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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만의 천국 만드는 들러리 교육…"

이영선 학부모가 쓴 시 '누구를 위한 자율화인가?' 눈길

등록|2008.04.30 19:10 수정|2008.04.30 19:10
우리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학교 자율화인가?/ …이제 당신들만의 천국을 위해 들러리 서는 교육은 거부하겠다/ 돈 때문에 교육의 기회가 거부당하는 교육 같지 않은 교육은 거부하겠다

한 학부모가 쓴 '누구를 위한 자율화인가?'란 제목의 시가 눈길을 끌고 있다. 세련된 표현은 많지 않지만 최근 교과부가 내놓은 '4·15 학교 자율화 추진 계획'에 대한 학부모들의 생각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평가다.

▲ 참교육학부모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 29일 기자회견에서 행위극 '4월 15일, 공교육은 죽었다'를 진행하고 있다. ⓒ 윤근혁

지난 29일 오후 1시, 청와대 옆 청운동 사무소 앞. 중2, 중3생 등 두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있는 이영선(참교육학부모회 광주지부 사무국장)씨가 전국에서 모인 학부모 50여 명 앞에 섰다.

참교육학부모회(회장 윤숙자)가 연 '4·15 거짓 자율화 철회를 위한 전국 학부모 투쟁선언 기자회견' 자리에서 자신이 직접 쓴 시를 낭송하기 위해서다.

'오릔지' 영어강풍에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 다 꺾이나 애태웠더니/ 이제 우리에게 교육의 질과 다양성을 위해 학교자율화를 선물하겠다고 한다/ '학교자율화' 가슴 떨리게 좋은 말이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자율화인지 묻고 싶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시 낭송에 기자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시 낭송이 끝나자 '촌지 지침이 규제면 신호등 빨간불도 규제', '어린이신문 집단구독 강요가 자율화인가' 등의 글귀가 적힌 팻말을 든 학부모들은 일제히 손뼉을 쳤다.

이 시는 지난 26일 광주광역시에서 펼쳐진 '학교 학원화 조치 반대 촛불 문화제'에서 첫  발표되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씨는 시에서 “승자독식의 교육만을 강조하는 것이 학교 자율화인가”라고 물은 뒤, “정작 폐지시켜야 할 입시경쟁, 대학서열화, 학벌사회는 그대로 두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자율화는 당신들만의 천국을 만들어 가려고 하는 것”이라면서 “당신들만의 천국을 위해 들러리 서는 교육을 거부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씨는 시 낭송 뒤, 기자를 만나 “이명박 정부는 자율화란 좋은 말로 1% 부유층 학부모를 위한 교육정책을 합리화시키고 있다”면서 “왠지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 잘못 만나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해서 시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시 쓰기를 즐기지만 전문 작가는 아니라고 한다. 다음은 이날 발표한 시 전문이다.

누구를 위한 자율화인가?
이영선

영어만이 우리 교육의 존재의 이유인 것처럼
영어강풍을 몰아치더니 헝클어진 머리카락 손볼 틈도 없이
이명박 정부가 ‘학교자율화’를 선언했다.
‘오릔지’ 영어강풍에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 다 꺾이나 애태웠더니
이제 우리에게 교육의 질과 다양성을 위해 학교자율화를 선물하겠다고 한다.
‘학교자율화’ 가슴 떨리게 좋은 말이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자율화인지 묻고 싶다.

0교시 수업부활, 심야강제자율학습에다
그것도 모자라 우열반편성해서 상위 5%를 위한
승자독식의 교육만을 강조하는 것이 학교자율화인가?
꼴찌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주는 교육다운 교육 포기선언하고
끝내 우리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정녕 학교자율화인가?

방과후학교 활동에 영리업체 학원 강사를 허용하고
심지어 수능이후 학원출석을 학교출석으로 인정하는 것이 대체 어느 나라 교육인가?
‘공교육 만족 두 배, 사교육비 절반’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의 공약은 어디로 가고
사교육업체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춤을 춘단 말인가?
결국 학교를 학원으로 만드는 것이, 사교육시장이 학교를 끌고 가는 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학교자율화인가?

촌지와 불법찬조금 금지 지침을 폐지하고
학교를 부조리의 온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대들이 말하는 학교자율화인가?
정작 폐지시켜야할 무한 입시경쟁 교육은 우리 아이들을 절벽으로 내몰고 있는데,
정작 폐지시켜야 할 대학서열화는 천만원 등록금까지 과시하며 건재하고 있는데,
정작 폐지시켜야 할 학벌사회는
88만원세대 비정규직으로 우리 아이들 앞에서 입을 쫙 벌리고 있는데
도대체 당신들만의 천국은 어디까지 가려하는가?

이제 당신들만의 천국을 위해 들러리서는 교육은 거부하겠다.
우리 아이들의 죽음을 딛고 일어서는 당신들만의 학교자율화는 거부하겠다.
돈 때문에 교육의 기회가 거부당하는 교육 같지 않은 교육은 거부하겠다.

당신들만의 천국을 향해 우리들의 분노를 던지겠다.
분노해야 할 것에 철저하게 분노할 줄 아는 우리들의 참사랑은,
우리들의 참교육은 우리들의 희망을 만들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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