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위, 자동차를 가로 막는 말과 낙타
[중국영화로 중국문화 읽기③] 왕취엔안 감독의 <투야의 결혼>
▲ 영화의 배경이 된 네이멍구초원(이하 화면캡쳐), 투야가 아들과 함께 초원에서 물을 긷는 모습이다. ⓒ 스펀지하우스
네이멍구(內蒙古)는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일까? 드넓은 초원에 양떼와 말들이 평화로이 풀을 뜯고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이 뜨는 목가적인 공간? 아니면 우리에게 달갑지 않은 모래바람을 몰고 오는 황사의 발원지 정도? 하지만 평온함과 척박함이 동시에 묻은 그 공간의 바람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빠르게 진행되는 '현대화'는 멍구파오(蒙古包, 멍구족의 이동식 천막)를 보일러와 전기시설까지 갖춘 상업화된 모습으로 변모시킨다. 한 걸음씩 무섭게 걸어오는 '사막화'는 목축업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위협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목축이 초원을 황폐화해 사막화를 가속화시킨다는 이유로 유목민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왕취엔안(王全安) 감독의 <투야의 결혼 (圖雅的婚事)>은 산업화과정에서 사라져갈 멍구인들의 삶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자 왕취엔안 감독의 어머니를 포함한 네이멍구인들의 삶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안쓰러운 시선이다.
네이멍구인들의 삶, 담담하면서도 생생하게 그려낸 수작
▲ 주인공 투야의 모습, 힘겨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투야. ⓒ 스펀지하우스
"장이머우(張藝謀)는 죽었지만 다행히 중국에는 아직 지아장커(賈樟柯)가 있고 이제 보니 왕취엔안(王全安)도 있구나."
이는 지난 2007년 2월, 중국 왕취엔안(王全安) 감독의 <투야의 결혼 (圖雅的婚事)>이 제 5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최우수작품상인 황금곰 수상작으로 발표되자 많은 중국인들이 전근대적이지만 진실한 삶의 리얼리티를 생생하고도 담담하게 보여주는 '제 6세대' 젊은 감독 왕취엔안을 새롭게 발견하며 했던 말이다.
왕취엔안의 수상은 1988년, 장이머우가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영화제의 금곰상을 수상하고 2006년, 지아장커가 <싼시아의 호인(三峽好人)>으로 베니스영화제 금사자상을 수상한 데 이은 중국영화사의 또 하나의 쾌거로 기록될 만하다.
영화에서 젊고 예쁘고 일 잘하는 주인공 투야(圖雅)는 우물을 파다가 불구가 된 남편과 두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실제적인 가장이다. 낙타를 타고 양떼를 돌보고 물을 길어 나르고 농사일을 도맡아 하는 그녀는 누우면 바로 잠이 들 정도로 피곤하고 고된 삶을 살아간다.
이웃에 사는 친구 썬꺼(森格)를 구하다가 허리를 다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투야는 돈 많은 집에 시집을 가서 불구인 남편을 돌보기(嫁夫養夫)로 하고 이혼을 한다. 전 남편을 데리고 갈 조건으로 새로운 남편을 구해야 하는, 투야의 이상한 구혼은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라는 주제의식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투야와의 결혼을 위해 말을 타고, 오토바이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각각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투야의 중학교 동창이라는 바리얼은 유전개발에 성공한 부자로 투야의 남편인 파터를 요양원에 입원시키고 멀리 떠나려 한다. 그러나 전 남편 바터는 요양원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그 사실을 안 친구 썬꺼는 말을 타고 달려가 투야가 탄 자동차를 가로 막아선다.
▲ 자동차를 가로 막는 말, 현대화나 물질적 풍요도 멍구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스펀지하우스
황량한 자연에 맞선 고단한 삶은 계속 되고...
돈을 밝히고 더 좋은 조건의 남자를 찾아 남편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썬꺼의 아내는 영화에 등장하진 않지만 투야의 남편사랑과 좋은 대조가 된다. 투야의 곁에서 좋은 친구로 늘 그녀를 돕던 썬꺼는 결국 그녀의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우물파기'를 자청하고 나서며 청혼을 하게 된다.
자신의 몸이 아니면 황량한 자연과 맞서 생활을 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불구가 된 남편과 몸을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된 투야에게 다른 선택은 없어 보인다. 폭약을 터뜨려가며 목숨을 건 우물파기는 대자연과 맞서 힘겹게 살아가는 멍구인들의 삶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 우물 안에서의 투야와 썬꺼의 미래에 대한 언약은 그 흔한 키스신도 없는, 밋밋하고 썰렁한 것이지만 가장 진실 된 약속으로 다가온다.
▲ 우물 안에서의 약속, 두 사람이 극복해야 할 공간 속에서 미래를 약속하는 투야와 썬꺼. ⓒ 스펀지하우스
그러나 힘겹게 이뤄진 결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 같지는 않다. 아버지가 '둘'이라는 놀림에 친구와 싸움을 하는 아들 자야와 술을 마시겠다는 바터와 술을 못 마시게 하는 썬꺼와의 싸움 속에서 투야는 또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투야의 삶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힘겨운 '생활' 속에서 여전히 고단하게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