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장 농민들도 '탄핵 서명' 이야기뿐
[현장] 4월 20일에 찾은 경남 함안가축시장, 보름 만에 다시 찾았더니
▲ "주인님, 우리는 어떻게 하라구요." ⓒ 윤성효
▲ 5일 아침 경남 함안가축시장에서 한 농민이 소를 판 뒤 돈을 헤아리고 있다. ⓒ 윤성효
"5만원만 더 얹어주라. 지갑에서 이왕 빼는 거 조금만 더 빼라."
"5만원 더 얹어주면 우리는 손가락 빨고 있으란 말이냐."
"그래도 오늘 장에서 그 정도면 잘 받았다. 꿈 잘 꾸었네."
"그래도 한 달 전보다 턱없이 떨어졌는데, 이게 뭐잉교."
"그러게 큰일이다. 몰고 가서 소나 잘 키우게."
5일 아침 경남 함안군 함안가축시장의 한 귀퉁이에서 농민들이 송아지를 사고 팔면서 주고 받은 대화다. 소 주인이 새 주인한테 고삐를 넘기면서 떨어진 소 값 시세에 한탄하고, 중개인과 구경꾼도 그에 맞장구를 치는 모습이었다.
기자는 보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기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미국 쇠고기 수입'을 전면 허용하기로 한 뒤인 4월 20일 열린 우시장에서 농민들을 만나 분위기를 살핀 적이 있다. 보름 전만 해도 소 값이 대폭 떨어졌는데, 이날 우시장의 소 값은 주춤거리는 시세였다.
보름 전에는 '떨어진 소 값'에다 '높은 사료 값'을 놓고 많이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날 우시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광우병이며 온라인에서 번지는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에 관심이 많았다.
대여섯 명이 모여 송아지 한 마리를 놓고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중개인한테 다가서며 소 값을 물어보았더니 옆에 있던 사람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기자라고 했더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소 흥정에는 관심이 없고 잘 만났다는 듯이 '열변'을 토했다. 정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어린 소만 잡아서 먹는다는데 우리는 늙은 소까지 먹으라는 거 아니냐. 미국이 죽일 ×이지."
"인터넷에 난리데. 이명박 탄핵해야 한다고 말이지. 어제 우리 아이들 시켜서 서명했다 아이가. 농민들도 인터넷에서 데모하는 거지 뭐."
"어제까지 탄핵 서명이 100만 명을 넘었다면서. 대단하네."
"100만 명이 뭐꼬. 1000만 명은 해야지. 인터넷 못 한다 소리 하지 말고 아이들한테 시켜서 하라고."
모두 60~70대 농민들이었다. 김우열(64)씨는 "뉴스에서 탄핵서명인가 뭔가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많아서 탄핵이야 되지는 않겠지만, 국민들이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그런 것은 필요하지"라고 말했다.
문제 생겨도 제재 못 한다?... "그런 협상이 어딨노!"
▲ 농민들은 탄핵서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 윤성효
농민들은 광우병으로 인해 축산농가 뿐만 아니라 국민 건강까지 위협받는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형님, 냉면 좋아하는데 인제 큰일이네요. 육수도 미국 쇠고기로 국물 내면 어떻게 할라요. 냉면 좋아하는 우리 형님 일이 걱정이네요."
"냉면만 그런 거 아니라고 하던데. 라면 스프도 그렇다면서. 광우병 걸린 미국 쇠고기 때문에 한우에도 영향이 있는 거지."
"전 세계인 중에 소뼈를 고아서 먹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면서. 미국 사람들은 살코기만 먹고 뼈는 버리지 않고 우리한테 수출하겠다는 거 아니냐."
"미국에서 건너온 우골도 국산이라고 속여 팔면 소비자들은 꼼짝 못하는 거지. 걱정이야 걱정."
농민들은 뉴스에 관심이 많았다. 농민들은 대화 도중에도 "라디오 뉴스 나왔다"거나 "아침에 오면서 라디오 들으니까 그렇게 말하던데"라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소식을 전달했다.
한 농민은 "아침 뉴스에서 그러더라. 미국 쇠고기 협상 원본이 공개되었는데, 미국에서 광우병이 아무리 발병해도 우리가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하던데. 그런 협상이 어디 있노"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농민은 "우리 국민들은 광우병에 취약한 인체라고 하던데. 유럽 사람들보다 서너 배, 크게는 여섯 배 정도 감염률이 높다는 말도 하더라"고 소개했다.
"시장에 나오는 소도 줄고 경매도 줄었다"
▲ 농민들이 소값 흥정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 윤성효
이날 함안우시장에서 만난 이현호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경남연합회장은 더 목소리를 높였다. 이 회장은 "이대로 가면 축산인들은 다 죽는다"면서 "무역해서 남기는 이익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국민들이 병들어 일 못하고 병 치료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까지 합치면 손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장관 등을 거론하며 비난하기도 했다.
"대통령이며 장관들, 청와대 수석들이 국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국민 건강을 생각한다면 미국 쇠고기 들여오면 안 되는 것이다. 공장 하나가 부도가 나면 옆에 다른 공장을 세우면 된다. 그런데 농촌이 한 번 피폐해지면 다시 살리는 데 수십 년이 걸린다. 식량 주권이 얼마나 중요한데. 수입 농산물 값이 올라갔다고 난리던데, 이것도 예상 못한 장관이며 청와대 수석들 모두 옷 벗어야지."
그의 말을 듣고 있던 60대 농민은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력이 있다고 해서 찍어주었잖아. 그런데 추진력은 자기 돈으로 자기 사업할 때나 필요하지"라며 "대통령은 국민 뜻을 따라야 하는 거 아니냐. 국민 뜻과 다른 길로 가는데 무슨 추진력이냐"고 말했다.
또 다른 농민은 "미국 쇠고기 수입은 국민투표에 붙여야 한다. 국민 의사와 다르게 정책을 펴면 탄핵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며 박홍수 전 장관이 잘했는기라. 이전 정부는 그래도 국민 건강은 생각했잖아. 늙은 소까지 마구 수입하게 되면 국민 건강은 어떻게 해라고. 대통령이 자기 나라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게 독재며 독선이지."
이날 함안우시장에서는 한우 25마리가 거래되었다.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이전보다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함안가축시장 관계자는 "시장에 나오는 소도 줄고 경매도 줄었다"면서 "농민들이 불안하니까 그런 것"이라고 풀이했다.
▲ 함안우시장에서는 경매가 뚝 떨어졌다. ⓒ 윤성효
보름 전에는 소값이 뚝 떨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진정 국면을 보이고 있다. 생후 6개월 암송아지의 경우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기 전에는 230만원선에서 거래되다가 미국 쇠고기가 수입된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에는 150만원선으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 이날 시장에서는 170~180만원선에서 거래되었다. 함안가축시장 관계자는 "갑자기 소값이 떨어졌는데, 지금은 다소 진정 국면"이라고 말했다.
이날 우시장에는 소를 팔지 않고 다시 싣고 가는 농민들도 여럿 있었다. 아버지와 같이 시장에 나온 30대는 "아버지께서 너무 높게 불렀는지 매매가 안 된다"면서 "몇 달 전보다 훨씬 떨어졌으니 아버지 심정도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한 농민은 "떨어졌다고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엄청나게 떨어졌네요. 소를 안 키웠으면 안 키웠지 이대로는 못 판다"면서 송아지를 다시 트럭으로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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