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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농사? 농사가 무슨 레저스포츠인가"

'땅 부자 내각'에게 농부의 아들이 보내는 편지

등록|2008.04.26 14:45 수정|2008.04.26 14:45

'땅 부자 내각' 여러분! 직접 농사 지었다고요? 어린모를 키우는 시골 우리 집 못자리입니다. 정말로 허리 아픈 고단한 일입니다. '땅 부자 내각'이 땅 투기가 아니라 땅을 사랑해, 농사짓기 위해 농지를 구입했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해 봤나요? ⓒ 장희용


저는 농부의 아들입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아픈 아버지 대신 농사일을 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주말이 되면 부모님 일손을 도우러 시골에 갑니다.

지금 '땅 부자 내각'에 있는 사람들의 땅 투기 의혹 때문에 몹시 시끄러운데, 의혹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의혹 당사자들의 해명에 관해 솔직히 화가 많이 납니다. 그래서 농부의 아들로서 ‘땅 부자 내각’에 있는 분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땅을 사랑하는 땅 부자 내각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께서는 땅을 너무도 사랑해서, 이곳저곳에 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참 땅을 많이도 사 두셨더군요. 그런데, 이게 '투기'라는 단어가 붙으면서 입장이 곤란해지자 "가끔씩 주말에 내려가 직접 농사지었다"는 말까지 하면서 해명 아닌 해명을 하고 있는데요.

'가끔씩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그 말은, '그러니 투기가 아니다'라는 건데. 여러분들의 그 말을 듣고 솔직히 지금 마음에 있는 감정 그대로 말하라고 한다면, '당신들이 농사가 뭔지 알아?' 라고 따져 묻고 싶습니다.

"농사가 뭔지 아세요? 농사일 해 보고나 그런 말 하는 건가요? 정말로 여러분들이 직접 농사를 지었다면 지금처럼 '주말에 가끔씩 내려가 농사 지었다'는 말, 차마 하지 못 할겁니다."

농사일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아십니까?가끔씩 내려가서 일했다고요? 농사일이 무슨 주말 레저스포츠인 줄 아십니까! 농사일의 그 고단함을 알기나 하십니까? ⓒ 장희용


아무리 기계가 많은 일들을 해 준다고 해도, 결국 모든 크고 작은 일에 있어서 반드시 농부의 손길이 필요한 게 농사일입니다. 오죽하면 '곡식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생겼겠습니까? 그만큼 농사일은 그 어떤 일 보다도 부지런하고, 또한 그 만큼 할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말에 가끔씩 내려가 농사지었다고요? 아마 이 소리를 들은 농부들은 그 어이없음에 아마 할 말 조차 잃었을 겁니다. 주말에 가끔씩 내려가서 직접 농사를 지었다니요. 농사가 가끔씩 주말에 내려와서 일해도 될 정도로 여유롭고 한가한 일인 줄 아십니까?

지금 농촌에서는 연로하신 기력 없는 부모님들이 그 육신의 고단함을 이겨내면서 모내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바쁠 때는 옷에 흙 묻은 채, 방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마루 한 구석에 김치 한 조각 놓고 물 말아 씹는 듯 마는 듯 밥을 먹고는 다시 논과 밭으로 향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주말에는 도시에 간 자식들이 부모님 일손 도우러 시골로 총 집합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농사일은 손도 많이 가고, 쉴새 없이 일해야 하는 노동 중에 하나입니다. 고추도 심어야 하고, 농약도 주어야 하고, 고추도 따야 하고, 감자도 심고, 배추도 심고, 고추 따고 추수하고.

솔직히 겨울 농한기 빼고는 늘 논과 밭으로 바쁜 걸음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농사일입니다. 너무도 바쁘고 손도 많이 가는 것이 농사일입니다. 밭 일 해보셨나요? 해도 해도 끝이 보지이도 않고, 얼마나 힘든 일일 줄 아십니까?

주말에 가끔씩 내려가 농사지었다니요? 농사일이 무슨 레저스포츠인 줄 아십니까, 주말에 가끔씩 내려가 일하게? 농사가 무슨 체험놀이냐고요? 조그만 땅 분양 받아서 주말마다 내려가서 돌보는 그런 주말체험 농장이냐고요?

'땅 부자 내각' 부끄러운 줄 아세요!땅 투기로 여러분들이 '땅 부자 내각'이 되는 동안 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이 땅의 농민들은 큰 시름속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부끄러운 줄 아세요! ⓒ 장희용


농사일은 그렇게 주말에 가끔씩 내려가 여유롭게 즐기면서 하는 체험놀이가 아닙니다.

저도 30년 넘게 아버지 일 도우면서 농사일 하지만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당신들의 해명, 아니 거짓말에 정말이지 화가 납니다.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거짓말도 유분수지.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한 나라의 장관이고 청와대 수석을 하는지, 참 대한민국 앞날이 걱정이다 걱정!'

저 뿐만 아니라 국민들 중에 많은 분들이 이런 분노와 걱정, 허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국민을 속이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처구니없는 '땅 부자 내각'의 거짓말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또한 지금 이 순간, 당신들과 같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에 서글퍼집니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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