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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눈 반짝하면, 쥐새끼들 벌벌 떨까?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75] 괭이눈

등록|2008.04.25 14:56 수정|2008.04.25 14:56

괭이눈괭이눈이 숲에 피어나면 황금으로 만든 보석함이 가득한 것만 같습니다. ⓒ 김민수


4월의 숲에 서면 어둑한 습지를 환하게 밝혀주는 꽃이 있습니다. 마치 황금으로 만든 보석함처럼 노랗게 무리지어 피어난 괭이눈을 보면 나도 모르게 "와!"하고 감탄사가 터져 나옵니다.

괭이눈의 종류도 상당히 많습니다만 그동안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만난 괭이눈을 정리해보니 괭이눈, 산괭이눈, 애기괭이눈, 흰털괭이눈 모두 네 가지입니다.

아시다시피 '괭이'는 '고양이'입니다. 괭이밥은 고양이가 배탈 났을 때 속을 다스리려고 뜯어 먹는다고 전해지므로 '괭이밥'이 되었고, 괭이눈은 보석함처럼 생긴 꽃 모양이 고양이의 눈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고양이는 쥐의 천적입니다. 고양이의 울음소리, 고양이의 번뜩거리는 눈을 보고 기겁하지 않는 쥐가 있우려고요. 고양이와 쥐가 마주쳤다 하면 쥐는 꼬리가 빠져라 줄행랑을 쳐야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습니다.

산괭이눈괭이눈보다는 소박하지만 역시 괭이눈입니다. ⓒ 김민수


요즘이야 도심에 애완용으로 기르던 고양이들을 버려서 개체 수가 늘어나 문제가 되고 있긴 하지만 예전에는 곳간을 지키는 지킴이로, 집안의 쥐들을 몰아내려는 방편으로 고양이를 키우곤 했습니다.

마루 밑에 웅크리고 숨어 있다가 쥐사냥을 하고, 사냥에 성공하면 배를 채우고 따스한 햇볕에 누워있는 나른한 고양이는 눈이 무섭고, 혀에 털이 있는데다가, 발정기가 되면 영락없이 아이 울음소리를 내고, 개처럼 충직한 것이 아니라 자기와 주인이 동격인 줄 아는 고양이의 습성 때문에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릴 적에는 동물들을 좋아해서 고양이도 좋아했는데. 어느 날 고양이가 볼을 핧아주는데 혀에 까칠한 털 때문에 얼마나 놀랐는지 그 뒤론 고양이를 보면 그 까칠한 느낌이 전해지는 것 같아 소름이 돋곤 했지요. 아마도 그 이후부터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애기괭이눈작아도 옹기종기 모여서 소꿉놀이하듯 피어납니다. ⓒ 김민수


요즘 도심에서 사는 고양이들은 쓰레기를 뒤져 먹고 살아간답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은 도심 하수구나 음습한 곳에는 쥐들도 많다고 합니다. 여전히 사람들이 잠든 어둔 밤에서 고양이와 쥐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쓰레기봉투를 뒤지는데 이력이 난 고양이는 쥐를 잡는 법조차도 잊어버렸는지도 모르죠.

쥐, 그놈들은 애써 농사지어 곳간에 쌓아놓은 곡식을 야금야금 먹습니다.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도둑질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쥐라고 부르기보다는 쥐새끼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네 사회에 쥐새끼 같은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남의 수고를 훔쳐가고,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고, 빼앗긴 놈이 바보라고 비웃습니다. 쥐새끼처럼 남의 수고를 훔친 것들이 큰소리치고, 벌건 대낮에 활보를 하는 것을 보면 망조가 난 모양입니다. 그런 쥐새끼를 잡을 수 있는 고양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 혹시 쓰레기 뒤지는 맛에 길들여져 쥐새끼들에게는 아예 관심도 없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많은 쥐새끼가 판을 칩니다.

흰털괭이눈줄기에 흰털이 많은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대로 담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 김민수


쥐는 어두운 곳, 습한 곳을 좋아하고 밤에 주로 활동을 합니다. 약사 빠른 놈인데다가 막다른 길에 몰리면 고양이도 무는 놈이니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닙니다. 곳간을 축내기 때문에만 미운 것이 아니라 많은 병균을 옮기는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정말 많이 닮았습니다. 이제는 정직하게 일하고, 차곡차곡 돈을 모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습니다. 부동산 투기, 주가조작, 세금탈루 등 다양한 방법들을 구사하지 못하면 돈을 모아 부자가 된다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습니다. 이것도 어설프게 하면 안 되고 하려면 제대로 크게 해야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이런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제대로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이구나 착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쥐새끼들 잡을 수 있는 고양이는 어디 없는지, 이빨 빠지고 발톱 빠진 고양이만 득실거리니 쥐새끼들 세상이 된 것은 아닌지 화가 납니다. 괭이눈 반짝하면, 쥐새끼들이 벌벌 떨어야 하는데 이젠 콧방귀도 안 뀌니 세상 참 망조입니다.

괭이눈의 씨앗한방울의 빗방울만 튀면 잽싸게 튀어나갈 준비를 마친 괭이눈의 씨앗들입니다. ⓒ 김민수


괭이눈을 보면서 고양이 생각을 하고, 고양이 생각을 하니 쥐가 생각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연상작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 쥐새끼들이 없었더라면 고양이와 쥐에 대한 이야기들로 풍성한 괭이눈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 터인데…. 쥐새끼들이 다방면으로 사람을 망가뜨립니다.

괭이눈은 언제 보아도 예쁘지만 가장 신비스러울 때는 작은 종지 같은 곳에 씨앗을 담아놓은 모양새입니다. 비가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빗방울이 하나 '툭!' 떨어지면서 물방울이 튀기면 '으라차차!'하며 물방울의 힘을 이용해서 튀어나갑니다. 그 순간부터 또 하나의 생명으로 존재하는 것이죠.

쥐새끼들을 사냥할 수 있는 고양이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쥐새끼들이 눈만 마주쳐도 벌벌 떨 수 있는 그런 고양이, 막다른 골목에서 덤벼드는 쥐새끼들의 공격을 부드럽게 제압할 수 있는 고양이, 그런 고양이 어디 없나요?

그래도 세상사에 시달리며 상처받고, 강퍅해질 때 풀섶 여기저기에서 계절 따라 피어난 들꽃들을 보면 그건 마음이 다스려집니다. 물론 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나 나름대로 삶을 돌아보면 쥐새끼들이 퍼뜨리는 전염병 같은 것에 감염될 일은 없습니다. 자꾸만 풀꽃 들꽃에 눈과 마음이 가는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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