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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과연 '실용'적이고 '유용'한가?

3교시 영어듣기평가 감독 맡은 중국어 교사의 단상

등록|2008.04.19 09:19 수정|2008.04.19 09:19
나는 중국어 교사고 오늘은 영어듣기평가가 있는 날이다. 교직에 들어와 이미 10년 넘게 해 오던 영어듣기평가 시험 감독이거늘 오늘은 영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지금껏 문제의식 없이 당연히 해 오던 3교시 영어듣기평가 감독인데 전에 없던 불만이 자꾸 생겨난다.

아니 중국어 시간인데 왜 중국어 교사인 내가 영어교과 시험 감독을 해 주어야 하는지, 그것도 영어듣기가 수행평가라는데 전국에 있는 모든 비영어과 생님들이 왜 유독 영어과 수행평가 감독을 위해 귀한 수업시간을 내주면서 봉사하고 희생해야 하는지 쉽게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늘 미국과의 공조를 강조하며 후보자 시절부터 그렇게도 가고 싶어 하다가 '드디어' 미국으로 날아간 대통령 탓인지 아니면 '아륀지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강화와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15일 발표된 '학교 자율화 3단계 추진계획' 이라는 명분하에 29개 규제 지침을 이달내 일괄 폐지한다는 우울한 소식에 심사가 뒤틀려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방송담당교사로서 3일째 긴장감 속에 EBS 라디오주파수를 맞추고 교실 음량을 조절하는 일을 하는데 마뜩잖은 마음이 생기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영어듣기평가 전국적으로 3일간 오전 11시 EBS라디오로 영어듣기평가가 학년별 실시되었다. ⓒ 김대오


세계 공용어로서 외국어의 지위와 유용성을 부정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사고력 신장이나 창의력 계발과 다소 거리가 있는, 도구적 성격이 강한 하나의 외국어를 교육정책의 대단히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최근 일련의 시책들에 대해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측면들이 많다.

교육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과연 영어가 현재 우리에게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할 만큼 유용하고 활용도가 높은 것인지 미래의 경쟁력에 정말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외국어 영역에도 한번 '실용'의 잣대를 들이대보면 어떨까. 작년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497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는데 그중에서 450억 달러를 중국에서 챙겼고 대미 무역흑자는 61억 달러에 불과했다. 작년 한중교역량은 1500억 달러로 미국과 일본을 합친 교역량보다도 많았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많은 교역을 해서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는 얘기는 그만큼 중국어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뜻이 아닐까.

작년 미국, 영국, 독일 등 영어권 나라와의 무역량은 전체 무역량의 17% 정도인 반면 중국, 대만, 홍콩의 중국어권 무역량은 전체의 30%나 차지했다.

인적 교류면에서는 어떤가. 일주일에 중국으로 운행하는 비행기편수는 31개 도시, 836편이나 되는데 국내 항공편수보다도 많다. 하루에 평균 1만 명의 한국인이 중국엘 가고 1년이면 약 400만 명이 중국을 찾고 있다. 반면 작년 미국에 간 한국인은 전체 외국 여행객의 7.2%밖에 되지 않았다. 작년 입국자 통계도 중국과 대만이 21%, 일본이 35%인 반면 미국은 9%였다.

그런데 새 정부는 영어 공교육 강화를 위해 기존에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실시하던 주 1회 1시간이던 영어수업을 2009년부터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주 1회 3시간으로 늘리고 5년간 영어전용 교사를 2만3천명 뽑아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수업 받는 학생 수를 23명으로 줄이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4조원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교육부 1년 예산이 30조인데 비해 연간 영어에 드는 사교육비가 15조라고 한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제외한 독어, 불어 등 유럽어는 이미 고등학교 현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고 중국어와 일본어도 비수능교과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심각한 괴리와 불균형을 극복하고자 하는 그 어떤 방안도, 고민조차도 없다는 것이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영어를 강조하는 이유가 국제사회와의 소통을 위한 것이라면 다양한 외국어를 습득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 21세기는 이미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가 아니고 다품종 소량생산시대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외국어를 할 수 있는 인재들이 필요하다.

유럽에서는 중국시장 개척을 위해 중국의 지방방언을 지도하는 학과가 생겨나고 있다고도 하는데 우리는 '영어' 앞에 온 국민을 '한 줄 세우기' 하려 하고 있다.

이제 1학기 영어듣기평가는 끝났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내일 아침도 등교하자마자 20분간 영어방송 듣기로 또 하루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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