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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나러 떠나는 길, 몸도 마음도 가볍게

[헌책방 나들이 156] 서울 용산 <뿌리서점>

등록|2008.04.29 18:03 수정|2008.04.29 19:30

책방 앞헌책방 <뿌리서점> 앞. 책방 앞은 샛장수 아저씨와 손님 들로 늘 북적입니다. ⓒ 최종규


(1) 책 만나러 가는 길

책이 고파서 책을 만나러 길을 나섭니다. 한 번 읽은 책을 두 번 읽어도 되고, 세 번 네 번 읽어도 되옵니다만,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다른 책들이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책 만나러 길을 나섭니다. 이제까지 읽은 책으로도 마음밥 살찌우기는 넉넉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고이는 물이 되고 싶지 않아서, 늘 부지런히 움직이는 물이 되고 싶어서 책 만나는 길을 나섭니다.

동네에서 책을 넉넉히 만나는 일도 좋습니다. 동네 가까운 데에 책방이 없거나 모자라다면, 조금 멀리 나들이를 가도 좋습니다. 한 번 나선 나들이에서 책 스무 권이나 서른 권을 장만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애써 나선 나들이에서 책 한 권 건지지 못하고 돌아와도 나쁘지 않습니다. 가방에 두어 권쯤 챙겨서, 가는 길에 한 권 오는 길에 또 한 권 읽어도 괜찮습니다. 책방에서 내도록 서서 읽다가 돌아와도 괜찮습니다.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며 앞날을 살아갈 내 마음자리가 부드러우면서 튼튼할 수 있도록 다스려 줄 이야기를 한 올 한 올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됩니다.

전철을 탑니다. 처음 떠나는 동인천역에서 타니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쉴새없이 타고내리는 숱한 사람들 북적거림과 도란거림을 한 귀로 흘리면서 책에 눈을 박습니다. 용산역까지는 땅위를 달리는 전철입니다. 땅위로 달리니 뒷통수로 햇볕이 내리쬡니다. 따뜻한 햇볕입니다. 고마운 햇볕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햇볕을 쬐면서 전철을 땅 위에서 달리는 만큼, 이 전철길이 지나가는 동네는 둘로 쪼개어집니다. 이편과 저편은 만나기 어려운 사이가 됩니다.

잠깐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봅니다. 전철을 처음 타 본 때는 퍽 오래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에 사는 작은아버지 댁을 찾아갈 때 부모님한테 안기면서 탔을 테니, 1970년대 끄트머리부터 탔을 테지요. 머리에 철이 들 무렵을 떠올리면 1982년인데, 두꺼운 종이를 잘라서 만든 종이표에 동그란 구멍을 내고 전철을 탔습니다. 그때 보던 철길 둘레 살림집이 아직도 그대로인 곳이 있으나, 재개발로 쓸려나가며 뒤바뀐 곳도 제법 많습니다. 그때 논밭이었던 곳은 이제는 어디에도 없이 아파트와 쇼핑센터가 되었습니다. 논밭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또 지붕 낮은 집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철길 옆 집보다 더 값싸게 들어갈 만한 집은 어디에 있을까요.

일본책어느 헌책방을 가 보아도, 일본책이 많이 꽂혀 있습니다. 일본사람이 내놓은 책도 있을 터이나, 한국에서 일본책을 찾아서 읽는 분도 많습니다. ⓒ 최종규


(2) 짝을 맞추는 책

어느새 용산역에 닿습니다. 서울로 책 나들이를 올 때면 가장 느긋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곳, 용산. 전자상가하고는 아무런 인연이 없고, 이마트하고도 아무 인연이 안 닿습니다. 광장 아닌 광장으로 내려옵니다. 언제나 느끼지만, 예전 용산역이었을 때와 견주어 계단이 무척 높아졌습니다. 광장이라는 터에는 자질구레한 물건을 곳곳에 세워 놓아서 걷다 보면 자꾸 앞이 막힙니다. 이 길은 길이라기보다는 주머니를 털어서 돈을 내어놓고 지나가라는 곳은 아닐까 싶군요. 마음 가벼이 쉬라는 터가 아니라, 빨리빨리 어느 가게로든 들어가서 주머니를 털어놓으라는 곳은 아닐까 싶고요.

'용사의 집' 뒤편으로 가는 샛골목을 지납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책손질에 바쁜 <뿌리서점> 아저씨 얼굴이 보입니다. 꾸벅 인사를 합니다. 바깥에서 사진 한두 장 찍고 안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내려놓습니다. 아저씨가 뽑아 주는 차를 한 잔 들고 골마루를 둘러봅니다. 오늘은 무슨 책을 만날 수 있으려나.

수북수북 책더미 한쪽에서 <케이트 밀레트/정의숙,조정호 옮김-성의 정치학 (상)>(현대사상사,1976)이 보입니다. 하권은 안 보입니다. 그러나 반가운 책입니다. 얼마 앞서 다른 헌책방에서 <성의 정치학> 하권을 만났거든요. 그때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집었습니다. 언젠가 상권을 만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바로 오늘 만납니다. 한 해도 기다리지 않았는데 벌써 만납니다. 운이 닿는 날입니다.

쌓인 책쌓인 책에서 자기한테 보물로 다가올 책 하나가 무엇일까 헤아리면서 찾아나섭니다. ⓒ 최종규

<오스봘트 폰 넬 브로이닝/김종민 옮김-자본주의론(체제 개선을 위한 분석)>(분도출판사,1986)이라는 파란 책이 보입니다. 자본주의 틀거리는 조금 손질하면 좋은 사회경제 틀거리가 될 수 있을까? 어떨까?

<卓上版 日本全圖>(昭文社,1987)가 보여서 집어듭니다. 일본 길그림은 헌책방에서 곧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길그림에도 '독도'는 '竹島'로 적히고, 일본땅으로 금을 그어 놓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이러한 길그림을 얼마나 꼼꼼히 들여다볼는지 모릅니다만, 자기들이 벽에 탁 붙여놓고 '우리 나라(일본) 땅은 얼마나 되나?' 하고 헤아리면서 보는 길그림에 이처럼 그려져 있으면, 이 길그림을 보고 배울 일본 아이들은 '독도 = 일본땅'이라고 생각하리라 봅니다. 일본 학교에서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김기창-예수의 생애>(이스라엘문화원, ?)는 그림쟁이 김기창 님이 담아낸 예수님 삶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서 돌아가신 다음 다시 태어나서 넉넉한 말씀을 베풀어 주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주는데, 서양사람 얼굴이 아닌 한국사람 얼굴로, 또 한국사람 옷과 집으로 그립니다. 다만, 그림에 나오는 사람이 모조리 양반이라는 대목, 여느 사람들은 담기지 않은 대목이 아쉽습니다.

어쩌면, 양반 집안 사람들만 그림에 담으며 '겨레그림으로 담은 예수 삶'이라 할 수 있을 터이나, 백성 자취가 조금도 묻어나지 않도록 그렸다면, 잘못 그렸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림은 우편엽서로 쓸 수 있도록 꾸몄고, 우편엽서에 새겨진 칸을 보니 네모가 다섯 칸이라, 1980년대에 만든 엽서묶음으로 보입니다.

(3) 책이란 무엇일까나

<권윤주-to Cats>(바다출판사,2005)가 보입니다. '스노우캣'이라고 하던가. 만화쟁이 권윤주 님이 자기가 기르는 고양이 이야기를 사진과 그림과 글로 묶어서 담아낸 책입니다.

.. 하지만 고양이의 어린 시절은 금방 지나가버린다. 그럼 그 후에는? 고양이는 당신의 동반자로서 함께 사는 것이다. 그저 돌봐 줘야 하는 귀여운 동물이 아니라 당신의 친구로서 ..  (20쪽)

그렇게까지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나 글은 없지만, 고양이를 좋아하면서 곁에 두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 냄새와 느낌을 맡을 수 있습니다.

― 고양이와 놀기 tip 2 (77쪽)

시계와 책시렁고개를 세우고 올려다보아도 잘 안 보이는 높은 책시렁. 여기에 달린 시계. ⓒ 최종규

그런데, 요즘 작가라고 하는 분들은 왜 꼭 'tip' 같은 말을 쓸까요. 무슨 생각으로 '팁'이라는 말을 쓸까요. 이렇게 알파벳으로 적는 글 몇 줄, 낱말 몇 가지는 얼마나 자기 책을 돋보이게 해 줄까요. 하긴, 책이름부터 "고냥씨한테"가 아니라 "to Cats"이니까.

만화책 <윤필-졸부로소이다>(만화저널사,1990)를 집습니다. 졸부. 재벌. 부자. 떵떵거림. 돈. 권력. 여자.

<사진판 수영교실>(지경사,1983)은 헤엄치는 방법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런데 책 어디에도 누가 글을 쓰고 누가 사진을 찍었는가를 밝히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낸 책을 슬쩍 오려붙여서 엮은 책은 아니냐 싶어서 찬찬히 책장을 넘깁니다. 사진 질감이 떨어지는 대목이 보입니다. 헤엄터 둘레로 '일본 서민 집'이 드러난 사진이 한두 장 보입니다.

뭐, 어쩔 수 없는 노릇인지 모릅니다만, 이맘때(1980년대까지) 한국 출판사들은 일본책 몰래 베껴서 펴내는 짓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짓을 했던 그 어느 출판사도 자기들 지난날을 들추어내며 뉘우치지 않습니다. 부끄러워서 안 들출까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애써 이루어낸 열매를 몰래 훔쳐서 자기 배를 불리는 짓을 한 일은 어찌하나요? 친일부역도 몹쓸 짓이지만, 도둑출판도 몹쓸 짓입니다. 출판평론을 하는 분이나 출판학을 연구하는 분들은, 이런 도둑출판 역사를 낱낱이 밝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운-양치는 성자>(해뜸,1988)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소설로 보여줍니다.

.. "스님은 왜 중이 되셨어유?" 문득 역습하는 삼돌이의 말에 언기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한다. "나 같은 사람은 알아도 소용 없지만 좀 얘기해 주세유. 공자왈 맹자왈 해서 출세하면 부귀영화가 산더미처럼 쌓일 텐데, 하필이면 중이 되어 세상을 저버리다니유." "세상을 저버린 게 아니고 잠시 떠난 것이요," "그게 정말이세유? 첨 듣는 말씀인데유, 상투 자르고 흰옷을 벗구 먹울옷을 걸치는 이는 영영 세상을 잊는다는데유." "도를 이루기 위해서 온갖 번뇌를 잊고 오로지 청정여여(淸淨如如)한 자기 성품으로 돌아가는 마당에는 세상도 잊고 자기 자신마저도 잊어야지요. 허나 도업을 이루어 해탈한 뒤에는 다시 세상으로 나와서 도탄에 빠져 헤매이는 중생을 건지는 게 수도인의 사명이랍니다." "아, 네에." ..  (114∼115쪽)

<명승고적 탐승기념>(건흥사진문화사,?)은 '속리산 관광기념 사진'을 묶습니다. 앞에 무지개빛 사진을 여러 장 담는데, 빛분해가 잘못되어 보기 나쁜 한편, 뒤로 이어지는 흑백 사진은 제법 잘 나왔습니다. 60년대에 만든 것이 아니랴 싶고, 머리에 쪽을 지고 우리 옷을 입은 아주머니 한 분이 절일을 돕는 뒷모습이 한 장 담겨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 아주머니와 스님과 어린아이, 이렇게 세 사람 나온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았을 터이나, 절집을 찍다가 한쪽 구석에 배경처럼 들어갑니다. 다른 사진보다 이 사진 하나가 마음에 듭니다.

<野村誠一-本田理沙 寫眞集 : 少女がおとな>(ワニブックス,1991)는 일본 여고생 모델을 담은 사진책. 자전거에 앉아서 찍은 사진도 한 장 실립니다.

<로랑 바르브롱,백자원-생활 속에서>(봅데강,1985)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프랑스사람 로랑 바르트롱 님이 프랑스에서 스무 해 가까이 찍었던 사진으로 절반을 삼고, 백자원 님이 제주 목석원 둘레에서 찍은 사진으로 절반을 실어서 묶어낸 사진책입니다. 제주로 신혼나들이를 온 부부를 찍은 사진이 곧잘 보이는데, 젊은 아주머니가 아저씨한테 '빠다코코넛'을 한 입 물어 먹으라고 쥐어 주는 사진이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지금도 신혼 나들이를 오는 부부가 '빠다코코넛' 과자를 사먹을까요. 그나저나, 로랑 바르브롱 님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한다면, 프랑스 사진도 나쁘지 않으나 한국에서 찍은 사진을 묶어도 좋았을 텐데. 한국에서 찍은 사진은 따로 묶고, 이 사진책에는 프랑스에서 찍은 사진만 모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책끝에 실린 사진쟁이 소개에, 로랑 바르브롱 님이 <꼬레 그라피>를 펴냈고 <태권도>를 펴내려고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책더미값이 있는 책이란 무엇이며, 값이 없는 책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책을 얼마나 가까이하고 알면서 책에 값을 매기고 있을까요. ⓒ 최종규


(4) 역사란 무엇일까나

<하야시 다케히코(林建彦)/최현 옮김-남북한 현대사>(삼민사,1989)라는 책이 보입니다. 요즈음은 찾아볼 길 없는 역사책입니다. 어쩌면, 요즈음뿐 아니라 앞으로도 이와 같은 역사책을 거들떠볼 사람조차 없을는지 모릅니다. 남녘이 어떤 발자취를 남겨 왔는지를 돌아보거나, 북녘은 어떤 발걸음을 걸어왔는가를 헤아리는 손길은 자꾸만 사라질는지 모릅니다.

아직까지도 남녘은 남녘대로, 또 북녘은 북녘대로, 우리 겨레 발자취와 발걸음이 어떠했는가를 차분하게 되새기고 돌아볼 만한 기틀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남과 북 모두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사회입니다. 자유로운 학문을 가로막는 얼거리입니다. 북녘 자료를 마음껏 뒤적일 수 없는 남녘이고, 남녘 자료를 마음껏 살펴볼 수 없는 북녘입니다. 서로 반쪽짜리 헛짓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꼭 그러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런 형편에서는 남북녘 역사를 안타까이 생각하는 일본 학자 손길을 빌리는 편이 낫기도 합니다. <남북한 현대사>에서는 남녘 역사책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북녘 정치 역사 이야기가 제법 깃들어 있습니다.

.. 전쟁의 폐허를 거꾸로 김일성 체제 강화와 사회주의 혁명 촉진의 조건으로 삼아 집중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김일성 수상은 박헌영을 비롯하여 김두봉, 최창익 등 연안파의 고참 공산주의자나 허가이를 비롯한 소련 2세파 등 해방 이래의 라이벌들이 발치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수완을 발휘했다. 혁명의 라이벌들은 모두가 몇 해 못 가서 혹은 권력투쟁에서 패하고, 혹은 숙청되어 그 모습이 사라져 가는 운명을 맞아야 했다. 김일성 수상이 손에 넣은 가장 큰 전과는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라이벌 박헌영 등 남로당 세력의 숙청ㆍ추방에 성공한 것이고, 다음의 성과는 전란에 의한 농촌의 황폐와 농촌 인구의 격감을 농업진단화를 강행하는 데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서 활용하여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이 그만큼 쉬워진 점이다 ..  (68쪽)

곰곰이 돌아보면, 아이엠에프라는 경제위기를 맞이한 김대중 정권은, 자기 나름대로 ‘처음 움켜쥔 권력’을 단단히 뿌리내리려는 데에 더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금 이명박 정권은 열 해 만에 '다시 움켜진 권력'을 두 번 다시 놓치지 않으려고 우리 사회를 구석구석 까뒤집거나 파헤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뀐 정치세력은 자기 스스로 '진보'라도 되는 듯 내세우고 있습니다만, 정작 '진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예 고개도 들이밀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면서, 저희끼리 권력을 둘로 나누어서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우리들을 짓누르려는 틀거리를 굳게 마련하는지 모를 일이에요.

.. 오늘날에도 북조선에서는 통계의 조작에 따르는 이와 같은 결함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체제가 되어 있지 못한 것 같다. 후에 이야기될 야심적인 '7개년 계획'이 도중에 좌절된 것은, 경제활동에 대한 지나친 행정 개입이 그 원인의 하나였다 ..  (76쪽)

책들책 하나를 가슴에 안고도 기뻐할 줄 아는 몸짓이라면, 이 세상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보람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최종규

옆지기도 책 몇 가지를 고릅니다. 함께 들고서 <뿌리서점> 아저씨한테 건넵니다. "에, 볼 만한 책이 있으셨나?" 하면서 책값 셈을 해 주십니다. 책값을 치르고 가방에 하나하나 쟁여넣습니다. 가는 길에 읽을 책은 가방 맨 위쪽에 넣습니다.

오던 길을 더듬어,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돌아갑니다. 서울로 오던 때와는 달리 인천으로 가는 전철은 꽉 찹니다. 모두들 하루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지 싶습니다.

새벽밥 지어먹고 서울로 와서, 하늘에 뜬 별을 보며, 아니 별은 아니고 거리등불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고단한 사람들. 이 사람들 손에는 무엇이 들릴 수 있으려나. 고단한 몸에 책 하나 쥘 수 있을는지. 지친 눈에 글월 하나 들어갈 수 있을는지.

바삐 둘러보면 책 하나 눈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바쁜 이 눈에는 금세 훑어낼 책만 겨우 보일 수 있습니다. 느긋한 이 눈에는 오래도록 즐길 책이 보일 테지요.

바쁘게 살아가는 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들 은행계좌에 쏠쏠하게 달품과 일삯이 들어올 텐데, 이것 말고는 이 사람들 가슴에 무엇이 스며들 수 있을까요. 돈 하나만 벌자고 하루 서너 시간, 또는 네다섯 시간을 전철과 버스에서 시달리면서 집과 일터를 왔다갔다 하는지요. 이렇게 번 돈으로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는지요.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헌책방+책+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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