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 잘하고 온 걸까?
월가에 대한 투자 호소는 번지수 잘못 짚은 것
▲ 미국 방문중인 17일(현지시각) 한미재계회의 만찬 연설하는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제공
미국경제와 월가는 지금 '제 코가 석자'
그러나 사실 미국 자본이 한국의 주식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은 한국 자본시장의 상황이 나빠서가 아니라 월가의 사정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유동성이 막힌 월가는 현금 확보를 위해 주식을 대량 매도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한국의 기관과 개인이 월가의 주식매도를 받아줄 만큼 여력이 있었던 셈이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제 코가 석자'인 사람들에게 투자를 호소하고 온 것이다.
대부분의 기대와 달리 실증적 데이터는 전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주식회사 법인 약 30만 개 가운데 증권거래소나 코스닥에 상장된 회사는 2000개가 못 된다. 전체 기업 중 1% 미만의 기업만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받고 있다는 뜻이다.
주식시장 자금이 기업 투자에 도움이 될까?
또한 주식시장에서 매일 움직이는 5~7조 원의 자금 대부분은 사실 기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주식 매도자와 매수자 사이의 시세차익을 고려한 거래일 뿐이다. 주식 유통시장 내부의 거래라는 뜻이다.
▲ 유가증권시장의 자본조달액과 증시환원액(출처 : 이윤재 '증시의 자금조달 기능 회복을 위한 과제' 에서 재인용) ⓒ 새사연
주식시장을 통해 기업이 자본을 조달받는 대표적 경우는 기업을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기업공개(IPO)'의 경우와 이미 상장한 기업이 추가적인 자본조달을 위해 '유상증자'를 단행하는 경우다. 2003~2007년 사이 기업공개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4조 1800억 원 가량이고,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25조 7700억 원이다. 모두 합하면 30조 원 정도가 자본시장에서 기업으로 흘러들어간 셈이다.
그러나 반대로 기업에서 자본시장으로 자본이 빠져나가는 경우도 있다. '자사주 매입'과 '현금배당'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른바 '주주 관리비용'인데 지난 5년간 자사주 순매입으로 기업이 지출한 자금은 27조 2500억 원이며, 현금배당으로 주주에게 지출한 자금은 53조 1200억 원으로 집계되었다.
매년 10조원의 자금이 기업에서 자본시장으로 역류
결국 기업이 증시로부터 조달한 금액(자본조달금액=기업공개+유상증자)은 30조 원이었던데 반해 자본시장을 위해 기업이 다시 지출한 금액(증시환원금액=자사주 순취득액+현금배당액)은 80조 원이 넘는다. 지난 5년간 총 50조 원, 매년 10조 원씩의 자금이 기업에서 자본시장으로 역류했던 것이다.
▲ 유가증권시장의 자금역류 추이(출처 : 이윤재 '증시의 자금조달 기능 회복을 위한 과제'에서 재인용) ⓒ 새사연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과도한 현금배당, 주식가격 유지와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비한 자사주 매입, 이를 위해 유보율 1000%가 넘는 천문학적 유보금의 적립. 이런 상황들은 기업이 고용확대나 투자확대를 할 수 없게 만든다.
무조건 투자 유치가 답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의 근본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한국 경제에 ‘주주자본주의’가 도입되어 기업들이 이른바 '보수적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주의 이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주주자본주의에서는 투자비용보다 주주관리 비용이 우선적으로 지출되게 마련이다. 혹여 자금의 여력이 있다해도 장기적 기대효과를 요구하는 설비투자를 선호하지 않는 것이 주주자본주의이다. 주주들에게는 당장 자신에게 돌아올 단기 이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제 완화나 감세 조치가 시행된다고 해서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새정부의 기대는 순진하기까지 하다.
특히 주주자본주의적 자본운동의 속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외국자본이다. 올해도 외국자본은 주식보유 비중 32%를 훨씬 상회하여 전체 주식시장에서 40%의 현금배당을 챙겼다. 경제대통령은 월가 투자자들에게 세일즈 외교를 하기 전에 과연 월가의 자본이 우리 기업에게 흘러들어갈지, 아니면 우리 기업의 수익이 월가로 빠져나갈지 손익계산을 잘 해야 할 것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www.epl.or.kr)의 연구 보고서를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글을 쓴 김병권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연구센터장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