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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오래 못 사실 것 같은데..."

무심한 손녀, 할아버지 생신에 가기로 맘 먹기까지

등록|2008.05.02 10:34 수정|2008.05.02 14:06
중간고사가 끝나고 오랜만에 집에 갔다. 엄마께서 나를 보자마자 대뜸 이렇게 물으셨다.

"너 5월 5일에 집에 올 수 있지?"
"왜?"
"그날 수원 외삼촌댁에 가야 해. 할아버지 생신 얼마 안 남았잖아."

5월 5일에 별다른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귀찮다는 생각만 앞섰다.

"그럼 난 안 갈래."

말을 뱉고 나서 '아차' 했다. 평소 가족의 일에 빠지는 것을 싫어했던 엄마는 당연히 나를 혼내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되돌아온 건 힘없는 목소리였다.

"할아버지 오래 못 사실 것 같은데 가서 얼굴이나 보여드려."

그렇게 건강하시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암이라니!

할아버지는 정말 건강한 분이셨다. 할머니는 당뇨로 고생하시다 일찍 돌아가셨지만, 할아버지는 언제나 정정하셨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노인대학은 절대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인생을 즐기는 분이셨다. 호탕하고 유머있는 성격 때문인지 곁에는 항상 친구 분들이 끊이지 않았다.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10년 이상 젊게 보이는 비결도 갖고 계셨다. 작업복 차림의 옷차림으로 외출하신 적은 단 한번도 없으셨다. 중절모에 포인트로 화려한 깃털을 장식하고, 백바지에 광이 나는 백구두를 즐겨 신으셨던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신사'이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지난해 6월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이미 온몸으로 암세포가 퍼져 더 이상 손쓸 수도 없는 상태라고 했다. 많이 야위고 약해지셨다는 엄마의 슬픈 목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건강하시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암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인지,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난 점점 할아버지를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외삼촌댁을 방문했다. 언제나처럼 반갑게 맞아 주실 줄 알았던 할아버지는 누워계셨다. 정정했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뼈밖에 안 남은 앙상한 몸으로 우리를 반겨주셨다. 물 한 모금도 빨대로 빨아 겨우 넘기시는 너무도 약한 모습이셨다. 잘 지냈냐는 힘없는 목소리에 갑자기 슬퍼져서 방을 나와 버렸다. 편찮으신 할아버지의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하는 나는 그렇게도 무심한 손녀딸이었다.

"할아버지 내년 생신은 어쩌면 없을지도 몰라. 정말 급한 일 아니면 할아버지 뵈러 가."

엄마의 이 말에 나는 다시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됐다.

난 왜 그렇게 무심한 손녀딸이었는지...

생각해 보면 나는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많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집에서 버스로 30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에 사셨다. 어린 시절 방학이면 할아버지 댁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작은 하천에서 맨몸으로 물놀이도 하고, 경운기를 타고 동네 한 바퀴 나들이를 간 적도 많았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달리기를 못하는 내 옆에는 항상 할아버지가 함께 뛰고 계셨다. 중학교 때는 개구리 해부학습을 위해 손수 잡아주신 개구리 덕분에 과학시간에 칭찬을 받은 적도 있었다. 유난히 말도 안 듣고 버릇없게 굴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는 나를 예뻐해 주셨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내년 생신이 없을지도 모른다니. 할아버지가 편찮으시긴 했지만 내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동안 난 왜 그렇게 무심한 손녀딸이었는지 내 자신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이 그렇게 없는 것이었다면 나는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따뜻한 말 한마디, 손 한 번 잡아드리지 못했고, 전화조차 자주 하지 못했다.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멀리서만 할아버지를 뵀는지….

봄이 만연하고 꽃들은 각자의 색깔을 뽐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문득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보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아팠다. 따뜻한 봄기운도 촉촉한 봄비도 방안에만 계시는 할아버지에겐 먼나라 이야기일 테니까.

"엄마, 나 5월 5일에 별일 없어. 할아버지 만나러 가요."

엄마는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내심 기뻐하시는 눈치셨다. 이번 할아버지 생신에는 해야 할 일이 많다. 만연한 봄기운을 전해드리고, 예쁜 꽃도 보여드리고, 그리고 무엇보다 말동무가 되어 드려야겠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드리며 힘이 되어드리고 싶다. 트로트 음악을 틀어놓고 신나게 춤을 추던 그때의 손녀와 할아버지가 너무도 그립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해요. 내년에도 우리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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