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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필름사진을 좋아하는 까닭

[사진말 (1) 사진에 말을 걸다 1∼6] '찍히는 대상'과 '내 눈과 마음'을 하나로 묶는다

등록|2008.05.03 17:34 수정|2008.05.03 18:41
1998년부터 지금까지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사진으로 담아내는 주제는 오로지 하나, '헌책방'입니다. 여태껏 필름사진기로만 헌책방을 담아 왔습니다. 그러다가 지지난해에 처음으로 디지털사진기를 장만해서, 디지털사진기로는 '골목길'과 '자전거', 이 두 가지만 찍고 있습니다.

살림이 닿는다면 파노라마 사진기를 장만해서 아주 빛다른 모습을 남기고 싶은데, 이 꿈을 이룰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헌책방과 골목길과 자전거, 이렇게 세 가지 사진을 찍어 오는 동안 느꼈던 짤막한 생각을 '사진말 : 사진에 말을 걸다'라는 이름으로 나누어 봅니다.

문닫은 헌책방서울 성신여대역 둘레, 불빛 환하고 사람 북적이는 길을 헤집고 골목 안쪽 깊숙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던 헌책방 〈그린북스〉는 소리소문 없이, 아주 조용히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헌책방에 많이 찾아오도록 할 수 있을까요?’ 하는 문제로 마음앓이가 많으셨던 추씨 아저씨는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계실는지. ⓒ 최종규


[1] 사진을 100장 찍는다고 : 사진을 100장 찍는다고 100장 모두 좋은 사진이 되겠나? 마음이 아프고 힘들고 아쉬워도, 제때에 제 사진 1장을 남기면 좋다는 생각으로 늘 자기 사진을 다스리고 추스르며 기다리고 힘쓰자.

죽은 뱀디지털사진기를 처음 장만하던 때는, 충북 충주에 머물면서 자전거를 타고 서울을 오가던 때. 이때 목에 사진기를 걸고 신나게 국도를 달리면서 틈틈이 사진을 담곤 했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니 몇 장 안 찍은 셈인데, 몇 안 되는 사진에 담으려던 모습 가운데 하나는 이와 같은 ‘길죽음(로드킬)’ 모습이었습니다. ⓒ 최종규


[2] 좋은 사진을 보면 : 다른 사람이 찍은 좋은 사진을 보면 '아, 나도 저렇게 찍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러고 조금 뒤에는, 내 나름대로 '내 좋은 사진'을 찍고 싶구나 하는 생각이 몽글몽글.

발바리 행사 때필름사진기로 ‘자전거’를 찍을 때면, 인화며 현상이며 스캔질이며 할 때까지 두어 달이 훌쩍 지나가기 일쑤였습니다만, 디지털사진기를 쓰니 하루 만에도 모든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자전거 행사(발바리)에 함께하며, 자전거 즐김이들을 사진으로 담는 일은, 몸은 무척 고되었지만 아주 즐거웠습니다. ⓒ 최종규


[3] 사진을 많이 찍기보다는 : 사진을 많이 찍기보다는 '찍는 내'가 좋고, '이 사진을 볼' 남도 좋은 사진 한 장 찍는 일이 더 반갑다.

디지털사진기로 좋았던저는 캐논스캔9900을 씁니다. 개인이 쓰기에는 무척 좋은 스캐너입니다. 그러나 제가 꼭 쓰고팠던 스캐너는 엡슨에서 만든 녀석으로, 비4종이까지 긁을 수 있고 필름도 서른여섯 장을 한 번에 앉힐 수 있던 녀석. 책 겉그림을 스캐너로 긁자면 제가 쓰는 녀석으로는 에이4까지밖에 못 긁으니, 덩치 큰 사진책은 담아내기 어려웠습니다. 이때 디지털사진기는 아주 쏠쏠하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 최종규


[4] 필름사진을 좋아하는 까닭 1 : 필름사진을 좋아하는 까닭이 있다. 필름에 감긴 장수를 하나씩 세고 느끼면서 그동안 어떤 모습을 어떻게 담아야 좋은가를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헤아림이나 생각은 디지털사진을 찍으면서도 할 수 있겠지. 무턱대고 눌러대지 않고 꼭 몇 장만 찍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골목길 사진골목길 나들이를 하면서 부지런히 사진을 찍습니다. 필름사진기였다면 필름값 떨어지는 소리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으리라 생각합니다. 거의 날마다 이삼백 장에 이르는 골목길 사진을 담으면서, ‘내가 사랑하는 고향마을 골목길을 이렇게 나 혼자라도 사진에 담아 놓고 있으면 언젠가는 빛을 볼 수 있을 테지’ 하고 생각합니다. ⓒ 최종규


[5] 필름사진을 좋아하는 까닭 2 : 나는 디지털사진기로 빛깔이나 밝기 따위를 맞추고 손떨림이나 흔들림을 막는 한편, 포토샵으로 모자라고 아쉬운 곳을 보태거나 잘라내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인화와 현상을 손수 안 하는 까닭이기도 한데, 어떤 기계로 누가 뽑더라도 빛깔과 밝기가 제대로 맞는 사진을 찍고 싶다. 그래, 나는 필름사진을 쓰면서 이런 일을 즐긴다. 필름사진, 이 가운데 되도록 내 손과 내 눈으로(수동)으로 맞추는 기계가 좋다. 내 눈으로 들여다보고 내 손으로 기계 장치를 만져서 밝기와 빛깔을 맞춘다.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서 '찍히는 대상'과 '내 눈과 마음'을 하나로 묶는다.

사진이란 무엇일까우리가 찍는 사진은 ‘작품사진’일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언제 어디서나 ‘삶 사진’이 먼저라고 느낍니다. 우리 삶을 담아낸 사진이기에 우리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우리 마음을 움직이기에 ‘작품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느냐 싶어요. 처음부터 작품을 노린다면 헛물 켜는 손장난으로 나동그라지기 일쑤라고 생각합니다. ⓒ 최종규


[6] 필름사진을 좋아하는 까닭 3 : 잘 찍었든 못 찍었든 고스란히 필름에 남는다. 잘 찍었으면 잘 찍은 대로, 못 찍었으면 못 찍은 대로 내가 바라본 세상이 차례대로 남는다. 어느 것을 잘라내거나 빼낼 수 없다. 흐름이 이어진다. 찍을 때는 한때 모습이지만, 찍고 난 뒤에는 지나온 삶이 된다.

사진을 찍는 그날부터사진을 찍는 그날부터, 우리들은 내 삶을 내 나름대로 바라보는 눈길 그대로 담아내면서 남길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간 발자취를 내 나름대로 남기면서, 내 뒤를 이어서 살아갈 아이들한테 어버이 된 사람들 생각을 찬찬히 엿볼 수 있도록 해 줍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책+헌책방+우리 말+사진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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