 폴리페서가 필요하다면, 그들 대신 강의를 맡고 있는 비정규직 시간 강사들의 대우 보장과 학술 연구 지원를 통해 대학의 강의 질, 학술 역량을 증대시켜야 한다.

요컨대 폴리페서의 문제는 실질적으로 대학의 강의를 담당하고 있는 시간 강사들의 처우문제와 연관 지어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폴리페서에  관심을 갖는 의원들이 시간 강사들의 처우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나서야 한다. 국제적으로 경쟁력있는 대학교육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데일리서프라이즈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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