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절벽 위에 불상을 올려놓았지?"
[전국 100대 명산을 찾아서 30] 창녕 화왕산
▲ 화왕산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 이승철
"이 산이 진달래 명산이라기에 꽃 화(花)자 화왕산인 줄 알았더니 불 화(火)자 화왕산(火旺山)이네."
"정말 그렇구먼, 나도 이 산에 꽃이 아주 많아서 꽃의 여왕으로 불리는 화왕산쯤 되는 줄 알았는데…. 산꼭대기 평원의 억새명산인 걸."
화왕산 정상에 오른 일행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었다. 지난 22일 오른 경남 창녕 화왕산 등반은 창녕읍내에 있는 창녕여중 근처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일행들의 꽃에 대한 기대는 마침 주차장 옆 축대 바위 사이에 곱고 예쁘게 피어난 수많은 연산홍들을 바라보며 시작되었다.
어느 산악회를 따라 나선 화왕산 등산 길
"잠깐 쉬어 갑시다. 이거 날씨가 갑자기 더워져서 그런지 힘들어 못 올라가겠구먼."
"그래요, 아저씨, 쉬어가자고요. 설마 우리들만 떼어놓고 가기야 하겠어요?"
우리 일행들 뒤를 따르던 40대 여성들 몇이 뒤따라 주저앉았다. 선두를 담당한 산행 리더와 함께 몇 사람은 산 위쪽으로 바람처럼 사라진 후였다. 이번 산행은 평소 함께 다니던 우리 친구들만의 산행이 아니었다. 난생 처음으로 서울의 한 산악회를 따라 나선 등산길이었다. 서울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출발한 사람들은 40여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우리 일행들보다 젊고 팔팔한 등산 베테랑들처럼 보여 은근히 걱정하던 터였다.
▲ 화왕산 자락의 진달래꽃 ⓒ 이승철
▲ 억새평원 중심부와 유적지 ⓒ 이승철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한 산악회원들은 주최 측에서 나누어준 김밥 한 줄을 차 안에서 간단한 아침으로 먹었다. 도중 휴게소에 들렀을 때 간식으로 호떡 몇 개를 사 나누어 먹었기 때문에 배는 든든한 편이었다. 그래도 과일 한 쪽씩을 나누어 먹고 다시 천천히 산길을 올랐다.
꽁무니를 담당한 40대로 보이는 남성리더는 그저 빙긋이 웃으며 여유로운 모습이다. 그렇게 쩔쩔매는 일행들과 함께 산 중턱에 올랐을 때 우리들은 맨 후미그룹으로 뒤처져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산악회 주최 측에서 배치한 후미그룹 리더가 맨 앞과 중간의 리더들과 교신을 하며 재촉하지 않는 것이었다.
정상의 중간지점에 오를 때까지 맨 후미그룹으로 뒤처져 겨우 따르던 일행들이 8부 능선을 오르면서 힘을 내기 시작했다. 환장고개를 지날 무렵에는 10여명을 앞질러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산 위에 오르자 일행들의 입이 놀랍게 벌어졌다.
신비롭게 펼쳐진 역사유적과 억새평원
펼쳐진 풍경이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산 위에는 기다란 삼각형 모서리에 해당하는 봉우리 사이에 굉장히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중심부는 오목하게 들어간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했는데, 그 넓은 평원을 억새밭이 뒤덮고 있었다.
오목하게 들어간 평원의 중심 부분은 오랜 옛날 화산이 폭발한 곳이었다. 그래서 이 화왕산을 '불뫼'라 부르기도 하였고 또 '큰불뫼'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화산이 폭발하여 형성된 산이어서 분화구였던 곳에는 3개의 연못 흔적이 남아 있었고, 또 근처에는 창녕조씨 시조가 탄생했다는 득성비가 세워져 있었다.
▲ 화왕산성 동문지 ⓒ 이승철
▲ 화왕산성 성벽 ⓒ 이승철
분화구를 중심으로 펼쳐진 오르막형 평원에는 둘레가 십리에 이른다는 5만여 평의 억새군락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경계면을 따라 가야시대 때 축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왕산성이 있는데 동문 쪽 성벽은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편이었다.
기암절벽을 이용하여 쌓은 화왕산성은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한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의 활동무대였다고 전한다. 옛 성내였던 평원은 잡목이 거의 없이 억새만 자라고 있어서 가을철에는 억새제가 열리고, 3년마다 윤년 초봄에는 억새 태우기 행사가 벌어진다고 한다.
해발 756미터의 정상에 올라서자 눈 아래 펼쳐지는 조망도 일품이다. 창녕읍은 물론 멀리 영남알프스를 이루는 산줄기들과 낙동강 줄기의 평야까지 내려다 보였다. 성 밖의 산자락에 피어 있는 진달래도 장관이었다.
능선을 타고 내리는 길가에는 힘을 잃은 억새 사이로 피어난 작고 노란 꽃들이 앙증맞고 예쁘다. 화왕산성의 동문을 빠져 나오자 넓은 길이 나타난다. 관룡산으로 이어진 길가에는 드라마 <허준>을 촬영하느라 지어놓은 초가와 너와집 등 오두막 몇 채가 전설 속의 이야기처럼 남아 있었다.
산자락을 아름답게 물들인 진달래와 <허준> 촬영 세트
그러나 그런 인위적인 풍경보다는 길 건너 앞산 자락을 수놓은 진달래꽃 군락이 장관이다. 화왕산이 억새와 함께 진달래꽃 명소로 이름을 떨치는 것도 이 산자락에 펼쳐놓은 진달래꽃 때문이었다.
▲ 드라마 허준 촬영장 너머로 보이는 진달래꽃군락지 ⓒ 이승철
▲ 관룡산 능선길의 소나무 ⓒ 이승철
사람들은 그래도 조선시대의 명의로 소문나 지금도 동의보감으로 유명한 허준을 기억하며 드라마 촬영세트에서 사진을 찍는다. 한쪽 산자락을 곱게 물들인 진달래군락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진달래꽃밭 앞에 있는 샘터에서 시원한 물 한 바가지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산악회 멤버들의 선두는 어디쯤 가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관룡산으로 오르는 길가에는 여기저기 피어 있는 진달래꽃들이 하나 둘 지고 있었다.
대신 길가에는 화왕산 억새풀 사이에 피어났던 작고 노란 제비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는데, 여간 귀엽고 예쁜 모습이 아니었다. 해발 754미터인 관룡산 정상은 너무나 평범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정상에서 불쑥불쑥 왼편으로 뻗어 내린 비위봉우리들이 장관이다.
정상에서 관룡사로 가는 길은 내리막길의 연속이었다. 내리막 능선길에서 바라보이는 오른편 화왕산 정상의 아주 독특한 풍경과 왼편 바위봉우리들이 매우 대조적인 풍경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려다보이는 관룡사와 그 앞 골짜기의 풍경도 아름답다.
바위 절벽 위의 절경,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아니 여길 그냥 지나치려고요. 이리 올라와서 저길 보세요?"
내리막 능선길은 바위가 많아 만만치 않은 길이었다. 조심조심 앞만 바라보며 내려가고 있을 때 여성등산객 두 사람이 우리들을 부른다. 길 옆에 서 있는 상당히 커다란 바위 위였다.
"그 위에 뭐가 있습니까?"
"이 바위가 아니라 저 앞을 보세요?"
바위에 올라서자 조금 아래 아슬아슬한 바위 절벽 위에 누군가 앉아 있는 모습이 바라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돌을 깎아 만든 불상이었다. 바로 보물 295호인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이었다.
▲ 관룡사 종루의 웃는 사자상 등에 얹힌 북 ⓒ 이승철
▲ 관룡사 ⓒ 이승철
"히야!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저 절벽 위에 저런 불상을 만들어 올려놓았지?"
"정말 그러네. 저 골짜기를 배경으로 절벽 위의 불상이 기막힌 절경이로구먼."
일행들이 감탄을 하고 있을 때 독실한 불교신자인 일행 한 사람은 어느새 그 불상을 향해 합장을 하고 있었다.
석조석가여래좌상이 있는 왼편 골짜기에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관룡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사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로서 신라시대 8대사찰 중의 하나로 꼽힌다. 서기394년(내물왕 39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천년고찰이었다.
경내에는 보물 212호인 대웅전과 146호인 약사전을 비롯하여 지방유형문화재 11호인 3층 석탑 등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고 있었다. 절집 뒤로는 울창한 수림과 함께 관룡산 바위봉우리들이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마치 병풍을 둘러 세워 놓은 모습이다.
지역경제에 작은 도움도 주지 않는 너무 알뜰한 여행
관룡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골짜기는 너무 말끔하게 정리를 해놓고 축대를 쌓아 놓은 모습이 오히려 자연미를 해치고 있었다. 옥천리 주차장에 내려오니 먼저 내려온 회원들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니 점심은 어느 식당에서 먹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잖아?"
버스에 다가가보니 산악회장과 버스운전기사가 배식을 하고 있었다. 밥은 서울에서 준비하여 스티로폼에 담아 온 것을 일회용 그릇에 김치 등 반찬과 함께 퍼주고 있었다. 돼지고기와 김치를 넣고 끓인 찌개도 서울에서 준비하여 가지고 간 것을 다시 끓여주고 있었다.
▲ 주차장에서 바라본 관룡산 ⓒ 이승철
"이곳 음식점에서 점심도 사먹지 않으면 이게 어떻게 되는 거야? 이곳 지역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쓰레기만 버리고 가는 셈이잖아?"
"이건 아무래도 너무 하는 것 같다. 지방에서 관광지 개발을 하는 것은 관광객을 끌어들여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인데, 이번 우리 일행들의 여행은 이 지역 경제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거잖아?"
주최 측이 서울에서 준비해간 점심을 먹으면서 일행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은 기색이다. 난생 처음 어느 산악회를 따라간 지방의 명산 등산은 그렇다고 참가회비가 일반 여행사에 비해 결코 월등하게 저렴한 것도 아니었다. 주최 측에서는 나름으로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만 산행지역 근처에서 점심 한 그릇도 사먹지 않고 돌아오는 마음은 왠지 개운치가 않았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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