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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와 2000년대를 고민하게 하는 지적소설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등록|2008.04.20 12:53 수정|2008.04.20 12:53

▲ 책 ⓒ 문학동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는 숫자 차이는 얼마 없지만 사회분위기와 사람들 생각은 급격하게 달라졌다. 너무나 다른 현실인식과 세계관은 세대 차이를 크게 한다. 벌어진 세대 간, 집단 간의 간격으로 소통은 어렵다. 이러한 한국에서 역사알기와 현실성찰은 중요하다.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소련이 무너질 때쯤 한국은 1987년 민주항쟁이 있었고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다. 냉전해체라는 1990년대 엄청난 변화에 사회주의는 바래지고 개인은 주체로 해방되지 못한 오늘날,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2007, 문학동네)은 2000년대와 1990년대를 이으며 세상과 개인의 관계에 대해 치열한 고민이 담겨있기에 읽어볼 가치가 있다.

지은이는 소설쓰기에 자신이 있다. 서문도, 에필로그도 없다. 책 첫 장부터 이야기는 바로 서술된다. 민족자주와 해방을 외치던 이념이 몰락하기 직전인 1990년대 초, 운동권 학생인 주인공의 서술로 소설은 전개된다.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주인공이 대학시절 연애와 운동권을 하면서 느끼고 경험한 이야기들 그리고 92년 전대협 방북지원을 위해 베를린으로 가서 겪은 이야기들로 짜여있다. 두 이야기 사이에서 주인공은 삶의 의미와 세상의 변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인류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하였던 일들은 되살펴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고 후회막급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렇게 부끄러운 기억이 있기에 지은이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게 가능한가?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가? 같은 문제를 던지며 이렇게 쓴다.

20세기의 사랑은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다. 검열관이 그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 역시 검열관에게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너’가 ‘사랑해’라는 동사로 연결된다는 것은 틀린 말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나’와 ‘너’는 증오를 통해 서로를 이해했다. 사랑은 수없이 많으나, 증오는 하나일 뿐이었으므로. - 본문에서

일제침략, 광주민주화운동, 87년 민중항쟁, 안기부 고문, 프락치, 주사파, 운동권 같은 한국이야기와 세계대전, 유태인학살, 냉전체제 같은 세계 이야기를 등장인물들의 생애와 이리저리 섞으면서 중심을 잃지 않는 작가의 솜씨는 책이 지닌 문제의식만큼 뛰어나다.

또, 그의 글재주는 짜임새에서도 빛이 난다. 사건들은 차례로 이어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고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며 단락 사이에 시간차를 둔다. 독자 스스로 상황과 사건들을 잇도록 여지를 주기에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대단하다. 세상 모습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의 주제와 글의 탄탄한 구성을 보면 김연수가 왜 지적인 소설을 쓴다고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다.

(베를린)장벽의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지금 여기에 이런 장벽이 서 있는가?
왜 우리는 서로 미워하는가?
왜 우리는 지금 당장 어리석은 짓을 멈추지 않는가? - 본문에서


베를린 장벽이 사라진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국은 갈라진 채 서로 미워하며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과연 이 세계뿐인가? 물음을 던지는 지은이에게 답을 하기는커녕 우물쭈물하며 고민도 안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되짚어본다. 밥 먹고 사는 건 늘 중요했지만 왜 가장 물질이 풍요로운 21세기에 경제문제가 최우선순위인지 곰곰 생각해본다.

예전 대학생들은 사회 지성인으로서 세상을 고민하고 더 나은 사회를 꿈꾸며 여러 가지를 공부하였다. 마르크스가 우스개가 되어버린 요즘, 대학생들은 무엇을 읽고 어떤 세상을 바라고 있는가? 어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본을 보이고 가르치고 있는가?

서울 시내를 가득 메웠던 학생들은 대부분 <세계사권력>을 읽었을 것이다. 대학교 신입생 때 우리는 그런 책을 선물로 주고받았다. - 본문에서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www.bookdail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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