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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붉은 색이 많아 전시 못한다?

4.3기념관에 걸리지 못한 아트워크 작품 '오라리 사건의 진실'

등록|2008.04.21 13:52 수정|2008.04.22 17:32

▲ 김대중 만화가의 '오라리 사건의 진실' 제목 부분 ⓒ 컬처뉴스



제주 4.3사건의 뼈아픈 역사를 통해 평화와 인권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건립된 '4.3평화기념관'(이하 4.3기념관)에 걸리지 못한 작품이 하나 있다. 4.3사건을 보다 입체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시각예술분야 작가 11명이 작업한 아트워크(Art Work) 작업 중 하나인 '오라리 사건의 진실'이 바로 그것이다.   

제주 4.3사건의 6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28일 제주 4.3평화공원에 문을 연 '4.3기념관'에는 4.3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구성한 전시실이 있다. 기념관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이 전시실에는 4.3의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현재적 의미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한 각종 사료와 작가들이 작업한 아트워크 작품 12점이 전시돼 있다. 

김대중 만화가의 작품 '오라리 사건의 진실'은 이 12작품 중 하나로, 4.3발발 초기 경찰과 우익 청년들이 저지른 '오라리 방화사건'을 마치 무장대가 저지른 것처럼 조작한 미군정의 공보용 기록영상 <제주도의 5월 1일(May Day on Cheju-do)>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다. 미군정이 제작한 <제주도의 5월 1일>은 당시 무장대와 경비대 사이에 맺어진 '4.28 평화회담'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무장대에 대한 강경진압과 초토화 작전을 펼치게 한 촉발제가 된다.  

'오라리 사건의 진실'의 진실

하지만 전시실을 찾았을 때 김대중 작가의 작품 '오라리 사건의 진실'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작품은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4.3사건과 관련해 행정총괄기구인 4.3중앙위원회 소위원회(이하 4.3소위원회)에서 김대중 작가의 작품에 대해 표현상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미공개 상태로 수정할 것을 4.3기념관 사업소 측에 지시했고, 사업소는 개관을 앞두고  흰 벽을 만들어 작품을 가린 것이다.  

▲ 아트워크 작품 '오라리 사건의 진실'이 흰 벽으로 가리어져 있다. ⓒ 컬처뉴스



참고로 김대중 작가의 작품 '오라리 사건의 진실'은 가로 10m에 달하는 대형작품이며, 4.3소위원회 측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은 개관을 8일 앞둔 지난 3월 20일이었다. 4.3소위원회는 4.3기념관 개관 준비상황 등에 대해서 4.3기념관 사업소로부터 보고 받으면서 김대중 작가 작품의 한 장면에 대해 "오라리 사건 배후에 백악관이 있는 것처럼 묘사한 것은 정확한 역사적 근거가 없는 사실왜곡"이라며 수정할 것을 지시했다.

4.3기념관 사업소는 이러한 소위원회의 수정요구 사항에 대해 시공테크측을 통해 작가에게 전달했으나 작가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라며 수정사항에 대해 거부했고, 결국 개관일부터 현재까지 '오라리 사건의 진실'은 흰 벽에 가려진 채 일반에 공개되지 못하고 있다.

소위원회의 수정요구와 관련해 김대중 작가는 '작가의견서'를 통해 "'미 정부의 대응-미군정의 대응-평화협상-오라리사건-제주도 메이데이'로 이루어지는 작품의 한 축은 사실로서 드러나지 않았으나 당연히 추론 가능한 부분을 보여준 것"이라며 "작품은 단순히 국부적인 사실들만으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밝히기 위해 제작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사건 발생의 원인과 책임의 소재와 원천에 대해서 짚는 것이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 군정의 4.3사건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는 당연히 당시 미 정부의 극동 정책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정되는 것이며, 미 군정의 우발적이거나 독자적인 것이 아니다"며 "이와 같은 내용은 본 아트워크 제작의 지침 기능을 하는 '4.3사료관 전시기본계획'에서도 내용상의 중요한 축으로 설정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 '오라리 사건의 진실' 전체 작품 모습(위)과 문제가 된 백악관 묘사 부분(아래) ⓒ 컬처뉴스



"작가의 예술적 숙고의 산물"

4.3기념관 전시연출자문위원단장이면서 아트워크의 예술감독을 맡은 성완경 미술평론가는 이러한 작가의 입장에 동의하면서 "김대중 작가의 아트워크에서 미 정부 관여에 대한 묘사는 오라리 사건의 역사적, 실체적 맥락을 드러내기 위한 예술적 표현장치로서 작가의 엄정한 예술적 숙고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 작품은 오라리 사건에 대한 기존의 역사적 연구와 사료관 전시기본계획의 내용에 기반하여 제작됐으며 그 표현 형식은 작가의 독자적인 예술적 해석이 포함된 것으로 실제 이 사건의 진실에 부합한 표현으로 간주된다"면서 "이러한 역사적 진실과 작품의 실체적 내용과 의도가 어떤 이유에서건 왜곡되거나 훼손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 밖에도 4.3기념관 사업소 측에서는 김대중 작가의 작품에 대해 구두로 세 가지 사항에 대해 추가적으로 지적했다. '작품 전체 색조가 붉은색으로 거부감을 준다는 것'과 '경찰과 미 군정 등 기관의 묘사가 극악하게 표현됐다는 것', 그리고 '포스터 부분이 격하게 표현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 4.3기념관 사업소는 '오라리 사건의 진실'과 관련해 백악관 묘사 외에도 작품 전체 색조가 붉다는 것과 경찰과 미 군정이 극악스럽게 표현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 컬처뉴스



이에 대해서도 김 작가는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이며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작가는 "작품에 있어 보여지는 진한 주황색 색감은 회색빛의 채도가 낮은 배경과 대비해 각 상황과 인물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4.3사건에 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해석과는 무관하게 긴박한 분위기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작품에서 진한 주황색으로 강조된 부분에는 무장대는 물론 이를 진압하는 경찰, 미 군정, 그리고 주민들에 구별 없이 사용되고 있다.

또 '경찰과 미 군정 등 당시 국가권력에 대해 극악하게 묘사됐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는 "해석 없는 사실로서만 작품을 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애초에 작품이 갖는 의미는 보여지지 않는 영역을 표현하는 일"이라면서 "사건 초기의 평화적 해결 노력과 반대 지점의 인물들을 묘사하는 방식이 만화적 표현 양식 하에서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작가는 "표현의 수위와 정도에 대해서 해당 기관과 관련 단체로부터 문제가 제기된 것은 과거사에 대해 과대하게 연결 짓고 있는 태도라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이러한 것이 사건을 왜곡, 과장해 보는 시각이 아닌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예술에 대한 검열이며 예술침해다"

취재 당시 전시실 현장에서 만난 성완경 예술감독은 "작가에게 납득할 만한 어떤 설명 없이 '오라리 사건의 진실'에 취해진 조치(흰 벽면 처리)는 폭력적 방식의 예술 검열이며 예술 침해"라고 비난하면서 "당사자인 작가가 명확한 입장을 갖고 대응해야 하며 나 역시 아트워크 예술감독으로서 이번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실 총괄제작을 담당한 시공테크의 전시담당 장태동씨 역시 "소위원회 차원에서 회의를 통해 문제가 제기되고 미공개로 입장이 정리되면서 시공업체로서는 사업회측의 요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김대중 작가의 입장에 동의한다"면서 "빠른 시일 안에 이번 문제가 정리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실 개관일로부터는 20여일이 지났다. 작가는 수정요구에 대한 '작가의견서'를 지난달 25일 사업회측과 시공업체측에 보냈으며, 성완경 예술감독 역시 '아트워크 '오라리 사건의 진실' 중 일부 표현 수정 지적에 대한 의견'을 같은 날 4.3기념관 사업소장에게 보냈다. 하지만 4.3기념관 사업소측에서는 아직까지도 작품을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작가와 예술감독의 의견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은 상태다.

4.3기념관 사업소의 양병우 공원관리 팀장은 "'오라리 사건의 진실' 중 미군정의 조작영상이 백악관과 연결되어 있다는 부분은 4.3사건과 관련된 진상조사서에서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 부분으로 왜곡의 소지가 있어 개관 전 일반 시연과정뿐 아니라 소위원회 시연에서도 모두 지적됐다"면서 "소위원회의 경우 4.3사건과 관련된 법적기구인 만큼 수정요구에 대해 작가가 응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 팀장은 또 작가의 입장과 관련해 "작가의 표현의 자유나 작품을 통해 역사적 문제를 드러내려는 의지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기념관은 4.3사건에 대한 일반의 공감대 형성과 4.3사건을 통해 인권과 평화의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장"이라면서 "개인의 전시공간이 아닌 만큼 수정이 이루어져 비어있는 공간이 채워질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4.3사업소는 김대중 작가와 성완경 아트워크 예술감독에 대한 의견서에 대해 자문위원단과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며, 이후 개최되는 소위원회 회의에서 이번 건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컬처뉴스>(http://www.culturenews.net)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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