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혹시 여기 적힌 창녀분?"... "내가 그렇게 보이냐?"

김홍석 교수 <밖으로 들어가기> 전시 논란... "인권 감수성 빵점" 비판도

등록|2008.05.02 15:43 수정|2008.05.19 14:31

▲ 김홍석 교수가 전시장에 설치한 안내문. '창녀'를 찾아보라고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 김홍주선


"지금 이곳에는 의도적으로 창녀가 초대되었습니다. 그녀는 오늘 있는 미술 전시 개막행사에 3시간 참석하는 조건으로 한화 60만원을 작가로부터 지급받습니다. 이 순간 여러분 사이를 유유히 걸어 다니며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이 창녀가 누구인지 찾아낸 분은 작가로부터 그녀를 찾은 대가로 120만원을 지급받게 됩니다. 창녀를 찾아봅시다."

4월 18일 '창녀 찾으면 120만원 드립니다'는 제목의 신문 기사가 파문을 낳았다. <조선일보> <문화일보> <경향신문>이 보도한 이 사건은 사실 한 미술전시회의 개막 퍼포먼스였다.

김홍석 상명대 공연학부 교수가 기획하고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 갤러리에서 열린 <밖으로 들어가기>. 4월 17일 열린 개막 퍼포먼스에서 김홍석 교수는 실제 성매매 여성을 섭외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관람객 안에 '창녀'가 있음을 고지하고 '창녀'를 찾아내는 사람에게 120만원을 주기로 했다.

결국 갤러리의 인턴이 한 여성에게 "혹시 여기 적힌 창녀분?"이라고 물었고 그 여성은 "내가 창녀처럼 보이냐?"고 반문한 뒤 "맞다"고 답했다. 이후 김 교수가 약속한 60만원을 건넸고 그 여성은 갤러리를 떠났다.

이 퍼포먼스의 제목은 <Post 1945>. 1945년 이후 심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면 다 되는 것을 비꼬는 의도라고 한다. <조선일보>는 성매매 "여성의 움직임이 겉돌았"으며 전시장을 나서는 "여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고 보도했다.

"성노동 특수성 고려해 접근해야... '창녀' 은유는 폭력"

해당 퍼포먼스에 대한 기사가 나가자 누리꾼들의 비판이 시작됐고 성매매 관련 여성단체는 연대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일 뿐"이며 "현대판 노예처럼 여성을 전시하고 이를 찾는 공격적 행태"라는 것이다.

김홍석 작가는 <밖으로 들어가기> 전시에서 동티모르 노동자, 북한 출신 노동자와 병치시켜 성매매 여성을 다루고 있다. 여성계 한켠에서는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명명하려는 시도가 있다. 성매매를 성노동이라 명명한다면, 본 전시는 사회의 뜨거운 우려와 달리 해당 여성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까?

4월 27일 있었던 성노동 토론회에서도 이 퍼포먼스에 대한 논란은 뜨거웠다. 토론에 참석한 사람 중에 직접 퍼포먼스를 본 사람은 없었으며 언론 보도에 대한 간단한 보고를 한 후 토론을 진행했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팀의 유랑(별칭)은 "(해당) 여성이 티가 났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문화적인 거리가 있고 쭈뼛쭈뼛했다는 부분, 섭외된 분이 좀 더 자유롭고 낙인이 없었다면 당당해도 좋았을 텐데"라며 복잡한 심경을 표했다.

민주성노동자연대의 한 활동가는 "(그 여성이) 60만원이라는 돈이 필요해 섭외에 응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당사자가 전시의 맥락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있었을까 의심이 든다"며 우려를 표했다.

1999년 군산 미군 기지촌의 성매매 지역을 다룬 다큐멘터리 <꽃파는 할머니>를 만든 박성미 감독은 "지적당한 여성이 (기사에 나타난 대로) 눈물을 흘리며 나갔다는 게 사실이라면, 기획자의 본의든 아니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예술이나 매체에서 '섭외가 되었다'는 약속은 하다 보면 변할 수 있다. '우리 약속했잖아'라며 간단하게 처리할 수 없다. 다르게 맥락화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그에 대해서는 작품 하는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고정갑희씨는 "성노동은 성노동의 특수성이 있으며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그런 은유 자체를 실제 성노동자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폭력"이라고 의견을 표했다.

김강 미술 작가는 "현실에서 성노동이 어떻게 읽히는가에 대한 퍼포먼스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한다며 "그런데 철학적 맥락을 짚지 않고 가십거리로 다루는 미디어가 문제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메시지 뚜렷... 작가의 작품 맥락 고려해야"

▲ < post 1945 > 퍼포먼스가 끝난 뒤 비어있는 금고. 이 금고에는 성매매여성을 찾아낸 사람에게 줄 돈 120만원이 들어 있었다. ⓒ 김홍주선


4월 29일 실제 전시를 확인하기 위해 국제 갤러리를 찾았다. 전시장에는 텅빈 금고 만이 "창녀를 찾아봅시다"라는 문구와 함께 남아 있었다. 그 금고에는 성매매여성을 찾아낸 사람에게 줄 돈 120만원이 들어 있었다.

<밖으로 들어가기> 전시의 수위는 높았다. 북한 출신 노동자가 연기한다는 설명이 붙은 토끼 인형. 한국인이 연기하는 동티모르 노동자 영상물.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으로 고문을 당하다 죽었으며 성폭행이 뒤따랐다'는 설명과 함께 흰 천이 씌인 의자도 놓여 있었다.

"노동 현장에서 발 하나를 잘렸고, 성전환을 했으며 미군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다가 이후 자신이 레즈비언이란 것을 깨닫고 죽었습니다"는 설명 옆에는 한쪽 발이 잘린 양성구유의 토르소(작품명: <top of the world>)가 놓여 있다.

"수업으로 바빠 전시장에 오지 못한다"는 김홍석 교수 대신 갤러리 측 담당자를 만났다. 심아빈 국제 갤러리 기획자는 "맥락 없이 한 작품만 집중 조명한 기사가 나간 후 문의 전화가 여럿 왔다"고 말했다.

그는 김홍석 교수의 작품이 "성정체성의 혼란이나 장애를 가진 복합적인 인간상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사회 정치 이슈들을 비꼬는 작업을 10년이 넘도록 해온 작가라 전시를 결정했다는 것.

'실제 사람'이 등장하는 것은 이번 퍼포먼스가 처음은 아니다. 김홍석 교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을 표방해 전시장 벽에 작가 자신을 매다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이탈리아 작가로 실제 당나귀를 전시장에 매달아 동물보호협회의 항의를 받기도 했으며 나무에 실제 아이들과 흡사한 인형을 목매달아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는 집 없는 사람이나 성매매 여성 등을 고용하기도 한다.

▲ < top of the world >. "노동 현장에서 발 하나를 잘렸고, 성전환을 했으며 미군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다가 이후 자신이 레즈비언이란 것을 깨닫고 죽었습니다"는 설명이 달려 있다. ⓒ 김홍주선

"<Top of the world>라는 작품도 있는데 사회정치적인 문제점을 뒤틀어 과장되게 표현한 것은 (논란이 된 퍼포먼스와) 똑같습니다. 

노동단체와 인권단체가 있지만 한 사람의 인생조차 구할 수 없다는 점을 작품으로 전달했습니다. 하나의 작품만 보고는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작가가 해온 작업의 역사가 나름 있고 작가를 많이 파악해야 합니다."

심아빈씨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김홍석 작가의 주도로 진행됐다. 논란이 된 <post 1945> 퍼포먼스도 작가가 친구를 통해 해당 (안마시술소) 여성을 섭외했으며 충분히 설명했고 이에 응했다는 것.

그리고 '눈물이 고였다'는 언론 보도는 과장됐다고 해명했다. 무차별 대중에게 노출됐을 때 왜곡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배려했느냐는 질문에는 "작가님이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하신 것 같다"고 답했다.

한편 심씨는 "현대 미술은 잔인성이 대두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 등에서 더욱 심하다. 미술에 왜이렇게 잔인성이 대두하느냐고 묻는다면 '사회가 잔인하기 때문'이라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대답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인권 감수정 빵점' 김홍석 교수는 왜 침묵하나

같은 날, <성노동 : 그녀와 그녀 사이전>(5월 5일까지)이 열리고 있는 서교동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을 다시 찾았다. 김연호 아이공 대표는 국제 갤러리 전시 기사를 찾아보았다며 입을 뗀다.

"'창녀를 찾아봅시다'라고 써붙였더군요. 기사에 드러난 부분만으로도 인권 유린 부분들이 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대로 (극대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의) 소수성을 인정하는 기획이었다면 '창녀 퍼포먼스'는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퍼포먼스는 '창녀'라는 사회적 낙인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성노동자라서 상처 받은 게 아니라, '창녀'로 커밍아웃'되는' 자리에서 어느 정도 동질감이 이루어졌는가가 중요합니다."

김 대표는 전시에서 이름 하나를 선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성노동 여성'이나 '성매매 여성'도 아닌 '창녀'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게 기획의도와는 맞지 않다는 것. 김 대표는 "인권 감수성이 제로(0)"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다시 5월 1일. 퍼포먼스 당시 상황을 묻기 위해 다시 국제 갤러리에 갔다. 김연호 대표의 의문대로 "그래, 씨x 나 창녀야"라고 말해도 괜찮은 분위기였는지 알고 싶었다. 심아빈 기획자와 <post 1945> 금고 앞에 섰다.

"그날 사람이 많았나요?"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15명여) 정도가 갤러리에 흩어져 있는 상태였어요."
"분위기가 어땠나요?"
"개막식이라 먹을 것들 있고 다들 들뜬 분위기였죠. 막상 퍼포먼스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려는 관객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일반 관객분들이 다른 관객들에게 다가가기는 어려우니까요. 갤러리 인턴 직원이 (그 여성을) 찾았습니다. 막상 찾고 난 뒤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심씨에 따르면 해당 여성을 찾아낸 갤러리 인턴 직원(역시 여성)도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울음을 터뜨린 직원에게 김 작가가 어떤 말을 건넸는지 물었다.

"뭐라고 그에 대해 코멘트를 하시진 않았습니다."

논란의 시발점인 김홍석 교수는 언론과의 만남을 꺼리고 있다. 때문에 '인권단체도 구하지 못한' 성매매 여성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직접 묻지는 못했다. 왜곡이 있다면 연락 주시면 좋겠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혹시 민성노련(민주성노동자연대)에 재정지원하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기꺼이 연결해 드릴 수도 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