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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성형외과에 <플레이보이>가 있는 이유

[여성영화제] <오버 더 힐>, 성형외과와 미용업계 고발

등록|2008.04.18 08:46 수정|2008.04.18 17:57

▲ 오버더힐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지난해 칸 국제광고제 필름부문 그랑프리 수상작은 도브 에볼루션 티비 광고였다. 지친 얼굴의 모델을 앉혀두고 화장과 머리 모양을 덧씌운 뒤 사진을 찍어 '뽀샵처리'를 하고 전광판에 걸리기까지를 담은 30초 짜리 짧은 영상은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수상 결정이 되었다.

'광고 뒤에도 삶이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오버 더 힐>은 감독 자신의 얼굴을 놓고 이와 같은 '비현실화 작업'을 따라가며 발랄하게 다큐멘터리를 열고 있다.

'뽀샵'과 '보톡스'에서 '소음순 절제 수술'까지

<오버 더 힐>의 초반. 엄마는 페미니스트였고 자신은 모델을 했었다는 34살의 젊은 감독은, 잔주름을 걱정하며 다리 털을 민다.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는 여성이 전세계적으로 5%도 되지 않는 현실이건만, 여성의 능력은 종종 '여성다운 외모'로 평가된다. 남성성이 '사회적 지위'에 기반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뽀샵질'한 패션 잡지를 보고 나면 거의 모든 여성이 우울해지고, 자신의 외모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받는다. 미용산업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소비자들은 '아무 효과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링클프리 크림을 사는데 열을 올린다. TV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모두 이마를 움직이지 않는데, 이건 '너도나도 주입 받은 보톡스'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패션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가고, 오프라 윈프리 쇼의 고정 출연진을 찾아가 만나기도 하고, 성형외과 대기실을 찾아가기도 한다. 성형의 끝을 향해 달려가던 다큐멘터리는 <플레이보이> 잡지의 여성처럼 소음순 절제술을 시술한다는 '잘 나가는 성형외과 수술실'을 찾아가기에 이른다.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16일 저녁, 객석은 '(영화가) 꽤 징그럽다는 입소문에도 불구하고' 여자들로 가득찼다. <오버 더 힐>은 마이클 무어처럼 재기 있는 수다로 관객을 웃기지만, 마음 편히 보기에는 적나라한 장면들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다큐멘터리였다.

패션 잡지와 다국적 미용업계, 성형외과의 유착 고발

▲ 오버더힐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국민의 알 권리'는 참 많은데, 가끔 어떤 '알 권리'는 발견조차 안 되고 있을 때가 있다. 한
국에도 성형 수술 부작용을 고발하는 사례들은 많았다. '선풍기 아줌마'나 '수술 후유증'은
매번 충격을 던져주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여론은 종종 '외모에 현혹된 어리석은 여자의 선택'을 비난했으며, 성형외과와 화장품 기업, 미용업계의 광고로 둘러싸인 패션 잡지의 유착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오버 더 힐>은 '잘못된 수술'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뽀샵한 플레이보이 지
모델과 비교해서 당신의 엉덩이와 가슴과 아랫배와 소음순까지 얼마나 못생겼는지'를 설파하며 부위당 4000달러의 성형수술을 권유하는 '잘나가는 의사'를 고발하는 영화다. 엄청난 수익을 내며 화장품을 파는 다국적 기업과 미용업계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국민 알 권리의 사각지대를 파고든 서니 베르히만 감독의 시도는 네덜란드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대해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다큐멘터리의 사이트는, 방문자수 30만 명을 돌파하며 폭주하기에 이르렀다. "누군가 내 불만을 대신 말해줬다"며 모여든 소비자들은 소비자 감시단을 꾸려, 주름방지크림을 연구실에 맡겨 효과 있는지 확인하고 공표하는 과정을 요구했다. 

다국적 기업이 가져온 정신적 손상에 대한 배상을 위해 800여 명의 소송단이 꾸려졌고, 변
호사들이 가담해 실제 소송이 진행되기에 이르렀다. 성형수술 의료사고 피해자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조항을 입법화하기 위해 정치인들과 적극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했다. 패션 잡지 측에는 "이 사진들은 포토샵을 거친 사진입니다"라는 문구를 집어넣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이와 같은 반응은 국민적 관심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고, 미용관련 프로그램 수가 줄기도 했다.

성형은 여성의 행복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에 주변 남성 동료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지금
영화가 성공했고 반대했던 동료들을 비웃을 수 있어 더 행복하다"고 밝힌 서니 베르히만
감독은 "방송국에서는 전신 성형을 한 여자와 나를 앉혀두고 싸움 붙이길 좋아했다. 그러나 난 성형 하는 여자들의 판단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미국에 수많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지원을 받아 여자를 성형시켜주는 프로그램들인데, 마치 여성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가장합니다. 난 여기에 분노했습니다. 성형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선택 뒤에 가려져 있는 성형 산업의 전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한국 성형외과에도 들러보았다며,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서니 베르히만 감독은, "한국의 성형수술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관객은 영화가 끝나고 내게 와달라"며 당부하기도 했다.

서니 베르히만 감독의 <오버 더 힐>은 여성영화제 몸의 정치학 섹션에서 <XXY> <잔지바르 축구 퀸> <비키니를 입지 않은 소녀> <당신의 날개> <털북숭이 다리>등과 함께 상영되었다. 또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15일 '세계를 재생산하는 여성의 몸을 둘러싼 생체 정치학'이라는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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