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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미국, 중국에 햇볕정책 사용해야"

"압박하면 중화 민족주의 폭발"... 미 정치권에 '훈수'

등록|2008.04.23 09:20 수정|2008.04.23 11:17
남북관계 적용 '햇볕정책', 동북아로 확대

▲ 김대중 전 대통령 ⓒ 남소연

미국을 방문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22일 "미국이 중국에게 과도한 군사적 압력을 가하면 중국 민족주의가 폭발하고 군부가 세력을 장악할 것"이라며 "미국이 중국에게 일종의 햇볕정책을 실시한다면 중국 민주화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대중 정책을 둘러싸고 논쟁이 치열한 미국 정치권 쪽에 둔 일종의 '훈수'인 셈. 또 보통 남북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인식되는 햇볕정책을 동북아 정세에 더 보편적으로 확장한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김 전 대통령은 22일 오후 6시(한국시각 23일 오전 7시)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을 방문해 '햇볕정책이 성공의 길이다'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가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지난 1983년 하버드대학 국제관계센터에서 1년간 공부했으니 이번이 24년 만의 방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내 햇볕정책은 큰 성과를 거뒀다"며 "과거 50년간 200명밖에 못 만났던 이산가족이 1만6000명이나 상봉했고, 180만 명이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다"고 소개했다.

"북한 주민들의 적개심, 우정으로 변해"

김 전 대통령은 "남한은 북한에 매년 40만 톤의 식량과 30만 톤의 비료를 지원해 줬고 북한 주민들의 적개심은 우정으로 변했다"면서 "현재 북한에는 몰래 남한의 대중가요를 부르고 TV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있다, 이 얼마나 큰 변화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빌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에 햇볕정책을 사용했지만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를 뒤집었다"라며 "이후 북한은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핵실험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김 전 대통령은 "무력사용이나 냉전대결을 배제하고 대화와 교류 협력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햇볕정책의 유용성은 한국에서만 성과를 얻은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그 효력이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미국 등 서방세계는 과거 50년간 공산권을 봉쇄했지만 아무 성공도 못했고, 결국 소련과 대화하고 교류하기로 태도를 바꾼 뒤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베트남의 경우도 전쟁과 봉쇄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외교관계 수립과 교류협력으로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에도 햇볕정책을 사용하는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제 경제적 거인이 된 중국이 민주주의와 중화민족의 패권주의 가운데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 인류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여기에는 미국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미국이 일본 등과 함께 중국에 과도한 군사적 압력을 가하면 중국의 민족주의는 폭발하고 군부가 세력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미국이 중국이 위협을 느끼지 않을 만큼의 균형 잡힌 군사력만을 유지하고 내정에 전념하도록 유도한다면, 즉 일종의 햇볕정책을 실시한다면 중국이 민주화될 거라는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화 민족주의 폭발은 한반도에 불똥

그러면서 그는 중국에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증거로 ▲ 유교의 인본주의는 민주주의와 상통한다 ▲ 중국에 5000만 명의 중산층이 있고 이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할 것이다 ▲ 중국에는 매일 300건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으나 비교적 비폭력적이고 정부도 온건하게 대응한다 ▲ 최말단 행정단위에서는 선거가 실시되고 있다는 것 등을 들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중국 공산당 안에는 신좌파와 신우파의 대립이 있는데 신우파는 중국의 부정부패와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복수정당제와 스웨덴식 사민주의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도 신우파 주장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통령이 중국의 민주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다소 장황할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한 것은 많은 서구 학자와 정치인들이 중국을 오리엔탈리즘적 편향으로 보고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그 역사와 문화를 볼 때 애초부터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없다고 본다. 이는 과거 동아시아 독재정권을 미국과 서방세계가 지지할 때 빌미로 삼는 이론적 근거가 되기도 했다.

단지 서구학자들만 아니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나 한국의 과거 어용학자들도 비슷한 주장으로 독재 정권을 합리화했었다.

예를 들어 리콴유 총리는 1994년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와 한 인터뷰에서 서구의 민주주의 인권 개념은 동아시아의 문화 토양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그 해 11~12월호에 김 전 대통령은 동아시아에 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하는 풍부한 문화적·철학적 전통이 있다고 반박해 지상 논쟁이 벌어졌었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의 대 중국 햇볕정책론이 한미정상회담 직후에 나왔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에도 나름대로 시사한 점이 있다. 인수위 시절부터 한미동맹 복원 주장이 너무 요란해 중국 정부가 친미 일변도의 이명박 정부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더구나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21세기전략동맹을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자 일부 보수언론에는 '한미일 3각 동맹 부활'이라는 식의 해설까지 나왔다. '한미일 3각 동맹'은 결국 중국이 볼 때 자신들을 군사적으로 포위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중국인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 성장한 경제력에 기반한 자신감, 서구 세계의 인권 등을 빌미로 한 압박에 대한 반발심, 거기에 중국 내 소수민족들의 분리독립 경향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인위적인 띄우기로 '중화 민족주의'가 급속하게 팽창하고 있는 중이다.

중화민족주의의 주적은 태평양 건너 미국이지만 불똥이 제일 먼저 튀길 곳은 한반도여서 우리한테 이 문제는 대단히 예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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