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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역사팩션 51] 중국 오악의 다섯 젊은이

김갑수 대하소설 <제국과 인간> 상해의 영혼들 편

등록|2008.04.25 19:16 수정|2008.04.25 19:16

▲ 상해시의 황포강 ⓒ 김갑수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던 두 사람은 힘차게 얼싸안았다.
사나운 바람과 함께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뱃고동이 길게 울렸다.

민필호는 상해에 오자마자 신규식에게 새 보직을 제의 받았다. 동제사 이사장 비서 겸 신한청년당 정책실장이었다. 그는 정책실장 자리는 고사했다. 그러자 신규식이 말했다.

"민제호 동지가 건강이 안 좋아 상해로 복귀하는데 함께 지내며 배우면서 자문을 구하면 된다."

민필호는 민제호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가 주거나 사 읽으라는 책을 모두 읽었다. 그 해 2월 그는 체신학교를 마치고 중국 교통부의 정식 공무원이 되었다.

"내 처와 딸이 내일 상해 역에 도착하는데, 필호 자네가 백주원과 함께 마중을 나가다오."

신규식의 처 조정완과 딸 신명호는 압록강 철교를 건너고 있었다. 이제 조정완은 40이 넘은 중년이었고 신명호는 20세의 처녀로 성장해 있었다. 그들은 각각 10년 만에 만나는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었다. 조정완의 수중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남은 재산을 다 털어서 만든 돈이었다. 그녀는 상해에 뼈를 묻을 각오로 경의선 열차에 오른 것이었다.

반면 신명호에게 그런 비장함은 없었다. 아버지가 있는 곳이고 어머니가 가는 곳이니까 당연히 묻혀가는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다만 그녀는 어려서 아버지에게 들은 "독립운동가의 내자가 되어라"라는 말을 생각하며 상해에 가면 결혼해 살게 되리라는 막연한 예감을 지니고 있었다. 상해야말로 독립 운동가가 득실거리는 곳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두 달 후에 그녀는 민필호와 결혼식을 올렸다. 민필호는 약혼식을 먼저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정완의 제의를 거절했다. 신규식과 신명호는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약혼은 이미 했습니다."

조정완은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너희들끼리 이미 했다는 건가?"
"아닙니다. 저만 했습니다."

조정완과 신규식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는 서울에서 최도애라는 여자와 약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최도애가 누군가?"
"옆방에 있는 김태수 형의 부인입니다."

민필호가 신명호에게 처음 한 말은 그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약혼 사실을 신명호에게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형 민제호가 그 말부터 해야 한다고 충고까지 했던 것이었다.

신명호는 솔직하고 순결한 여자였다. 게다가 그녀는 어떤 여자보다도 정갈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아주 여성다운 섬세함이 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를 닮아 대범한 면이 있었다.

"그 나이 되도록 여자 한 번 못 사귀는 남자일 것 같은 점이 유일하게 맘에 안 드는 면이었는데 제가 잘 못 봤었군요."

뜻밖에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민필호는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약혼했던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궁금하면 김태수 선생님에게 물어 보시오. 사실 나는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잘 몰랐어요."

그들은 민필호의 직장이 있는 청도에 집을 얻고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민필호는 틈나는 대로 신명호에게 영어와 중국어를 가르쳤다.

민제호의 건강이 회복되었다. 백주원과 김태수는 민제호와 함께 항주의 고려상사로 복귀했다. 백주원은 민제호를 위해 뭐라도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김태수에게 제의했다. 그녀는 말을 빌려 셋이서 어디 바닷가 같은 곳에 짧은 일정으로라도 놀러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김태수는 민필호 부부도 부르자고 했다. 결혼을 축하해 주자는 것이었다. 백주원은 신명호가 말을 탈 줄 아는지 궁금했다. 그러자 김태수가 말했다.

"상해에 오기 전 어머니가 준비를 시켰다고 하더군요. 아마 제일 서툰 것은 민필호일 겁니다."

그러던 차에 신규식으로부터 광동에 가서 당계요를 만나라는 지시가 왔다. 요양을 끝낸 당계요가 광동정부 각료로 복귀했다는 것이었다. 총독 복귀를 축하해 주고 내년 광동성에 신규식이 예방할 수 있도록 정지 작업을 해 놓으라는 것이었다.

김태수는 민제호에게 말했다.

"외람되지만 제가 민필호 부부를 초빙하고 싶습니다."
"김 선생의 우정을 기꺼이 받겠습니다."

민제호는 상해에 연락하여 민필호 부부를 오게 해 달라고 했다. 민필호는 연락을 받은 즉시 승마 연습에 돌입했다.

보통 상해 이남의 바다를 황해라고는 하지 않았다. 황해는 상해 이북의 바다를 가리켰고 상해와 항주 이남의 바다는 동중국해라고 불렀다. 마침내 다섯 명의 조선 젊은이들이 말을 타고 동중국 해안선을 질주하는 일이 성사되었다.

그들은 절강성(저장성) 해안을 따라 동남쪽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끝없어 보이는 목화밭 길을 달렸다. 그들의 왼쪽 바다로는 4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저우산 군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절강성의 섬을 다 합치면 1,800개에 이른다고 했다. 얼마 지나자 사탕수수밭이 펼쳐졌다. 그리고 평원과 구릉이 번갈아서 나타났다. 그러기를 두 시간 남짓 그들은 첸탄강 하류의 평야 지대로 들어섰다.

그들이 광동에서 당계요를 만나 임무를 마치고 호남성 남악으로 가서 불사에 여장을 푼 것은 사흘 후였다. 그들은 중국 승려가 날라다 준 용정차를 맛보며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모처럼 그들에게는 조국도 없었고 제국도 없었다. 식민지나 독립운동이나 민족자결 같은 것들도 끼어들지 않았다. 그들은 보통 젊은이라면 으레 나눌 수 있는 낭만적인 이야기들만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날밤 그들의 암묵적인 합의 사항이었다.

남악은 신령한 산이라고 했다. 조선 소설의 영웅 유충렬은 그의 부모가 이 산에 와서 재를 올려 얻은 아들이라고 했다. 형산이라고도 불리는 이 산은 예로부터 은사(隱士)들의 도량이 많았다. 적성산과 석성산과 왕애산, 주변에 세 산을 거느리며 8엽의 연꽃잎 형상으로 솟아있는 이 산의 최고봉은 연화봉이라고도 불렸다.

예로부터 중국에는 5악이 있었다. 북악 서악 동악 중악 그리고 남악이었다. 20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하는 북악은 다른 이름으로 항산(恒山)이라고도 불렸다. 오악 중에서 가장 높은 북악에는 도교의 성지가 많다고 했다. 서악은 꽃봉오리처럼 생겼다 해서 화산이라고도 불렀다. 이름과 달리 화산의 산길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가파르다고 했다.

동악은 그 유명한 태산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공자묘가 있는 태산은 예로부터 가장 신성시되던 산이어서 곳곳마다 돌비석과 종묘가 있다고 했다. 중악은 숭산이라고도 했는데 그 유명한 낙양성이 인근에 있다고 했다. 역시 유명한 소림사도 이 산에 있었다. 72개의 봉우리에 72개의 사찰이 있는 산이라고 했다.

조선의 이야기꾼 김만중은 지금 조선의 다섯 젊은이가 머물고 있는 이곳 남악에서 <구운몽> 보따리를 풀었다. 특히 <구운몽>은 김태수가 즐겁게 읽었던 소설이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육관대사가 성진에게 준 가르침을 김태수는 좋아했다. 그것은 '꿈과 현실이 다르다는 생각을 버려라'라는 것이었다.
덧붙이는 글 제국주의에 도전한 매혹적인 인간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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