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시인의 사회> 책 표지 ⓒ 시간과공간사
2002년. 월드컵 경기와 미선이 효순이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그 때, 나는 입시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느껴보고 있었다. 중학교까지 별다른 시험이 없이 원하는 학교에 입학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등학교 때는 사정이 달랐다. 평준화 1세대로 연합고사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정원의 딱 한 명이 넘쳐서. 그런데 연합고사를 치기 얼마 전, 어느 학교에서 나와 동갑인 아이가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나는 연합고사도 치지 않고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런 내게 한 달에 한 번 치는 교육청 주관 및 사설학원 주간 모의고사와 야간 자율학습, 밤 12시가 넘도록 계속되던 학원 및 독서실 생활은 결코 즐겁지 못했다. 가끔 친구들과 자율학습을 빼먹고 영화를 보러 가거나, PC방에 가서 게임을 할 때 말고는 내 고3 생활에서 추억은 하나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때는 추억을 만들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3이었기 때문에. 담임선생님과 각 과목 담당 선생님들, 그리고 부모님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마치 그게 전부인 것처럼.
웰튼 아카데미와 학생들, 그리고 키팅 선생
1950년대 미국의 웰튼 아카데미도 다르지 않았다. 학생들은 입학하기 전에 과외를 받아 예습을 했고,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부족한 공부를 하기도 했다. 입학식 이후에는 필수적으로 놀란 교장선생님과 면담을 했고, 수업 이외의 클럽활동도 교장이 지명한 대로 해야만 했다.
이렇게 학생들이 말 그대로 '공부벌레'가 되어 가고 있을 때, 이 학교의 학부모가 된 사람들은 정말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을 자랑스러워했다. 왜냐하면 이 학교는 아이비리그에 학생 중 75% 이상을 진학시키는, 말 그대로 '좋은 대학 보내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웰튼 아카데미에 모인 학생들 역시 현재 우리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이성친구를 포함한 매사에 호기심이 가득했고,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걸 하고 싶은 것도, 그러면서도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 말겠다는 부모의 욕심과 학교의 기대치 속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서서히 잃어가는 것 역시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모교인 이 학교에 부임한 신임 영어 교사 키팅은 매일 시험을 쳐서 점수를 매기고, 딱딱한 수업방식을 고수하는 다른 교사들과 달랐다. 수업 첫 날, 그래프를 그려서 시의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글을 찢어버리라고 하질 않나, 획일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운동장에 여러 학생들을 세워 걸어보게 하질 않나, 시험을 치면서 여자들의 사진을 슬라이드로 비추질 않나.
학내의 여느 교사들과는 다른 키팅의 수업방식에 학생들은 호기심을 가진다. 그리고 이런 키팅의 인간적인 면에 학생들은 마음을 연다. 그가 학교를 떠날 때에는 반 전체가 쓸쓸히 나가는 그를 환송하며 책상 위에 서서 이렇게 외친다. 그가 듣고 싶어했고, 어느 순간 학생들도 그렇게 부르고 있던 그 말을.
'선장님, 나의 선장님!'
<죽은 시인의 사회>,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음에 빠져들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즐거워할 때는 함께 즐거워할 수 있었고, 그들이 힘들어하고 아파할 때에는 함께 아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알던 키팅의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도 저런 선생님이 있었다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헤매고 있을 때 함께 길을 찾아주었던 선생님이 있었다면.
또한 책을 읽으며 여전히 취업을 준비하는 나의 모습이 웰튼 아카데미의 학생들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본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그저 주위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이 꼭 나와 비슷하다.
그러면서 두려워지기도 한다. 책 곳곳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부모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미래에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되면, 나도 똑같이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들을 통해 대리만족하려고 하진 않을까.
시대를 넘어 지금 들리는 메시지, '오늘을 즐겨라'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가지만, 이 책은 이런 생각들 사이로 나에게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키팅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는 바로 그 한 마디. 삶의 목표와 목적을 잃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던져주는 한 마디.
'오늘을 즐겨라(Carpe diem)'
지나간 것들이나 다가올 것들에만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기대치에 얽매여 사는 것이 아니라, 진정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즐기며 가치 있게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내가 살아야 할 삶이리라. 그리고 저자인 톰 슐만이 키팅의 입을 통하여서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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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시인의 사회> 톰 슐만 지음 / N.H.클라인바움 각색 / 김라경 옮김. 시간과 공간사. 8,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