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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에게 진정 필요한 건 '밥' 보다 '일'

[인터뷰] 노숙인 쉼터 유쾌한 공동체 '희망사랑방' 안승영 목사

등록|2008.04.23 08:29 수정|2008.04.23 08:49
사회봉사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 물질문명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개인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이들은 보석처럼 빛나는 존재다. 나보다는 남을 남보다는 소외된 이웃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만나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들어본다.<기자주>

▲ 무료급식 모습(오후4시) ⓒ 이민선

십자가 하나 없는 교회에서 목회 활동 하며 노숙자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안승영(40세) 목사를  만났다. 안 목사는 '어째서 교회에 십자가 하나 없나요?'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마음 속에 십자가가 있는데 눈에 보이는 십자가가 굳이 필요하겠습니까? 좀 허전한가요. 십자가 하나 들여 놓을까요?하하하."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답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 알고보니 노숙자 쉼터 '희망 사랑방' 업무 자체가 남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표시도 나지 않는 일이었다. 눈에 보여지는 것에만 연연하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

노숙자들을 관리하고 자활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반면 뚜렷한 성과를 내기는 힘들기 때문. 안 목사는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절대 성급하게 성과를 기대하면 안 된다고 전한다. 쉽게 지치기 때문이다. 천천히 이들과 더불어 그저 살아간다는 마음을 가져야 오래 할 수 있다는 것.

노숙자 쉼터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점도 사실 이것과 비슷한 문제다. 노숙자들을 만나 상담하고 생활관리, 운영관리 하다보면 노동 강도가 세기 때문에 쉽게 지친다는 것. 또, 노숙자들 사연이 기구하다 보니 이들과 자주 접촉하는 상담사나 활동가들도 쉽게 우울해진다. 때문에 쉼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자주 바뀐다고 전한다. 2년 근무하면 오래 버텼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업무가 밤낮이 없거든요. 때론 술 먹고 행패 부리는 입소자들 때문에 자다가 말고 달려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수년간 시달리다 보면 '애증'이란 것이 생깁니다. 그때부터는 '애증'이란 감정으로 이겨내는 거죠."

노숙자 중, 상당수가 알콜 중독자다. 이들이 가끔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린다는 것. 하지만 이 분들은 설사 칼을 휘둘러도 그리 걱정스럽지 않다고 안 목사는 전한다. 본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약한 사람들이 술기운 때문에 잠시 이성을 잃었을 뿐이라는 것. 진짜 무서운 것은 맨 정신으로 행패를 부리는 우울증 있는 노숙자들이다.

"우울증 환자가 난동을 부리면 정말 무섭습니다. 평상시 얌전히 있다가 무엇인가 섭섭한 마음이 들면 '다 죽여 버린다'며 행패를 부립니다. 그런 때는 일단 피하고 그 다음에 다독거리죠. 결국은 병원에 가게 되죠. 그래서 우울증 증세가 있는 분들 오면 상담할 때부터 각별히 조심 합니다."

안 목사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자신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신학 대학 다닐 때부터 이런 일을 하기로 결심했고 현재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도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체질인가 봐요" 라며 안 목사는 멋쩍은 듯 웃음을 머금었다.

이 말을 듣고 한 마디 거들었다. "제가 봐도 안 목사님은 노숙자 쉼터 희망 사랑방이 체질에 맞는 것 같아요" 이 말이 떨어지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인터뷰는 희망사랑방 내 작은 사무실에서 이루어 졌다. 희망사랑방은 지난 98년에 안양(안양2동 68-47번지)에 자리를 잡았고 안양2동 688-4번지로 이전한 것은 2007년 4월이다.

안 목사는 넓은 가슴과 어깨를 가졌다. 한 눈에 봐도 믿음직스러운 인상이다. 그의 넓은 어깨와 가슴에서 희망을 본다. 안 목사가 노숙인을 바라보는 눈은 따뜻하다. 개인적으로 노숙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안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자리에서 그렇게 살아주기만 하는 것도 존경스럽습니다. 노숙인 들은 대부분 인생의 모든 것을 포기한 분들입니다. 내가 노숙인들 같은 상황이면 아마 못 견딜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오후 4시에 노숙인 들에게 밥 퍼주는 장면 촬영을 위해 다시 희망 사랑방으로 향했다. 남루한 옷차림 노숙자들이 먹는 한 끼 식사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보통 사람 하루 종일 먹는 양보다 더 많아 보였다. 그 밥그릇에 서러움이 맺혀 있었다. 얼마나 마음이 춥고 허한지를 그 밥그릇이 표현해주고 있었다.

다음은 안 목사와 나눈 일문일답.

▲ 안승영 목사 ⓒ 이민선

- 노숙자 쉼터를 운영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특별한 이유는 없다. 신학대학 다닐 때부터 꿈꾸던 일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잘 살면 자연스럽게 사회 모든 구성원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다. 대부분 교육 제대로 받지 못해서 학습능력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경쟁에서 밀려 오갈 데가 없어진 분들이다. 노숙인들 사회에서 절대 포기 하면 안된다. 노숙인 한 명 제대로 살면 그 가족이 모두 잘 살게 되는 것이다."

- 노숙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 주고 있나?
"우선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한다.(약20명) 찾아오는 노숙자 중 자활의지가 있고 희망이 보이는 사람을 상담을 통해 입소 대상자로 선정한다. 알콜 중독자들은 병원과 알콜상담센터 협조를 받아서 술을 끊게 하고 적극적인 정신상담과 치료를 실시한다. 또, 신앙 및 갈등 해소를 위한 심리 상담을 실시한다. 매일 오후 4시에는 입소하지 않은 거리의 노숙인들을 위해 무료 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 알콜중독자 실제로 술 끊게 한 경험 있는지?(사실 난 알콜 중독자가 술 끊고 정상적인 생활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안 목사 대답은!)
"많이 있다. 고쳐진다. 한 번 입에 술대면 한 달 동안 밥도 안 먹고 방안에 대소변 갈기며 내리 술만 먹는 분이 있었다. 병원에 수도 없이 모셔가고 마음 써서 돌보며 재활 프로그램 가동해서 일에 대한 욕구 불러일으켰다. 이 분 4년 전에 금주에 성공했다. 이 분 퇴소해서 지금은 주일예배 보러 온다. 그러나 알콜중독 고치지 못하면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 대체로 어떤 삶의 여정을 겪으면서 노숙인이 되는가?
"대부분 어려서부터 환경이 좋지 않다. 경제적으로 불우한 경우가 많고 가족관계가 불안한 가정에서 살았던 분들이 많다. 성장하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니 좋은 직장 구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 막노동 등을 하며 전전하다가 결국은 노숙자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노숙인은 점점 더 늘어날 듯하다."

- 특별히 기억에 남는 노숙인은 없는지?
"있다. 좀 전에 알콜 중독에서 벗어난 노숙인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다. 너무 안타까워서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알콜중독을 극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이다. 이 분 모시고 병원도 많이 다녔는데 실패했다. IMF 때 사업에 실패해서 온 분이다. 결국 거리에서 돌아가셨다. 누군가에게 맞은 듯 두개골이 함몰되어 있었다. 그런데 가족들이 시신을 끝내 인수하지 않았다. 아마 가족들과의 관계가 무척 나빴던 듯하다. 이 분 생각하면 지금도 안타깝다."

- 노숙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었인가?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듯하다.
"맞다.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이다. 이 문제는 국가나 지자체에서 나서주었으면 한다. 현재 직업 알선을 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지자체에서 공공 근로 프로그램 만들어서 이 분들께 제공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 충분히 재활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안양뉴스와 유포터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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