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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소 같은 야유회

독거노인들의 웃음에 취하다

등록|2008.04.30 08:41 수정|2008.04.30 08:41

기념사진할머니들과 함께 찰칵 웃음소리도 찍혔습니다. ⓒ 최종수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입니다. 우리 사회에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 슬퍼서 힘들게 살아가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자식은 있으나 자식과의 인연이 끊어진채 살아가는 독거노인 13명, 장애우 1명과 봉사자 4명, 모두 20명이 가정방문실 야유회(4월 28일)를 갔습니다.

도로 옆 화단에는 마치 불을 질러놓은 것처럼 철쭉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먼저 들른 곳은 고산수목원이었습니다. 열대 식물원을 둘러보고 정자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수녀님이 챙겨온 쑥떡과 과일주스 등의 간식을 먹는 동안, 정종 병을 들고 할머니 한 분 한 분 술을 따라 드렸습니다.

권주 봉사자에게 정종을 권하는 김봉순 할머니(94세) ⓒ 최종수

정종 한 잔 하신 94세 되신 왕할머니(김봉순)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박수를 치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는 할머니들이 일어나서 두리둥실 춤을 추며 흘러간 노래를 이어 불렀습니다. 순식간에 야외노래방이 되었습니다. 한바탕 신나게 놀고 왕할머니 손을 잡고 정자를 내려오는데, 호주머니에서 무얼 꺼내 손에 쥐어줍니다. 4겹으로 접어진 만원짜리 한 장. 거절할 수 없는, 할머니의 한없는 사랑에 콧날이 시끈해지고 말았습니다.

동행봉사자와 할머니가 모녀처럼 손을 잡고 간다. ⓒ 최종수

화단을 따라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봉사자 자매님이 할머니 손을 잡고 갑니다. 혼잣말로 "제가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모시고 몇 차례 여행을 다녔는데도 손을 잡아드릴 생각조차 못했어요. 이렇게 할머니 손잡고 가니까 감회가 새롭습니다"라는 탄식도 정답게 걸어갑니다. '자식은 효도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리지 않는다'는 때늦은 후회도 철쭉처럼 붉게 피어났습니다.

얼쑤할머니들과 함께 신나게 한판 놉니다. ⓒ 최종수

대야댐의 쪽빛 물 위로 연푸른 잎들이 산을 타고 하늘로 오르고 있었습니다. 호수 위의 산 전체가 한 송이 연푸른 꽃을 연상케 했습니다. 소양에서 두부 해물탕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한 분 한 분 소주잔을 채워드리고 건배를 합니다.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다!"는 건배에 폭소가 터져나옵니다. 

버스는 점심 후 진안 용담댐으로 달려갔습니다. 할머니들 콧구멍에 상쾌한 바람을 더 넣어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수몰민의 망향의 마음을 담은 망향정에 올랐습니다.

두 할머니가 흘러간 노래를 부르며 놀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사는 서러움을 날려 보내듯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껄껄거리며 웃습니다. 박수를 치며 함께 하는 수녀님과 봉사자들도 그 웃음소리에 전염되어 '하-하-하-' 배꼽을 잡으며 웃습니다.

폭소문옥례 할머니(좌)와 이점순 할머니(우)의 폭소, 하-하-하- ⓒ 최종수

버스 통로에서 서서 '이번 꽃구경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할머니들의 기쁨조가 되어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춤을 춥니다. 꽃과 호수, 나무와 숲,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는 '앗싸! 앗싸!' 흥겨운 노래방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들과 장애우와 함께한 행복한 하루, 혼자 사는 할머니들에 대한 안쓰러움이 가슴 가득 했기에 더 행복하고 보람 있는 하루였는지도 모릅니다. 봄마다 철쭉꽃이 피듯이 내년에도 할머니들이 건강한 얼굴로 노래하고 춤도 출 수 있기를 맑은 하늘에 연푸른 숲의 기도로 두 손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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