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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동맹' 하려면 상호방위조약부터 고쳐라

[심층진단 ①] 한미 전략동맹, 무엇이 문제인가?

등록|2008.04.21 17:44 수정|2008.04.25 16:07
캠프 데이비드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전략동맹'이 이명박 정부 시대의 한미동맹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찬사와 비난이 교차하고 있지만, 그 개념과 내용은 국민들에게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전략동맹의 껍질을 벗겨보면 엄청난 예산과 한국 안보의 미래, 그리고 21세기 한국의 정체성이 위태롭게 자리를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에 세 차례에 걸쳐 한미 전략동맹의 개념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과연 노무현 정부 때와 비교해 한미동맹이 '확' 바뀌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한미 전략동맹이 21세기 한국의 비전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살펴본다...<글쓴이 주>

▲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각) 캠프 데이비드에서 첫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미동맹을 '전통적 우호관계'에서 '21세기 전략동맹'으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 청와대 제공

4월 19-20일,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첫 정상회담을 하고 한미동맹을 '전통적 우호관계'에서 '21세기 전략동맹'으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양국 정부는 이에 대해 상당한 만족감을 피력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엄청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양국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전략동맹'이라는 원칙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후속 실무 회담과 7월로 예정된 부시 대통령의 방한 때 협의하기로 했다.

아직 전략동맹의 구체적인 내용물이 채워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미 '전략동맹'은 21세기 한국 외교안보전략에 중대한 함의를 갖는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전임 정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국내 정치적 강박감 때문인지, 국민적 공론화나 합의도 없이 한미관계의 전략동맹화를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였다.

이 대통령 스스로는 컴퓨터가 달린 '컴도저'라고 했지만, 정부의 외교안보전략을 보면 결코 성능 좋은 컴퓨터는 아니라는 것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특히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유독 국민적 합의와 보편성을 강조하면서도, 한미관계를 다룰 때에는 이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외교안보정책 잣대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널뛰기처럼 오락가락하는 것만큼이나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우선주의'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는 듯하다.

'전략동맹'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21세기 한미 전략동맹'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은 4월 15일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설에서 '한미 전략동맹'은 "21세기의 새로운 국제환경에 직면하여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 그리고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관계로 규정하면서, 전략동맹의 비전으로 가치동맹, 신뢰동맹, 평화구축동맹을 제시했다.

가치동맹은 한미 양국이 공유해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의 공유를 확대한다는 것으로, 한미 전략동맹의 '정체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가치동맹(alliance of values, 혹은 value-based alliance)을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한 당사자는 부시 행정부이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11월 영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영동맹이 안보동맹의 성격을 넘어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와 시장경제 등 가치와 이념의 공유를 심화시키고, 이를 전세계로 확산시키는데 양국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 개념을 처음 사용했다.

이후에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동부 유럽 국가들의 가입을 허용해 민주주의를 확산하고, 한국, 일본, 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동맹국들과 민주주의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며 가치동맹을 언급한 바 있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가 동맹에 가치론적 해석을 강조해온 이유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강조함으로써 이라크 정책 실패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 여론을 희석시키고,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 동맹국과 우방국의 참여를 촉구하기 위한 것에 있다.

이보다 더 전략적인 관점에서는 동맹 유지․강화의 새로운 명분 찾기로 해석할 수 있다. '공동의 위협'에 기반을 둔 군사안보동맹은 그 위협이 사라지거나 위협 인식에 차이가 발생하면 명분이 약화될 수 있다. 한미동맹의 최대 도전은 북한 핵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지적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반면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 '공동의 가치'에 기초한 가치 동맹은 동맹국 사이에 '공동의 정체성'을 강화함으로써 동맹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 21세기 들어 한미 양국 정부와 보수적 전문가들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을 둔 공동의 가치와 공동의 정체성을 유독 강조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미동맹의 '가치동맹화'는 영구적인 한미동맹을 원해온 한미 양국의 보수파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메뉴인 것이다.

▲ 방미중 지난 4월 15일(현지시각) 코리아 소사이어티에서 연설하는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제공

신뢰동맹에 대해서 이 대통령은 한미 양국의 공유된 가치를 바탕으로 양국이 "군사, 정치외교, 경제, 사회, 문화 등 포괄적인 분야에서 서로 공유하는 이익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긴장완화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미공조와 협력 강화, 동아시아 안보신뢰구축 및 군사적 투명성 제고, 동아시아 다자 안보협력 네트워크 구축에 선도적 역할을 목표로 제시했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발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미 양국이 FTA 발효 및 비자면제협정 등을 통해 군사뿐만 아니라 전방위적 측면에서 가치와 이익의 공유는 신뢰를 돈독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질서를 한미, 혹은 한미일 삼국 주도로 재편해보겠다는 복안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미 전략동맹과 함께 한미일 삼각협력체제의 재부상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끝으로 평화구축 동맹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 및 범세계적 차원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함으로써 국제평화 구축에 기여"하는 것으로, "테러, 환경오염, 질병, 가난에 시달리는 곳에 달려가 인도주의에 기초한 인간안보를 증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개념 규정에 따르면 한미동맹의 지리적 범위는 전세계로 확대된다. 정부는 이를 두고 '글로벌 코리아'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한미동맹의 적용 범위를 전세계로 확대하는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뿐만 아니라 국군의 임무를 국토방위로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과도 저촉될 소지가 크다.

부시, 한미 전략동맹의 상대는 '중국'

이명박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설명한 한미 전략동맹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한미관계를 21세기의 전략동맹이라고 묘사한 것에 동의한다"며, 그 의미에 대해 핵물질의 확산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젊은 세대에게 교육 기회를 확대하며,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체제 구축에 협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만한 발언은 그 다음에 나왔다. 부시는 캠프 데이비드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건설적이 될 수도 있고, 파괴적이 될 수도 있다며, "중국 문제가 한미 양국이 건설적인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21세기 동맹관계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21세기 한미관계를 '전략동맹'으로 격상하는 것을 추진한 핵심적인 이유가 중국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중국견제론'은 미국측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미국의 전직 고위 관료들과 한반도 전문가들로 구성된 '새로운 시작 모임(New Beginning Group)'은 지난 2월 중순 한국을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비롯한 외교안보 참모들 면담하고 한미동맹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한국의 외교안보 참모들이 "중국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피력하면서 한미동맹의 강화와 주한미군의 주둔을 통해 중국을 견제할 필요를 제기했다"고 전했다. 한미 전략동맹의 이면에는 이명박-부시 사이에 중국에 대한 견제 심리가 강하게 깔려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미상호방위조약'마저 휴지조각으로?

이와 같은 한미 전략동맹은 다양한 각도에서 그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정작 한미동맹의 모태인 상호방위조약마저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미동맹은 양국 가운데 한 나라가 제3자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헌법적 절차에 따라 군사력을 발동하는 양자 동맹이다.

그런데 한미동맹의 '세계화'는 이러한 동맹 조약에 명백히 위배된다. 2005-6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논란이 되었을 때, 국회 사무처와 노무현 정부 일각에서 전략적 유연성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가 국가간의 조약이 아니라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얼버무렸다.

전임 정부 때 한미동맹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러한 점들을 바로 잡는 것이 정부의 책무이다. 한미동맹의 적용 범위를 전세계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면, 국민적 공론화와 합의, 그리고 미국과의 협상 및 국회 비준을 거쳐 상호방위조약을 먼저 개정해야 한다. 또한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한미동맹이 재편되고 있는 만큼, 무상으로 기지와 시설을 제공하고 막대한 방위비 분담금을 지불하는 것 역시 합리적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전략동맹'이라는 그럴듯한 명목하에 잘못된 것은 고치지 않고, 오히려 방위비 분담금 인상 및 2사단 이전비용으로의 전용을 수용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의 기여 확대라는 명목하에 평화유지군(PKO) 법을 제정해 무분별한 해외 파병을 법제화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노무현 정부 때 붙여진 혹을 떼지 못하고 또 하나의 혹을 붙이는 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한미 '전략동맹'은 미국에 돈 퍼주고 땅 대주고, 한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한미간의 '전략동맹'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론화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어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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