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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반공교육 했던 거 참회합니다"

퇴직교사 김귀식·정해숙·윤한탁씨 등 간디학교 특강에서 밝혀

등록|2008.05.06 17:56 수정|2008.05.09 09:29

▲ 김귀식, 정해숙, 윤한탁, 이정록씨는 6일 오후 간디학교 도서관에서 열린 특강을 통해 반공교육을 했던 과거에 대해 참회한다고 밝혔다. ⓒ 윤성효


▲ 간디학교 도서관에서 원로 퇴직교사의 특강이 벌어졌다. ⓒ 윤성효


"반공웅변대회며 반공포스터 그리기를 직접 지도한 죄 많은 교사다. 그 과오는 씻을 수가 없다. 어린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고 인격을 모독한 장본인이다."

퇴직한 원로 교사들이 손자뻘 되는 학생들 앞에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귀식, 정해숙, 윤한탁, 이정록씨는 6일 오후 경남 산청 간디학교 도서관에서 특강을 했다. 듣고 싶은 학생만 참석했는데 100여명이나 모였다.

이날 특강은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서 두 차례 소환조사를 받은 최보경 교사(역사)가 사회를 맡았다. 최 교사는 "어릴 때 반공포스터 그리기대회에 나가 2등을 한 기억이 난다"고 참석자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날 특강에 앞서 동영상이 상영되었다. 요즘 학생들은 "저게 뭐지" 하며 궁금해 할 반공웅변대회 장면을 담은 내용이었다. 흐릿한 영상 속에서 어린 학생들이 쏟아내는 열변을 본 학생들은 웃기도 했다.

김귀식씨는 전교조 위원장과 서울시교육위원을 지냈으며,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정해숙씨는 '아람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교육문화공간 '향' 대표인 윤한탁씨는 전교조 창립운동으로 해직된 뒤 복직했으며, 중등교사로 퇴직한 이정록씨는 청년과함께하는노인회 대표로 있다.

▲ 퇴직한 원로교사인 김귀식 정해숙 윤한탁 이정록(왼쪽부터)씨가 6일 오후 산청 간디학교 도서관에서 열린 특강에 참석해 앉아 있다. ⓒ 윤성효


정해숙 "야만적인 국가보안법 청산해야"

▲ 정해숙씨. ⓒ 윤성효

먼저 정해숙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국가보안법에 대해 그는 "봉사가 제 닭 잡아 먹는 것과 같이 자기 동포 잡아 먹는 법"이라며 "야만적인 국가보안법을 청산하지 않고는 민주주의나 평화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일제시대 학교에 들어가서 황국신민교육을 받았다. 일본 '청황폐하'를 위해 살고 죽는 교육을 받았다. 일본 군대 가서 싸울 때도 돌격 앞으로 해서 총에 칼을 꽂고 가다가 맞아 죽으면 '천황폐하 만세'라고 하며 죽었다"면서 "그것이 식민지 노예교육이었다"고 설명.

그러면서 그는 "반공웅변대회와 반공포스터를 직접 지도한 죄 많은 교사다. 씻을 수가 없다. 어린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고 인격을 모독한 장본인이다"면서 "아무리 참회해도 학생들에게 지은 죄를 영원히 씻을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해숙씨는 "어렸을 때 식민지 노예교육을 받은 것이 큰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면서 "간디학교에 와보니 질서보다는 자유가 더 중요하고, 서로 위하면서 우정이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 윤한탁씨. ⓒ 윤성효

이어 마이크를 잡은 윤한탁씨는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말로 인사했다. 그는 "머리가 희지만 늙지 않았다. 청년이다. 마음은 청청한 청년이다"면서 "최보경 교사가 경찰에 소환되었는데, 과거 선생들이 겪었던 보안법의 망령이 지금도 교실에서 어슬렁거리고 다닌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는 학교에서 '조국'이나 '민족'이란 말도 못 썼다. 그런 말을 쓰면 사상이 불순하다거나 누가 고자질을 했는지 잡아가기도 했다. 그때 우리 선생들은 단결하지도 힘을 보태지도 못했다. 학교에서는 꼼짝 못하고 지냈다. 교사로서 참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설명.

"학교에서 선생이 거짓말 하면 안 된다. 선생이 행동과 말이 어긋나고, 말하는 가운데 허위와 거짓이 담겨 있으면 교육이 아니다. 그런 교사는 자격이 없다. 교사는 진실을 가르쳐야 한다. 그동안 우리 교사들은 거짓되고 폭압적이고 탄압적인, 그런 속에 거짓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윤한탁씨는 "반공글짓기며 반공웅변대회뿐만 아니라 조회나 종례 때마다 같은 민족을 뿔 달린 괴물처럼 가르쳤다. 얼마나 허위에 가득차고 양심이 없는 짓이었나. 학생들에게 진실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말 자유를 아는 교사는 평화와 통일을 가르쳐야 한다. 과거 우리는 부끄럽게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서 "과거에 치열하게 싸웠더라면 현재 국가보안법 등과 싸우는 후배 교사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좀 더 치열하게 각성하고 힘을 합쳐서 노력했다면 다른 사회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귀식 "자기 이야기 적은 노트를 만들자"

▲ 김귀식씨. ⓒ 윤성효


김귀식씨는 교육관을 털어놓으면서 "교사로 있을 때 학기 초에는 두 달 정도 교과서를 다루지 않았다"며 "자기 생각을 적는 게 노트지, 선생의 것을 베껴 놓은 것은 자기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일본이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펑펑 흘린 적이 있다. 그런 것을 볼 때 어렸을 때부터 친일파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그때까지 천황폐하만을 위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라고 소개.

6·25를 설명한 그는 "당시 인민군을 만나 악수도 나누었다. 인민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패해서 후퇴할 때가 중3이었다. 나보다 어린 인민군을 만났는데 그는 총을 거꾸로 메고, 피를 흘리며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북으로 가는 것을 봤다. 당시 비참한 역사를 보면서 통탄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교조 위원장을 할 때는 하루종일 교문이 닫혀 있었고 경찰이 따라다녔으며, 교사들도 감시해서 교육청에 보고했다"면서 "내 교육관은 교사는 가급적이면 말을 적게 하라는 것이다. 선생이 이야기가 줄어들수록 좋은 수업이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절대로 점수 중심으로 가르쳐서는 안된다. 잘 가르치는 선생은 학생 스스로 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팀별 학습을 하다보니 공동체 의식이 생기더라"고 설명.

토론방식의 수업을 할 때 "영화 <꽃잎>과 <쉬리>는 왜 연소자 관람불가인가"라거나 "5·18은 무엇인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어떤 벌을 받아야 할까요?", "청소년의 성에 관한 문제점은 무엇인가?" 등등의 주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나왔다고 그는 소개. 그러면서 그는 "수업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생각을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귀식씨는 '깨' '감' '자' '두'로 교육관을 설명했다. "요즘은 문제지만 푸는데 교육에 대한 목표와 철학이 분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곧 '깨' 우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그는 설명.

또 그는 "오늘날 수업은 '감'동이 없다. 문제지 풀이만 하기에 감동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대구의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성폭력사건에 대한 견해를 드러내면서 "교육부는 가해자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웃기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잘못된 교육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에 가해자들도 선의의 피해자다. 그들의 가해자는 교육행정가다"고 강조.

또 그는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자'아발견의 교육을 해야 한다"고, "'두'레학습은 학습가치의 최고 정점이다. 그래야 공동체가 살아난다"고 설명했다.

"우리 동네에서 몇 년 전 한 여학생이 수능시험을 봤다. 그 여학생은 미술을 잘했다. 평생 미술을 해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데, 수능성적 발표된 뒤 하루 지나서 투신자살했다. 수능점수가 조금 못 나왔다는 게 이유였다. 수능 점수와 미술이 무슨 관계가 있나. 누구의 책임이냐. 우리의 교육을 역사에 고발한다. 그 첫 고발대상은 학부모이며 교사, 교수, 교육부장관이다. 그들은 그 여학생을 간접적으로 살인한 것이다."

김귀식씨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학생은 초등학교부터 자신의 '작품집'을 가져야 한다. 흑판에 선생이 쓴 것을 베껴 적는 게 아니라 자기한테 맞는 것을 적어라. 학생들에게 노트 이름을 붙여라고 했더니 어떤 학생은 ‘해가 기우는 강가에 서서’라고 적었더라. 고등학교 때까지 쓴 그런 노트를 대입 면접 때 교수한테 보여준 뒤 대학에 들어가라고 말하고 싶다. 시험 점수는 참고사항이다. 일류대학은 미국이 많다고 하는데 그 나라 대학에서는 점수를 제일 마지막에 참고로 본다. 너 혼자 아무 지도도 받지 않고 해본 프로젝트를 가져와 보라고 해서 판단한다.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그런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 퇴직한 원로교사들이 '반공웅변대회'를 담은 동영상을 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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