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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주의에 앞서 개화부터 하라

[서평] 근대 중국 지성이 던지는 일갈, <중화유신의 빛 양계초>

등록|2008.05.07 17:56 수정|2008.05.08 14:01
중화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기자는 4월 29일 CBS 시사자키에서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중국 유학생 폭력 사태가 아마도 다른 나라에서도 있었을 것인데, 보도가 안됐을 거라고 말했다. 사회자는 설마, 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5월 5일 한 방송사가 일본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사실 이것은 지금 중국인들의 감정 속에 팽배한 마음을 생각할 때 너무나 당연한 사태였다. 오히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설명이 곤란한 지형이었다. 그들은 이미 팽창할 대로 팽창한 지하의 마그마 같다.

중국 근대 지성인 캉요웨이와 량치차오 젊은 모습중국 근대 지성인 캉요웨이와 량치차오는 젊은 나이에 만나 사제이자 친구로서 배움을 같이 했다. 훗날 다른 노선을 걷지만 진정한 라이벌이었다. 난하이 캉요웨이 기념관 ⓒ 조창완

지금 중국인들 대다수의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중화(中華)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는 지난 150년간 진행된 중국의 침체기에 숨겨져 있었지만, 중국이 세계 양대 헤게모니로 성장하면서 주머니 밖으로 빠져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중화주의라는 날카로운 송곳은 '올림픽 성화봉송 폭력'과 같은 작은 일에 쓰였지만 향후 어떤 일을 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 송곳은 가장 먼저 북한이나 한국, 베트남 같은 나라를 향해 구사될 수도 있지만 궁극에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 정부를 향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중국 정부는 공자(孔子)를 되살리거나 막시즘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사상의 연착륙을 시도하지만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중국이 가장 되돌아보고 싶은 인물은 바로 량치차오(1873~1929년)일 것이다. 서구 열강과 일본의 힘에 눌려서 중국 민족의 계몽과 부활을 말하던 그의 사상이 중화주의의 작은 기착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쉬캉의 량치차오 평전방대한 사상적 괘적을 잘 표현한 책이다 ⓒ 조창완

지난 얼마간 쉬강(徐剛)의 <중화유신의 빛 양계초>(이끌리오 간)를 읽으면서 나는 중국 사상의 미래를 생각해 봤다. 천재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 11살인 1884년에 어른들도 어려운 과거에 합격해 박사제자원(博士弟子員)이 된다. 하지만 당시 과거는 팔고문 등으로 정형화되어 제대로 된 지식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이때 그는 캉요웨이(1858~1927)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에게 찾아가 제자가 된다. 이후 재기발랄한 15살 위 스승과 평생을 지적인 친구에서 사상적 라이벌로 변화해가며 교류한다.

량치차오의 삶이 신산(辛酸)한 것은 그가 근대 변혁기에 사상가이면서 실천적 지성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언론인으로도 활동하면서 정치적인 의도를 숨기지 않고 계속해서 참여적인 자세를 보인다.

1895년 과거를 위해 모인 서생들을 규합해 청일 강화조약에 반대하는 '공거상서'로 첫 목청을 낸 후 그는 스승과 함께 '백일유신'의 주역이 된다. 하지만 연약한 광서제는 자희태후(서태후)에 밀려 좌절하고, 그는 일본 영사관의 도움으로 피신한다. 이후 그는 일본에 거주하며 신문을 통해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한다.

역사 전기 작가 쉬캉의 평전은 이런 량치차오 삶에 여정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기자가 유독 주목하는 것은 그의 사상의 변화다. "중국이 흥성하지 못한 까닭은 국민의 공공도덕이 결여되어 있고 백성의 슬기가 깨어있지 않기 때문"(217쪽)이라고 지적한다. "양계초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이념상의 문제가 아니라, 부패한 사회와 깨어나지 못한 민중"(282쪽)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일본에 가서 만난 서구철학은 상상 이상이었다. 중국은 그때까지도 삼강오륜이 윤리의 모든 것으로 인식될 때 일본은 이미 "생명, 건강, 정감 등의 '자신에 대한 윤리', 국제, 국헌, 국법 등의 '인류에 대한 윤리', 그리고 동물, 식물, 진, 선, 미 등의 '만물에 대한 윤리'를 따로 마련했다"(296쪽)는 것에 놀란다.  

그러나 그는 당시 서구 제국주의로 핍박받는 중국인들로 인해 민족에 집중한다. "양계초의 신민설을 살펴볼 때, 양계초의 신민에 관한 이론이 개량주의적이면서 민족주의적이며, 애국주의적 정조가 스며 있다는 점"(308쪽)이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양치차오의 신대륙여행기미국을 다녀오고 쓴 책이다. 신후이 량치차오 생가에 전시된 책이다 ⓒ 조창완


어떻든 량치차오는 '개명전제론' 등의 글을 통해 중국인들의 지금 문화로는 민주공화의 전제조건과 너무 떨어졌음을 인식하고 고민한다. 하지만 그는 토지국유를 전제로한 혁명당이나 공산당의 판단이 오류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때문에 그는 삼권분립, 행정 개편, 세제 개편 등의 다양한 정책과 더불어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 길'(413쪽)를 모색한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공간은 리홍장, 위안스카이, 단기서로 이어지는 불안한 정치공간이었다. 주군을 찾아 쫓는 공자처럼 그는 제대로 쓰임도 받지 못하면서 정치의 쓴 맛을 체험한다. 하지만 그의 삶에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청화대 등에서 계속해서 강의하고, 수많은 저작을 출간해서 중국 사상, 철학을 새로운 시각에 맞추어 내놓는다. 그리고 1929년 1월 19일 베이징에서 운명한다.

하지만 역사의 그가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 다르게 돌아갔다. 중국식 공산주의를 만든 마오쩌둥이 집권하면서 사상은 혼돈을 거듭했다. 마오가 유능하기는 했지만 정치, 철학, 투쟁을 다하기에는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후 갑자기 다가온 개혁개방은 량치차오가 생각한 국민 계몽의 시기를 벗어난 채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모습으로 폭주하고 있다. 물론 그를 받쳐줄 사상은 없다.

작가의 중국 당대에 대한 고뇌도 읽을 수 있다. 작가는 탕구에서 만난 한 노인의 말을 빌려 "양계초 평생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그의 신민설이오. 실제로 그는 거의 한세기 이전에, 기물만 있는 중국의 현대화는 안 되며, 제도와 인간의 현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하였지"(643쪽)라고 말한다. 또 "누군가 오늘날의 텔레비전의 보급률과 유행가의 전파 속도로써 문화의 진보를 입증하려 한다면, 이는 커다란 착각이다"(275쪽)라고 말한다. 실제로 중국은 지금 중국을 세워줄 사상이 부재중이기 때문이다.

신후이 생가에 있는 량치차오상지금은 지앙먼(江門)으로 속해 있다. 뒤에는 링윈타가 보인다 ⓒ 조창완


광둥 신후이(新會) 량치차오(梁啓超)의 고향 집 앞 나무들은 가지에서부터 난 수염을 땅이나 물까지 뻗치고 있다. 2002년 8월 폭염 속에서 만난 그의 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이 나무들이었다. 마치 하늘과 땅을 하나로 합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많은 사상을 섭렵한 후 불교에도 깊이 심취한다.

물론 집 옆에 산꼭대기에 자리한 링윈타(凌雲塔)의 이상한 모습도 신비했다. 그런데 량치차오의 집에서 40분 남짓한 난하이(南海)에 캉요웨이(康有爲)의 고향이 있고, 30분 거리인 중산(中山)에 쑨원(孫文)의 옛집이 있다. 중국 근대 사상과 혁명을 이끈 선도자들이 거의 한동네 사람이라는 게 너무 심심하다.

책에서는 최근에 익숙했던 한 인물도 만난다. <색.계>에서 량차오웨이(양조위)가 모셨던 '왕정위(汪精衛)다. 왕정위는 초반기 일본에서 '민보'라는 혁명당쪽의 신문 브레인으로 활동한다. '신민총보'를 내던 량치차오의 반대세력이었다. 왕정위의 글은 량치차오도 칭찬하지만 그는 훗날 일본이 내세운 남경 괴뢰정부의 수장이 된다. 혁명과 친일은 극과 극인 같으면서도 한통속임을 보고는 무릎을 치게 된다.

베이징 식물원 안에 있는 량치차오의 무덤정작 량치차오의 진가를 알고 찾는 이는 얼마나 될까 싶다 ⓒ 조창완



사실 량치차오는 루쉰 등 중국 근현대 사상가는 물론이고 마오쩌둥 등 공산주의자에게도 깊은 영향을 준다. 1920년부터는 우리나라도 그의 책들이 보급되어 깊은 영향을 줬다. 하지만 중국은 지금 그가 말한 과도(過渡)를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단재 신채호 선생도 베이징에 거주하며 다양한 저술활동을 펼쳤다. 사실 단재 선생의 사상은 민족주의에 고착된 량치차오의 생각보다도 휠씬 나아갔다. 이제 단재를 다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간절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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