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레닌도 풀어주지 못한 게바라의 고민
[이주의 새책] 철학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지금 너무나 아프게 당신이 필요하오"
체Che, 회상 | 알레이다 마치 지음 | 박채연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324쪽 | 1만2000원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라는 본명보다 그저 '체(Cheㆍ'나의'라는 뜻의 인디언 토속어)'라고 불렸고 사르르트가 "우리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평했던 체 게바라. 혁명전선에서 그를 만나 네 자녀를 두고, 그가 볼리비아 산악에서 총살되기까지, 또 그 이후에도 계속 혁명동지로 살아온 체의 부인 알레이다 마치의 체 게바라에 대한 회고록이다. 지난해 체의 사망 40주기를 맞아 마침내 입을 열고, 올해 탄생 80주년을 맞아 책으로 출간됐다.
저자는 회고록을 출판하며 "그저 가장 사랑하는 기억들을 흰 종이 위의 검은 글씨로 바꾸어 놓았을 뿐이다"고 밝혔다. 특히 체와의 추억을 담은 흑백 사진들과 함께 남편이자 아빠로서 그가 아내에게, 자녀에게 남긴 절절한 시, 편지, 엽서 등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기록들이 눈길을 끈다. 1965년 11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를 옮겨적는다.
"가까이에 적도 없고 눈앞에 꼴 보기 싫은 자들도 없이 갇혀 있는 지금 너무나 아프게 당신이 필요하오. 생리적으로도 그렇다오. 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일리치가 늘 그것들을 진정시켜주는 것은 아니라오."
느물거리는 소크라테스, 까칠한 비트겐슈타인
talk talk 철학토크쇼 | 루시 에어 지음 | 유정화 옮김 | 김영건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488쪽 | 1만3500원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는 2001년 동안 '죽은 철학자들의 사회'인 이데아월드를 다스려온 대통령이다. 그의 통치 스타일에 신물이 난 비트겐슈타인이 대권을 노리고 하나의 내기를 제안한다. 소크라테스의 주장대로 '철학이 정말 사람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지' 확인해보자는 것이다. 열다섯 살 소년 벤이 이 철학실험의 대상자로 선택돼 이데아월드로 초대되고, 그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벌이는 대화나 연설을 지켜보고, 때론 참여하기도 하면서 여러 철학적 문제들을 하나하나 깨달아간다.
요슈타인 가이더의 베스트셀러 <소피의 세계>가 철학의 역사를 다뤘다면 이 책은 현상과 실재, 존재와 인식, 마음과 물질, 자아동일성, 윤리적 딜레마, 언어와 개념, 도덕의 보편성과 상대성, 자유론과 결정론 등 철학의 핵심 쟁점들을 쉽게 풀어내고 있다.
특히 권위의 거품을 걷어낸 철학 대가들의 '톡톡(talk talk)튀는' 모습들이 흥미롭다. 느물느물한 소크라테스, 까칠한 비트겐슈타인, 성공한 상담전문가 마키아벨리,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아리스토텔레스, 배드민턴에 빠진 지독한 승부욕의 니체…. 그런데, 내기에서 누가 이겼냐고? 직접 책에서 확인하시길!
분단문학 소설가가 그려낸 '사랑의 윤리'
오마니별 - 김원일 소설 | 김원일 지음 | 강 | 384쪽 | 1만1000원
등단 43년째를 맞는 저자가 4년 만에, 7번째로 펴낸 소설집이다. '분단문학'의 대표작가답게 여전히 전쟁과 분단의 고통과 그늘을 드러낸 단편 6편을 묶었다. 그러나 단지 그에 그치지 않고, 전쟁통에 잃어버린 누이와의 혈육의 정을 담은 '오마니별', 포로수용소 경비병과 포로 여동생의 사랑을 그린 '용초도 동백꽃', 북파공작원 동료 사이의 우정을 담은 '임진강' 등 그의 작품들이 모이는 곳은 '사랑의 윤리'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휴머니즘의 참모습일 것이다."(차미령, '작품해설' 중에서)
문학적 조로와 타협이 드물지 않은 세상에서 40여 년을 한결같은 보폭으로 걸어온 백발의 작가가 들려주는 소회는 숙연함 없이 마주하기 쉽지 않다. "새 책을 내며 소회가 있다면, 첩첩한 산골 옹달샘에서 시작된 물이 강으로 스며들어 있듯 없듯 희석된 끝에 저물녘에야 바다에 당도한, 적적한 마음이다. 소설이 무엇인가를 붙잡고 사십여 년을 심사숙고해온 결과, 문득 앞을 보니 어느덧 종착점 언저리에서 서성이고 있다."('작가의 말'에서)
조선시대 사대부 할아버지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조선 남자, 아이를 키우다 | 홍승우 글·그림 | 예담프렌드 | 212쪽 | 1만원
현재 <한겨레>에 연재중인 가족·육아만화 <비빔툰>의 작가이자 두 아이의 아빠인 저자가 500여년 전 조선시대의 특별한 육아풍경을 들여다보았다. 조선 시대 사대부가 쓴 육아일기로는 유일무이한 이문건(1494-1567)의 <양아록(養兒錄)>을 그림으로 풀어낸 것. <양아록>은 조광조의 문하생으로 사화에 휘말려 귀양지로 떠난 그가 병을 앓던 아들도 잃고, 직접 손자를 돌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써내려간 '조선판 육아일기'다.
손자의 태반을 소중히 묻으며 가문의 희망을 되살려내고, 이빨이 난 손자가 손가락을 깨물자 즐거워하고, 손자가 병치레할 때마다 밤을 새우며 가슴 졸이고, 자신의 젓꼭지를 만지다 잠든 손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흐믓해하고, 또 그토록 사랑하는 손자에게 회초리를 들며 자신이 더 아파하는 할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이 5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절절하게 전해진다. 그림이야 정겹고 또 잔잔한 웃음을 주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그가 처한 시대의 현실에, 그 깊은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과학이 아름답다고?
무지개를 풀며 | 리처드 도킨스 지음 | 최재천·김산하 옮김 | 바다출판사 | 488쪽 | 1만6000원
<이기적 유전자>(1976년)를 시작으로 최근 <만들어진 신>(2006년)에 이르기까지 펴내는 책마다 학계에서 파장을 일으켜온 '문제적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1998년 저작. 책 제목은, 뉴턴이 프리즘으로 무지개를 풀어헤침으로써 모든 시정(詩情)을 말살했다고 개탄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시구에서 따왔다. 정말 무지개를 풀어헤치는 일은 세상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앗아가는 것일까. 저자는 우주의 비밀부터 유전자의 세계까지 과학 전반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펼쳐가며 그에 답한다.
저자의 답은 짐작하듯이 'No!'다. 그는 오히려 "과학은 위대한 시적 영감의 원천이다"고 주장하며 다음 문장으로 책을 끝맺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는 키츠와 뉴턴은 서로에게 귀 기울이며 우주의 노래를 듣는다."
저자의 다른 책에 비해 '전투성'이 도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 책에 대해 '도킨스의 불독 아니면 푸들'임을 자처하는 번역자 최재천 교수는 "어쩌면 가장 도킨스다운 책인 것 같다"고 했다.
'양심 없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 - 사이코패스의 또 다른 이름 | 마사 스타우트 지음 | 김윤창 옮김 | 산눈 | 336쪽 | 1만3000원
소시오패스(sociopath).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조금도 양심의 가책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책은 '양심 없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양심 없는 사람들이 25명중 1명꼴이라고 한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은 살인자나 강간범이 아니라 여러 매력을 발산하는 이웃으로 우리 곁에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소시오패스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느끼는지를 설명함으로써 그들을 식별하고 그들로부터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편 이 책은 양심에 관한 연구서로도 읽히기도 한다. 저자는 양심이 인간의 제7감(the seventh sense)이며, 그 존재 여부가 인간을 나누는 데 있어 "어쩌면 지능이나 인종, 심지어 성별보다도 더욱 중요한 구분"이라고 주장하고 있기까지 하다. 심리학자이자 하버드의대 정신의학과 임상강사이기도 한 저자가 25년간 심리치료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사건들, 대화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조선 최대의 역도'를 소설로 되살려내다
정여립, 몽상가의 자유 | 강흥수 지음 | 문학포럼 | 304쪽 | 1만원
조선시대 가장 많은 사람들을 목숨을 앗아간 사화는 무엇일까. 정답은 '기축옥사'. 역모를 꾀했다는 혐의로 2년에 걸쳐 무려 1000여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 주모자와 추종자가 있던 호남은 이후 '반역지향(叛逆之鄕)'으로 낙인이 찍혔지만, 정작 주모자의 갑작스럽고 의문스런 죽음으로 사건의 진실은 지금까지 미궁에 빠져있다. 그 주모자, '조선 최대의 역도'는 정여립이었다.
천하에 일정한 주인이 따로 없다는 천하공물론(天下公物論), 누구라도 임금으로 섬길 수 있다는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 등을 내세우며, 사농공상을 뛰어넘는 만민평등의 대동계를 조직했던 정여립. 그는 정말 역모를 꾀했던 것일까. 저자는 상상력을 덧붙여 백성이 주인되는 대동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혁명가 정여립의 삶을 그려냈다. 포럼출판사와 서울디지털창작집단 작가들이 기획한 역사소설 프로젝트 '새 세상을 꿈꾼 조선의 혼'의 네 번째 작품이다.
'남편'이라는 이름의 숫컷들에 관한 보고서
남편이라는 것 - 아내들은 알 수 없는 남편들의 본심 | 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 구계원 옮김 | 열음사 | 296쪽 | 1만원
제목부터가 뜨끔하다. 표지 뒷면을 보니 '남편은 집을 나서는 순간, 남자가 된다'고 적혀 있다. 역시 뜨끔하다. 불륜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소설 <실락원>으로 유명한 의학박사 출신의 저자가 일흔이 넘은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의사로서의 소견을 더해 섹스리스, 대화의 부재, 귀가거부증, 갱년기에 이르기까지 '남편'이란 이름을 가진 숫컷의 행동과 심리를 통찰하고 정리했다.
예컨대, 첫째 장의 질문은 남자는 왜 결혼을 할까. 대답은 첫째,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니까, 둘째, 결혼은 안정된 성관계 상대를 보장하므로…. 단지 그뿐일까. 다양한 통계자료로 뒷받침했지만, 또 일본의 사례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대개 이런 책이 그러하듯이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읽는 데 주의가 필요할 듯싶다. 믿거나 말거나, 결코 가슴이 뜨끔하거나 찔려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 ⓒ 랜덤하우스코리아
체Che, 회상 | 알레이다 마치 지음 | 박채연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324쪽 | 1만2000원
저자는 회고록을 출판하며 "그저 가장 사랑하는 기억들을 흰 종이 위의 검은 글씨로 바꾸어 놓았을 뿐이다"고 밝혔다. 특히 체와의 추억을 담은 흑백 사진들과 함께 남편이자 아빠로서 그가 아내에게, 자녀에게 남긴 절절한 시, 편지, 엽서 등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기록들이 눈길을 끈다. 1965년 11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를 옮겨적는다.
"가까이에 적도 없고 눈앞에 꼴 보기 싫은 자들도 없이 갇혀 있는 지금 너무나 아프게 당신이 필요하오. 생리적으로도 그렇다오. 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일리치가 늘 그것들을 진정시켜주는 것은 아니라오."
느물거리는 소크라테스, 까칠한 비트겐슈타인
▲ ⓒ 웅진지식하우스
talk talk 철학토크쇼 | 루시 에어 지음 | 유정화 옮김 | 김영건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488쪽 | 1만3500원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는 2001년 동안 '죽은 철학자들의 사회'인 이데아월드를 다스려온 대통령이다. 그의 통치 스타일에 신물이 난 비트겐슈타인이 대권을 노리고 하나의 내기를 제안한다. 소크라테스의 주장대로 '철학이 정말 사람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지' 확인해보자는 것이다. 열다섯 살 소년 벤이 이 철학실험의 대상자로 선택돼 이데아월드로 초대되고, 그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벌이는 대화나 연설을 지켜보고, 때론 참여하기도 하면서 여러 철학적 문제들을 하나하나 깨달아간다.
요슈타인 가이더의 베스트셀러 <소피의 세계>가 철학의 역사를 다뤘다면 이 책은 현상과 실재, 존재와 인식, 마음과 물질, 자아동일성, 윤리적 딜레마, 언어와 개념, 도덕의 보편성과 상대성, 자유론과 결정론 등 철학의 핵심 쟁점들을 쉽게 풀어내고 있다.
특히 권위의 거품을 걷어낸 철학 대가들의 '톡톡(talk talk)튀는' 모습들이 흥미롭다. 느물느물한 소크라테스, 까칠한 비트겐슈타인, 성공한 상담전문가 마키아벨리,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아리스토텔레스, 배드민턴에 빠진 지독한 승부욕의 니체…. 그런데, 내기에서 누가 이겼냐고? 직접 책에서 확인하시길!
분단문학 소설가가 그려낸 '사랑의 윤리'
▲ ⓒ 강출판사
오마니별 - 김원일 소설 | 김원일 지음 | 강 | 384쪽 | 1만1000원
등단 43년째를 맞는 저자가 4년 만에, 7번째로 펴낸 소설집이다. '분단문학'의 대표작가답게 여전히 전쟁과 분단의 고통과 그늘을 드러낸 단편 6편을 묶었다. 그러나 단지 그에 그치지 않고, 전쟁통에 잃어버린 누이와의 혈육의 정을 담은 '오마니별', 포로수용소 경비병과 포로 여동생의 사랑을 그린 '용초도 동백꽃', 북파공작원 동료 사이의 우정을 담은 '임진강' 등 그의 작품들이 모이는 곳은 '사랑의 윤리'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휴머니즘의 참모습일 것이다."(차미령, '작품해설' 중에서)
문학적 조로와 타협이 드물지 않은 세상에서 40여 년을 한결같은 보폭으로 걸어온 백발의 작가가 들려주는 소회는 숙연함 없이 마주하기 쉽지 않다. "새 책을 내며 소회가 있다면, 첩첩한 산골 옹달샘에서 시작된 물이 강으로 스며들어 있듯 없듯 희석된 끝에 저물녘에야 바다에 당도한, 적적한 마음이다. 소설이 무엇인가를 붙잡고 사십여 년을 심사숙고해온 결과, 문득 앞을 보니 어느덧 종착점 언저리에서 서성이고 있다."('작가의 말'에서)
조선시대 사대부 할아버지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 ⓒ 예담프렌드
조선 남자, 아이를 키우다 | 홍승우 글·그림 | 예담프렌드 | 212쪽 | 1만원
현재 <한겨레>에 연재중인 가족·육아만화 <비빔툰>의 작가이자 두 아이의 아빠인 저자가 500여년 전 조선시대의 특별한 육아풍경을 들여다보았다. 조선 시대 사대부가 쓴 육아일기로는 유일무이한 이문건(1494-1567)의 <양아록(養兒錄)>을 그림으로 풀어낸 것. <양아록>은 조광조의 문하생으로 사화에 휘말려 귀양지로 떠난 그가 병을 앓던 아들도 잃고, 직접 손자를 돌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써내려간 '조선판 육아일기'다.
손자의 태반을 소중히 묻으며 가문의 희망을 되살려내고, 이빨이 난 손자가 손가락을 깨물자 즐거워하고, 손자가 병치레할 때마다 밤을 새우며 가슴 졸이고, 자신의 젓꼭지를 만지다 잠든 손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흐믓해하고, 또 그토록 사랑하는 손자에게 회초리를 들며 자신이 더 아파하는 할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이 5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절절하게 전해진다. 그림이야 정겹고 또 잔잔한 웃음을 주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그가 처한 시대의 현실에, 그 깊은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과학이 아름답다고?
▲ ⓒ 바다출판사
무지개를 풀며 | 리처드 도킨스 지음 | 최재천·김산하 옮김 | 바다출판사 | 488쪽 | 1만6000원
<이기적 유전자>(1976년)를 시작으로 최근 <만들어진 신>(2006년)에 이르기까지 펴내는 책마다 학계에서 파장을 일으켜온 '문제적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1998년 저작. 책 제목은, 뉴턴이 프리즘으로 무지개를 풀어헤침으로써 모든 시정(詩情)을 말살했다고 개탄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시구에서 따왔다. 정말 무지개를 풀어헤치는 일은 세상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앗아가는 것일까. 저자는 우주의 비밀부터 유전자의 세계까지 과학 전반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펼쳐가며 그에 답한다.
저자의 답은 짐작하듯이 'No!'다. 그는 오히려 "과학은 위대한 시적 영감의 원천이다"고 주장하며 다음 문장으로 책을 끝맺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는 키츠와 뉴턴은 서로에게 귀 기울이며 우주의 노래를 듣는다."
저자의 다른 책에 비해 '전투성'이 도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 책에 대해 '도킨스의 불독 아니면 푸들'임을 자처하는 번역자 최재천 교수는 "어쩌면 가장 도킨스다운 책인 것 같다"고 했다.
'양심 없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 ⓒ 산눈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 - 사이코패스의 또 다른 이름 | 마사 스타우트 지음 | 김윤창 옮김 | 산눈 | 336쪽 | 1만3000원
소시오패스(sociopath).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조금도 양심의 가책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책은 '양심 없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양심 없는 사람들이 25명중 1명꼴이라고 한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은 살인자나 강간범이 아니라 여러 매력을 발산하는 이웃으로 우리 곁에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소시오패스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느끼는지를 설명함으로써 그들을 식별하고 그들로부터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편 이 책은 양심에 관한 연구서로도 읽히기도 한다. 저자는 양심이 인간의 제7감(the seventh sense)이며, 그 존재 여부가 인간을 나누는 데 있어 "어쩌면 지능이나 인종, 심지어 성별보다도 더욱 중요한 구분"이라고 주장하고 있기까지 하다. 심리학자이자 하버드의대 정신의학과 임상강사이기도 한 저자가 25년간 심리치료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사건들, 대화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조선 최대의 역도'를 소설로 되살려내다
▲ ⓒ 문학포럼
정여립, 몽상가의 자유 | 강흥수 지음 | 문학포럼 | 304쪽 | 1만원
조선시대 가장 많은 사람들을 목숨을 앗아간 사화는 무엇일까. 정답은 '기축옥사'. 역모를 꾀했다는 혐의로 2년에 걸쳐 무려 1000여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 주모자와 추종자가 있던 호남은 이후 '반역지향(叛逆之鄕)'으로 낙인이 찍혔지만, 정작 주모자의 갑작스럽고 의문스런 죽음으로 사건의 진실은 지금까지 미궁에 빠져있다. 그 주모자, '조선 최대의 역도'는 정여립이었다.
천하에 일정한 주인이 따로 없다는 천하공물론(天下公物論), 누구라도 임금으로 섬길 수 있다는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 등을 내세우며, 사농공상을 뛰어넘는 만민평등의 대동계를 조직했던 정여립. 그는 정말 역모를 꾀했던 것일까. 저자는 상상력을 덧붙여 백성이 주인되는 대동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혁명가 정여립의 삶을 그려냈다. 포럼출판사와 서울디지털창작집단 작가들이 기획한 역사소설 프로젝트 '새 세상을 꿈꾼 조선의 혼'의 네 번째 작품이다.
'남편'이라는 이름의 숫컷들에 관한 보고서
▲ ⓒ 열음사
남편이라는 것 - 아내들은 알 수 없는 남편들의 본심 | 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 구계원 옮김 | 열음사 | 296쪽 | 1만원
제목부터가 뜨끔하다. 표지 뒷면을 보니 '남편은 집을 나서는 순간, 남자가 된다'고 적혀 있다. 역시 뜨끔하다. 불륜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소설 <실락원>으로 유명한 의학박사 출신의 저자가 일흔이 넘은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의사로서의 소견을 더해 섹스리스, 대화의 부재, 귀가거부증, 갱년기에 이르기까지 '남편'이란 이름을 가진 숫컷의 행동과 심리를 통찰하고 정리했다.
예컨대, 첫째 장의 질문은 남자는 왜 결혼을 할까. 대답은 첫째,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니까, 둘째, 결혼은 안정된 성관계 상대를 보장하므로…. 단지 그뿐일까. 다양한 통계자료로 뒷받침했지만, 또 일본의 사례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대개 이런 책이 그러하듯이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읽는 데 주의가 필요할 듯싶다. 믿거나 말거나, 결코 가슴이 뜨끔하거나 찔려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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