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솔이 선산 지키듯 고향 지켰는데..."
[슬라이드] 골프장 반대 투쟁 3년째, 봉림리 봄 풍경
마을에는 700년이 훌쩍 넘은 정자나무가 있고, 대부분이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고 늙어가는 주민들은 이웃이라기 보다 가족과 같다.
전체 80가구 가운데 25가구가 사과 농사를 짓는다더니 마을 곳곳에 자리한 활짝 핀 사과꽃이 방문객을 맞는다. 복숭아꽃, 살구꽃도 만개해 말 그대로 ‘고향의 봄’을 알린다. 마을사람들과 역사를 함께 한 742살 느티나무 새잎의 연초록 빛도 눈부시다. 어귀마다 붙어있는 ‘골프장 반대’ 펼침막이 전해주는 스산함만 빼면.
느티나무 맞은편 하우스 안이 소요해 들어서니 새마을지도자 이병원(53)씨 형제가 못자리 준비에 한창이다. 이씨의 동생 보원(51)씨와 가족들, 이웃에 사는 김기홍(53), 기형(51)씨 형제가 가세한 품앗이 작업이다. 이 두 집 형제들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어릴 적부터 형끼리, 동생끼리 친구로 지내면서 오십줄을 넘기도록 함께 살고 있다.
“못생긴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고 나가지도 못하고 열심히 살았유. 그런디 골프장 생각하면 종자 넣을 맛도 안나유.”
이제껏도 골프장 걱정을 하던 참인지, 이보원씨가 기자를 보자마자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다. 형 병원씨도 거든다.
“농촌에 산다고 하루 하루 그냥 사는 사람 아니유. 20년, 30년 후 모습 생각하며, 희망을 가지고 나무도 심고 인생을 가꾸는 사람들이유. 증말 농사 준비하면서도 마음은 죄다 골프장 걱정 뿐이구, 밤에 잠도 안와유.”
검게 그을린 얼굴에 사람 좋은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던 김기홍씨도 격앙된 목소리로 나섰다.
“골프장 짓겠다는 기업이 군에다가는 ‘주민들과 협의 중’이라고 한다는디, 우린 단 한 번도 협의를 한 적이 없슈. 기회가 있다면 우리 사정을 호소라도 할텐데 답답해유.”
그리고 누구랄 것도 없이 이야기가 쏟아진다.
“우리 마을에 귀농한 사람도 있는데, 골프장 들어오면 돌아 가겠다고 합디다. 군에서도 맨날 인구 줄어든다고 걱정만 하지 말고 이렇게 들어와 사는 사람들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기업은 골프장 지어서 돈을 벌려는 것이지만 주민들은 생존권이 달린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에 이만한 청정지역이 없을거유. 저수지 위에 밭 하나 없구 얼마나 깨끗한지, 1급수유. 그 물루다가 농사도 짓고 먹기도 하구 그러는디, 그 위에다 골프장을 짓겠다는 건 주민들더러 그만 살라는 얘기지유.”
대부분이 복합농이어서 축산도 겸하고 있어 소값 폭락도 큰 걱정이지만, 수년째 해결나지 않는 마을 골프장 문제가 주민들의 마음을 더욱 짓누르고 있다는 호소다.
주민들이 침이 마르게 자랑하던 저수지 바로 아래에서는 자갈밭을 고르고 있는 이인석(67)씨를 만났다. 7대째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이씨는 “누가 흙을 준다고 해서 비탈밭을 메웠더니 돌투성이다”라면서 400평이나 되는 넓은 땅을 쇠스랑으로 파헤쳐 일일이 돌을 고르고 작물 심을 준비를 한다. 이런 저런 질문에 심드렁히 대답하던 이씨가 신문사에서 나왔다고 하자 반색을 한다.
“우리 마을이 농촌장수마을이여. 그 덕분에 어제 노인회에서 청와대랑 청계천이랑 다녀왔는디, 거기 동아일보사가 있는 겨. 그래 거기 들어가 우리동네 골프장 얘기좀 호소할려고 몇 번을 망설이다 왔어. 어떻게 해야는 줄 몰러서.”
언제 세운 깃발인지 집집마다 나부끼는 ‘골프장 반대’글씨는 바래고 찢어져서 알아 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대대로 이 땅을 지키고 살아온 주민들의 마음이 이럴까. 마을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 군청 앞에서는 38일째 이 마을 주민의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3월 한달만 하겠다던 1인 시위는 이수원 봉림골프장반대대책위원장의 만류에도 어르신들이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 하루품이 금같은 바쁜 농번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비가 와도, 초여름 같은 햇살이 내리쬐도.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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