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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참혹한 협상 결과, 누가 책임질 건가

등록|2008.05.05 17:20 수정|2008.05.05 17:20
"우리가 인간을 수입하는 게 아니라 소를 수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상길 농림수산식품부 축산정책단 단장이 한 말이다. 지난 4월 11일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인간광우병 증상을 보이던 22세의 여성이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미국은, MBC 쪽에서 이 단장을 취재할 때까지도, 약속했던 부검 확진 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MBC 기자가 물은 것이었다.

기자 : 인간광우병 환자가 발생했을 수도 있는 미국에서 쇠고기를 그저 수입만 해야 하는 것인가?
축산정책단장 : OIE(국제수역(獸疫)사무국)의 규정에 인간광우병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인간광우병과 광우병은 구별되어야 한다.
기자 : 왜 구별되어야 하는가?
축산정책단장 : 우리가 인간을 수입하는 게 아니라 소를 수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수입하는 게 아니고 소를 수입한다? 기실 축산정책단장다운 말이다. 한편 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통상정책관은 이번 쇠고기 협상의 한국 측 수석대표이다. 그는 또한 이렇게 알려준다.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만 제거하면 99.99% 안전하다. 마치 독을 제거한 복어를 우리가 아무런 걱정 없이 먹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복어는 자격증 있는 조리사가 독을 제거한다. 그런데 쇠고기의 독은 누가 제거한다는 말인가? 미국 도축사가 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한국 소비자가 한다는 것인가? 또한 광우병 원인 물질로 알려진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닌 변형 단백질이라서 끓이거나 튀겨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후추 한 알갱이의 1000분의 1 질량인 0.001g만 섭취해도 인간광우병에 걸리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극미량의 독을 도대체 누가 알아보고 제거한다는 말인가?

광우병은 전염병이 아니다?

한 직급 위인 정운천 농수식품부 장관은 "광우병은 전염병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듯이 말한다. 그는 '광우병은 구제역과 달리 전염병이 아닌데도 위험이 과장된 면이 있다'고 덧붙인다.

전염병이란 '병원체가 이에 감염된 인간이나 동물로부터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인체에 침입하여 증식함으로써 일어나는 질병'이라고 인터넷 사전에도 나와 있다. 이렇게 볼 때 광우병은 명백한 전염병이다. 그런데 장관은 전염병이 아니라고, 그것도 국민을 가르치듯이 말했다.

물론 세 사람의 발언은 모두 하나같이 기본 상식조차 결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민을 제 수준으로 알고 함부로 말한다. 이런 사람들이 국민의 식품과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협상을 벌였으니 결과는 당연한 것 아니겠는지?

지난 2일 농림수산식품부가 보건복지부와 합작으로 낸 담화문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담화문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확실한 과학적 근거도 없는 문제들이 사실인 것처럼 알려져서 발생한 것'이라고 전제한 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장황하게 강변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보건의료단체연합과 수의사연합의 반응은 격앙에 가깝다. 두 단체는 논평을 통해 "어떠한 과학적 사실도 제시하지 않고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정부 담화문"이라고 주장한다. 두 단체는 "광우병 관련 정부 담화는 무식한 것인가 아니면 대놓고 사기를 치자는 것인가?"라고 격렬히 성토했다.

무지한 사람들이 만든 참혹한 협상 결과

무지하고 비굴한 사람들이 벌인 협상의 결과는 참혹할 수밖에 없다. 국제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정부가 이번 쇠고기 협상 결과에서 다음 4가지를 은폐했다고 지적한다.

1. 검역주권을 미국에 위탁했다.
2. 미국 쇠고기의 월령 표시 요구를 포기했다.
3. 미국산 쇠고기의 전수검사(全數檢査)를 할 수 없게 되었다.
4. 미국에서는 '주저앉는 소'의 뇌, 척수 등을 동물사료로 사용한다.

1번 결과 한국은 WTO 창립 회원국으로서 조문에 명시되어 있는 '과학적 정보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이용 가능한 정보를 토대로 잠정적으로 위생 검역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것은 크게 볼 때 주권 제약에 해당된다. 그런데 우리 헌법에는 주권을 제약하는 협정을 타국과 맺을 때에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송기호 변호사는 1번이 헌법을 위배한 행위라고 주장한다.

2번 결과 한국은 미국에서 수입하는 소의 월령을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잃어버렸다. 이제 한국은 수입 소의 월령을 미국 공무원이 제시하는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미국 소의 태반이 월령을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한국은 미국 도축장을 직접 점검할 수도 없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만 해도 한국이 조사한 후 개별 승인해 준 도축장 소만 수입할 수 있게 했는데, 이제는 미국 농무부의 검사를 받는 모든 도축장의 소를 들여와야 하게 되었다.

3번 결과 비상 상황이 발생해도 한국은 특정 미국 쇠고기의 전량을 검사할 수 없게 되었다. 설사 특정 단위의 쇠고기에서 광우병 위험 부위가 발견되었다고 해도 그 단위 쇠고기의 극히 일부인 표준 비율만을 검사해야 한다.

4번은 미국에서는 '주저앉는 소'나 도축검사에 불합격한 소일지라도 30개월이 되지 않은 경우에는 뇌와 척수마저 동물 사료로 사용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미국 소가 교차 사료로 인한 광우병 발병 위험에 여전히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인가

이런 협상을 하고 와서도 그들이 그리도 대담하게 말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 배경은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대통령은 미국 상공회의소에 가서 만면에 웃음을 띠고 박수를 하면서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소식을 전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이 대통령은 "이제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쇠고기를 가장 값싸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러다가 반대 여론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적게 먹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국민을 상대로 면박을 주기도 했다. 그는 "일본 소는 한 마리에 1억을 호가하는데 한국 소도 그렇게 고급화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랴, 일본을 따라가고 싶으면 우리도 일본처럼 20개월 미만 소만 수입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요컨대 장관이나 관리들의 허술한 현실 인식이나 황당한 언사의 뒤에는 국정 최고 책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이 이 정도인데 그 아랫사람이 더 낫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마 대통령보다 나았더라면 애초부터 내각이나 요직에 뽑히지도 않았으리라. 사람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뽑기란 생리적으로 지극히 어려운 법이다.

혁명이 끝나면 최고 발포 책임자를 가려 책임을 묻듯이, 이번 쇠고기 협상을 재가한 최고 책임자를 가려야 한다. 그 책임자가 장관이나 수석이라면 당연히 협상진과 함께 사퇴해야 마땅하다. 만약 이 대통령이 재가한 것이라면 진정한 사과와 함께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조치, 즉 재협상을 즉각 해야 한다. 그리하여 미국에 내준 우리의 배알과 주권을 회수해야 한다. 아니면 지금 사납게 진행되고 있는 탄핵 서명의 추이나 잘 지켜보시든가.
덧붙이는 글 김갑수 기자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항일대하소설 <제국과 인간>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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